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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사람과 사람

하나님의 사랑을 아로새기다 l 조각가 박형만

소박한 나무 조각에 금속 십자가 조형물. 가까이 보니 빼곡히 박힌 못으로 이루어진 십자가다. 조각가 박형만은 자신의 죄에 대한 못질이자 다시는 하나님 앞에 같은 죄를 짓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특별한 작품을 만든다. 나무 조각 등에 성경구절을 깨알같이 필사하는 ‘그림글씨’라는 새로운 장르의 작품들을 포함하여 이미 20차례이상 전시회를 연 특별한 조형예술가 박형만.
그의 작업실 겸 주거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고즈넉한 한남동 자택에서 그의 인생 이야기와 작품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글 이재윤 | 사진 김준영

로마서 8장만 600회 이상 쓴 거 같아요

박형만 작가는 건축 전문가로서 수십 년간 현장에서 일했다. 지금 그가 기거하는 공간은 3인 가족이 함께 거주하는 1, 2층과 작업실로 활용하는 지하실로 이루어진 아담한 주택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공간은 1인당 8평이 적당하다는 그의 지론대로, 아기자기하면서도 그 내부는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탁월한 미적 감각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 그의 작품이 있었다.
현장에는 나무 조각이나 쇠붙이들이 많잖아요. 그것들을 가지고 작품을 시작
했죠.”
그는 어릴 때부터 미적 감각이 남달랐다. 과학과 예술의 교차점이라는 건축의 매력에 이끌려 홍대 건축학과에
입학했고, 깊이 있는 건축 공부를 위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배웠다. 사진, 데생, 인간 행동심리, 철학 등 인문학 분야까지. 한 분야를 깊이 연구하는 성향은 종교에도 영향을 미쳐 불교의 교리를 20여 년간 깊게 공부했다. 그러던 그가 어떻게 십자가를 만들고 성경을 필사하는 작가가 되었을까. 사람이 힘든 일 없으면 예수의 뒷자락을 잡을 일 없는 거 같아요. 워커홀릭이었죠. 앞만 보고 살다가 40대 중반에 아버님, 동생을 잃고 거기다 회사도 어려워졌어요. 그렇게 술에 빠져 3년을 살았는데, 답이 없더군요.” 그렇게 인생의 깊은 수렁에서 방황하던 중 아내의 권유로 교회에 발을 디뎠다. 제가 불교를 20년 공부했는데 처음에 교회 가보니 스님 설법보다 가벼운 느낌이 들더라구요. 알아야 믿겠다는 생각이 들어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3년 반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를 했다. 그리고 성경에 빠져 10년을 지냈다. 그는 로마서에서 죄의 문제에 대한 해결을 체험했다.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절대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다는 말이 그렇게 못이 되어 가슴에 다가와 박힌 것이다. 그리고는 로마서를 필사하기 시작했다. 그가 가장 즐겨 쓰는 내용은 로마서 8장이다. 깨알 같은 글씨로 예술적 감성을 더하여 나무 조각 등에 한 자 한 자 필사하는데, 그렇게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수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로마서 8장만 600회 이상 쓴 거 같아요. 프레임을 구성하고, 그 프레임에 맞게 글자를 새겨 넣는 일이지요. 필사는 굉장히 힘든 작업입니다. 집중해서 몇 시간 작업하고 나면 손이 마비가 올 정도죠.” 그가 만들어낸 작품세계는 무어라 분류하기 힘들 정도로 새로운, 박형만만의 것이다. 박형만 작가 자신은 그것을‘ 그림글씨’라고 이름 붙였다. 요즈음은 히브리어를 배워서 구약을 써내려가는 중이다. 필사 작업을 한 작품에 그의 아내는 십자가를 새겨 넣었다. 그리고는 필사와 함께 십자가에 못을 사용해서 다양한 십자가의 형태를 만들어 냈다. 아내는 십자가에 못질을 하며 손이 부르트거나 팔이 저리는 아픔을 경험하고, 자신은 필사를 통해 눈이 침침해지고 온 육체가 풀어질 정도의 힘듦을 경험하지만 이렇게 탄생한 십자가와 그림글씨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기도 한다. 20회 이상의 전시회를 거치며 그의 특별한 작품을 좋아하고,소장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그의 작품세계를 배우고 싶어 찾아온 제자도 생겼다.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기독교적 테마로 작품 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환경이 열악합니다. 특히 가능성 있는 젊은 작가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을 후원해 줄 필요가 있어요. 외국 예술계에서 하듯이 재주있는 작가를 10명씩 선정해서 스튜디오를 지원해주고 그들을 지원할 수 있는 펀드 등을 조성해 주면 큰 힘이 될 겁니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으로 투자하는 것이 쉽지는 않더군요.”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한국 교회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목회자들도 예술적 안목을 키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어떤 사람이든 교회 안에 들어서는 순간 많은 것을 느낍니다. 검소하며 세련미가 넘치게 교회 건축을 할 수 있어요. 보여주기 위해 화려함만 추구하는 것은 그다지 좋지 않죠. 일례로, 주보 등에 사용하는 폰트도 신경을 조금만 쓰면 큰 효과를 낼 수 있죠. 교회가 자기만의 폰트를 만들어서 주보와 각종 인쇄물, 교회 내 사용하는 걸게 등에 같은 폰트로 사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거든요. 교인 중엔 그런 일을 하는 전문가가 많아요.” 큰 비용 들이지 않고 교회 공간을 예술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물음에 그의 눈빛이 빛난다.
“오랫동안 이 분야에서 일한 건축
전문가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아요.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모든 것을 그 점에 초점을 맞춰야 해요. 특히 가장 중요한 예배를 중심으로 건축을 해야죠. 교회 건물을 꾸민 것이 자랑이 되면 안 되고 단순하고 담박해야 합니다. 앉아 있는 사람들의 주의를 다른 데 두게 하면 안돼요. 십자가에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조명은 간접 조명이 좋습니다. 일본의 어느 한 병원은 병원 건물의 조명을 설치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 하면 환자 자신이 아픔을 잊을 수 있게 할까를 고심해서 조도를 상당히 낮추어 디자인 했습니다. 직접 조명은 시신경을 자극하잖아요. 날카롭게 하죠.” 또한 교회에서 디지털 기기를 감추라고 충고한다. “충분히 기술적으로 스피커 등을 감출 수 있습니다. 자막 사용하는 스크린도 너무 돌출되어 있어 예배의 환경을 어지럽게 하고 있어요. 예배 공간이 자꾸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변하고 있는데, 앉으면 기도하고 싶은 공간으로 디자인해야지요.” 박형만 작가의 조화롭고 포근한 느낌의 주거 공간을 둘러보며 교회 공간 배치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다.

박형만 작가는 다양한 분야의 공부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건축이라는 학문 자체가 이성과 예술의 결합이다. 그 유명한 다빈치는 도시 계획, 건축, 조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다.
“절름발이 아티스트가 되지 않으려면 다양
한 분야를 공부해야 하겠죠. 인문학에서 저력이 나옵니다. 젊은 시절 다양하게 공부했던 분야들이 제게 큰 도움을 주었죠.” 대학 시절 우연히 듣게 된 캘리그라피손글씨 수업이 오늘 애플의 디자인을 만들게 되었다는 스티브잡스의 말이 떠오른다. 오늘날과 같이 디지털이 가득하고 모든 것이 빨라진 시대에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나무판에 성경을 새기는 박형만 작가의 모습은 새로운 영감을 준다. 이성과 회화의 교집합인 건축의 전문가답게 그는 오늘 디지털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아날로그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