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괴물>에서 주인공 강두(송강호)는 딸 현서(고아성)를 괴물에게 빼앗긴 후 이곳저곳에 도움을 청해보지만 도리어 감금되어 바이러스 검사만 받는다. 겨우 탈출한 강두는 정부도 국가기관도 아닌 자신의 가족들과 자신만의 방법으로 딸을 찾아 나선다. 모두 알다시피, 이 이야기는 강두 가족이 괴물이 죽이는 것으로 끝나지만, 강두의 소중한 딸 현서는 이미 목숨을 잃은 뒤다.


괴물이 나타나다
지난 5월 10일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 약 한 달 전인 4월 12일에‘ 급성호흡기능상실’로 입원한 임산부 중 한 명이었다. 그 후 잇따라 세 명의 여성이 같은 증상으로 눈을 감았고, 현재 신고된 사망자만 46명에 이른다. 160명이 넘는 피해자의 대부분이 임산부와 영유아라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가슴 아프게 한다. 드러난 사인은 ‘인체에 해가 없다’는 가습기 살균제였다. 몸의 건강을 위해 사용했던 가습기 살균제가 도리어 수 많은 사람의 목숨을 잃게 하는 살인 병기로 둔갑한, 어이 없다 못해 무서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어떤 기준이 ‘인체에 해가 없다’라는 야심 찬 판단을 내리게 한 것일까.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안전하다는 말도 어느 정도는 맞다. 피부에 닿거나 실수로 마신다 할지라도 몸에는 흡수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살균 성분이 호흡기를 통해 들어올 경우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호흡을 통해 들어온 살균 성분은 몸에 흡수되어 폐에 쌓인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디작은 물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의 거대한 괴물이 되어 폐를 부식하게 하고 생명을 앗아간다. 결국, 아직 확인되지 않은 위험성은 가볍게 무시하는 주먹구구식 손익계산법이 사랑하는 가족을 영문도 모른 채 잃어야 하는 비극을 만들어낸 것이다.
시민단체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바이오사이드에 의한 환경 재앙으로 보고 있다. 바이오사이드biocide, 사전적 의미로는 생명 파괴제, 즉 생활에서 접하는 생명에 해로운 환경 물질을 가리키는 단어다. 환경 재앙은 특정한 몇 명이 아닌 불특정 다수에 해당하는 비극임을 의미한다. 정부가 외면해선 안 되는 이유다.

설