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한페이지 단편 소설

채식주의자


“정말 고기는 안 먹어?”
내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불판 위 양념갈비에서는 서서히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왜 고깃집에 오자고 했어?”
“고기 먹는 걸 보고 싶어서. 예전에는 우리, 자주 먹었잖아.”
그녀와 내가 헤어진 건 2년 전이고, 사귀었던 기간은 3년이다. 3년 동안 마땅히 갈 곳이 없으면 저녁을 고깃집에서 때우곤 했다. 밥과 술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데다 주린 배를 가장 효과적으로 때울 수 있었으니까. 항상 나의 친구, 혹은 그녀의 친구, 아니면 친구의 친구들과 함께였던 것 같다. 그녀와 헤어진 뒤로 가끔씩 문자를 받았지만 실제로 만나는 건 처음이다. 나는 아직도 그녀가 왜 나를 떠났는지 알 수가 없다. 새벽에 술에 취해 물어보곤 했지만 적절한 답을 들을 수가 없었다. 여지없이 시간은 흐르고, 상처는 무언가로 메워졌다. 나는 고기를 계속 구워 먹어 몸무게가 5킬로그램이나 늘었고 그녀는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나는 양파절임을 조심스럽게 입에 넣었다. 매워서 눈물이 핑, 돌았다.
“채식주의자라고 해도 문득 단백질과 지방을 섭취하고 싶을 때가 있어.” 그녀가 말했다.“특히 불판에 살짝 그을린 양념 갈비는 가끔씩 생각이 난다고.”
양념이 숯불에 떨어져서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되어 버렸다. 이른 저녁인데도 반쯤 가게가 차 버렸다.
“그래도 혼자 먹는 건 미안한데.”
양념갈비 3인분 정도면 혼자 어떻게든 해치울 수 있을 것이다.
“괜찮아. 네가 먹는 걸 구경하는 걸로 족해. 미안하면 맛있게 먹어줘. 나는 국수를 시켜 먹으면 되니까 걱정 말고. 대신 정말, 맛있게 먹어야 해. 씨름부 아이들이 회식 온 것처럼 맛있게.”
고기가 익기 시작했다. 그녀는 겉에 살짝 탄 부분이 나타날 때까지 노릇노릇 굽다가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주었다. 씨름부 선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야구부 선수 정도는 되는 것처럼 상추에 고기를 싸서 마늘과 쌈장까지 넣어 한입에 우물거렸다. 고기를 먹으면서도 설교를 들으면 어쩌나 걱정했다. 공장 도축으로 기른 돼지에는 항생제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각종 나쁜 것들이 들어 있어서 계속 먹었다가는 몸이 나빠질 거라는 이야기 말이다. 육식의 위험성은 나도 충분히 알고 있다. 단백질과 지방을 채식으로 섭취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채식을 하는 스님들이 오래, 더 건강하게 산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어쩐지 정상이 아닌 것 같이 느껴진다. 사람은 초식동물이 아닌데, 자연의 섭리를 거르는 것이 아닐까?
“맛있어?”
그녀가 물었다. 음식이 가득 차 있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혼자서 꾸역꾸역,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을 먹는 것처럼 3인분을 해치웠다. 남은 건 검게 타버린 찌꺼기뿐. 소주 한 병은 내가 네 잔, 그녀가 세잔을 마셔서 다 비웠다. 술기운이 드니, 궁금했던 질문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왜 채식주의자가 된 거야?”
그녀는 대답 대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때로는 자신을 굉장히 힘들게 하는 약속을 지켜야 할 때가 있거든. 거기에 집중하다 보면 다른 고통은 잊을 수 있으니까.”
약속대로 그녀가 계산을 했다. 비가 온 뒤 쌀쌀해진 거리를 걸었다. 예전 같았으면 손을 잡았겠지만 그녀는 약간 앞서서 걸어갔다. 뒤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는다. 밥을 먹는 동안 그녀는 내게 여자 친구가 있는지도 물어보지 않고, 나도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있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오늘 약속 장소에서 그녀를 보았을 때엔, 어쩌면 우리는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나 혼자 몸에 좋지 않은 양념 갈비를 먹고, 온 몸에서 그 냄새를 풀풀 풍기며 그녀의 뒤를 좇다 보니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녀는 달라졌다. 채식주의자로 자신을 단련했다. 어쩌면 그걸 확인하는 마지막 시험으로 나를 고깃집에서 만났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걷던 그녀가 신호등을 건넌다. 하지만 나는 길을 건너지 않고 깜빡거리는 초록색이 빨간색으로 바뀌기만 기다리고 있다.

서진|소설가, 한페이지 단편소설(일명, 한단설 1pagestory.com) 운영자. 장편소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로 12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 에세이와 소설을 결합한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 출간. 세상의 가장 큰 의문을 풀 책을 찾아 헤매는 북원더러Book Wanderer 3nightsonly.com

'LIFE > 한페이지 단편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밤의 아이스크림 트럭  (0) 2012.03.30
좋아요, 취소  (0) 2012.01.26
이런 앱App 어때?  (0) 2011.10.18
은근히 나를 갈구는 상사의 비밀  (0) 2011.08.24
내가 와이키키에서 찾아야 하는 것  (0) 2011.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