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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문화동네 사람들

진정한 삶으로 찬란하게 피어나다 │ 배우 박용우

 

우리는 연기하는 사람을 배우俳優라고 부른다. 俳(배우 배)란 글자는 재미있기도 하다. 人(사람 인)자에 非(아닐 비). 아무리 非자가 음을 뜻한다지만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만 같으니, 배우는 그 이름이 버겁기도 하겠다. 누가 그랬다. 배우라고 해봤자 무대나 스크린에서 천하도 호령하고 상상도 못할 일들을 척척 해내다가도 현실에 발을 디디면 별다를 것 없는 사람이고 보니, 그 사이가 너무 멀어 적응하기 어렵다고. 아마 <오늘>이 만난 박용우도 그랬던 모양이다. ‘연기하는 거, 사람 사는 거 따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말해줬으니까. 교수님과 선생님이 얘기해줄 땐 공감하지 못했지만,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면서 변했다고 했다. 연기와 삶이 결국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웃으며 말해주는, 배우 박용우를 만났다. 글 원유진 · 사진 탁영한

삶을 이야기하는 배우로
2011년 12월, tvN의 다큐영화 <시간의 숲>이 방송되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월령공주>의 배경인 야쿠시마 숲과 그 속에서 7000년을 넘게 살아낸 삼나무, ‘조문스기’를 찾아가는 내용이다. 박용우는 기획부터 시작해서 출연, 해설 등에 참여했다. 다큐라고는 하지만 영화이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긴 것도 아니고 촬영한 지 1년이나 지난 이야기를 하려니 때늦은 감도 있었지만, 덕분에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연기하는 거 따로 사람 사는 거 따로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연기는 사람 사는 거더란 말이죠, 정말 연기를 더잘 하려면 그렇게 또 해야 되고. 나중에는 가장 비슷한 장르가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기회가 좀 늦게 온 건데 예전부터 많이 하고 싶었어요. 제 개인적인 바람은 영화나 드라마를 하면서 꾸준히 다큐멘터리를 하는 겁니다.” 작가가 자신의 글을 통해 세상에 발을 들여놓듯, 배우도 자신의 작품을 통해 세상에 말을 건넨다. “극과 극은 안 좋다고 봐요, 저는 조화로운 게 좋은데, 배우라는 이유로 소극적으로 눈치를 보고 피해 다니는 것 말고 건강한 사회참여를 했으면 좋겠어요.”
배우에게 있어서 건강하고 좋은 사회참여는 작품으로 말하는 것이다. 1월 중순에 개봉하는 영화 <파파>는 이런 이유로 더욱 애착이 가는 영화다. “<파파>는 오락적으로 웃음이 많고 재미있는데, 그 이상으로 다가오는 감동이 있어요. 문화도 언어도 피부색도 다른 사람들이, 각기 외딴 섬처럼 따로 떨어져서 전혀 융화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결국 가족이 되고, 또 될 수 있다는 거죠. 이건 누가 봐도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요즘 들어서 되게 힘들다 힘들다 하시잖아요. 평상시에 굉장히 냉소적이고 이웃에 대한 피해의식도 많고. 무조건 빨리빨리, 그런 거에 길들여져 계신 것 같은데 본연의 마음은 다 중심에 갖고 계실 거라 봐요. 근원적, 근본적으로 따뜻한 정서들을 많이 잃고 지내시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건드렸으면 좋겠어요.”

배우, 선택받아야 하는 존재
하지만, 늘 이런 기회가 찾아오는 건 아니다. 우리는 자주 ‘배우가 시나리오를 보는 눈이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배우는 먼저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배우는 선택받는 직업이기 때문에, 배우가 아무리 시나리오 보는 능력이 탁월하고 타고나도, 그쪽에서 시켜주지 않으면 할 수 없어요.” 캐스팅은 배우의 몫이 아니다. 그 때문에 배우는 계속해서 자신을 보여주면서 선택받기 위해 노력한다. 시나리오가 오기 전까지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박용우에게 이 한계는 도리어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다. 하나님과 함께 다음 작품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제중원>, 그때부터 시작인 것 같은데, 하나님이 작품을 정해주시는 것 같아요. 작품으로 인도하시는 최초의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교회를 다시 다니기 시작한 건 4년 전쯤이었다. 어렸을 때 교회를 다니긴 했지만, 중학생이 된 이후 교회에 염증을 느껴 그만뒀단다. 그런 그에게 다시 교회에 가야만 할 일이 생겼다. 이왕에 다시 시작한 이상 그냥 다닐 순 없는 노릇, 하나님을 느낄 수 없어 답답한 마음에 기도를 했다.“ 하나님, 진짜 살아계시면 느끼게 해주세요, 증거를 보여주세요. 가짜로 다닐 수도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요.” 기도한 지 두 달쯤 지나자 하나님이 찾아오셨지만 두려운 마음이 커 쉽게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다 작품을 정해야 할 상황이 왔고, 그는 다시 하나님께 매달렸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저를 인도하신다면, 하나님 이야기가 나오는 작품을 저한테 주실 수 있으세요?” 선물처럼 떨어진 게 바로 <제중원>이었다. 구한말, 조선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제중원에서 백정 출신으로 조선 최초 외과의가 된 황정 역을 맡게 된 것이다. 극에서 서양의학을 소개하고 주도적으로 제중원을 세운 알렌은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다. 이뿐만 아니라 언더우드, 헤론, 앨러스 등 많은 선교사가 등장한다. <제중원>은 근대 서양 의학과 신분제를 뛰어넘은 성공과 사랑을 말하고 있지만, 초기 기독교 선교사들의 헌신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선교사에 대한 이야기라니, 참 감사하고 행복했어요.”


광야 길을 걷다
드라마를 마친 후, 그는 하나님께 더 기도했다. 다음 작품은 함께 작업하는 감독이 크리스천이면 좋겠다고. 아니나 다를까, 바로 왔다. <아이들...>의 이규만 감독이었다. 지금까지 촬영하면서 만난, 첫 크리스천 감독이었다. 함께 기도하며 즐겁고 행복하게 촬영을 했다. 착착 진행되고 보니 약간 들떴나 보다.“ 이 정도 나왔으면 진짜 잘 될 거다, 생각했죠. 으쓱으쓱 하고, 하나님을 좀 피했었단 말이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이들...>은 흥행했다. 200만의 관객이 영화를 보았고, 개구리소년실종사건이 재조명을 받은 데다 박용우란 배우의 입지를 다졌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을 배우가 잘났거나 영화를 잘 만들어서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잘난 것이 하나라도 있는가 생각을 해 봤다’고 고백하며 기도한 이규만 감독과 함께 하나님께 매달려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구했다.
“지금도 그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하나하나 가지치기를 하시는 것 같아요. 지금도 저는 양아치거든요. 기다려주시면서 하나씩 다듬으시고 조금씩 내려놓게 하시는 것 같아요. 독이든 약이든 한번에 안 주시고 다 내려놓을 수 있게, 애굽에서 가나안 가듯이, 그게 몇 십 년이 걸릴지 평생이 걸릴지는 모르죠.” 오만해질 수 있었던 그때, 하나님이 붙들어주셔서 넘어지지 않았다. 또한 감독님 뿐만 아니라 영화 일에 종사하는 믿음의 친구도 그 때 많이 만났다.
 
나를 내려 놓자 반짝이는 그들
<파파>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박용우를 이끌어가셨다. 이번 과제는 희생이었다. “이건 소재와 주제가 그야말로 하나님의 말씀 중에 가장 중요한 것들을 이야기해요. 살아보니까 중요한 단어들이 너무 많지만, 성경에도 나와 있듯이 믿음·소망·사랑을 얘기하시잖아요. 정말 확실하게 들어 있어요. 저는 사랑의 더 큰 말을 희생이라고 보는데, 그 희생이 들어 있어요.”
사랑과 희생은 영화 속 춘섭(박용우)이 배우고 획득해야 하는 것이기도 했다. <파파>는 도망간 톱스타를 찾다 불법체류자가 된 매니저 춘섭이 시민권을 얻기 위해 위장 결혼을 하여, 여섯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는 과정을 코믹하게 풀어낸 영화다. 관객은 <파파>를 보며 웃고 즐기다 어느 순간 그 희생을 마주 대하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사랑과 희생을 먼저 보여주신 그분의 그림자를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현장에서도 박용우는 많은 것을 양보하고 배려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얻었다고 했다. 해외 촬영이 대부분인데다가 아이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라, 현장에서는 아이들을 먼저 챙겨야 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아이들에게 연기 지도를 하고 리액션을 맞춰주고 나면, 진이 다 빠져 버렸다. 그 상태에서 자신의 연기를 해야 했다. “자신 있었어요, 정말. 비록 양아치지만, 하나 믿는 건 있었어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거. 연기나 체력적으로 너무 힘든 시간이었지만, 함께 해주신다는 증거를 많이 보여주셔서 즐거웠어요.” 광야 길을 걷는 자들에게 신을 닳지 않게 하신 하나님은 오늘 그의 마음을 지치지 않게 도우신다.

깊게 사랑하기로
그래도 한없이 부족한 것이 사람이다. 서로에게 실망하고는 괜히 하나님과도 서먹해진다. 그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아뜩한 얼굴이 살짝 비친다, 그동안 겪은 고생은 적지 않았나 보다. “그런데 하나 확실하게 박혀 있는 건 있어요.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봐야지, 사람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사람에 대한 공허함은 사람으로 풀 수 없어요. 그걸 하나님께서 저한테 정확하게 입혀주셨어요. 사람은 믿어야 할 것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존재구나.” 그간의 고생은 값진 열매를 맺었다.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보는 시선마저 달라진 것이다. “앞으로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갈등도 생길 테고 다툼도 있을 수 있고, 오해도 받을 수 있겠죠. 그런데 이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하나님이 매질을 가하든 당근을 주시든 어떤 형식으로든, 그게 얼마나 걸린 진 모르겠는데, 이끌어 주시지 않을까요.”

이제 마흔둘이 되는 박용우는 자신이 오늘 서 있는 자리를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 배우의 인지도나 영향력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배우의 길을 걸어간다, 물론 하나님과 함께. “지금 당장 제 모습은 모자란 부분이 많지만, 배우로서는 제 스스로 돌아봤을 때 나쁜 길로 가는 것 같지는 않아요. 괜찮은 길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중요한 건 2, 3년 전부터 제가 연기를 진심으로 즐기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그건 굉장히 행복하고 감사한 일죠. 더 깊이 몰두하고 싶어요.” 감정을 다루는 일이기에 더욱 연약해져야 하는 배우는 매너리즘과 같은 것 몇 가지 때문에 무너질 수 있다며, 자신은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하는 박용우. 하나님과 함께 걸어갈 길이 좁고 고되더라도 씨익하고 미소를 지으며 지금처럼 그렇게 꿋꿋이 걸어 나갈 그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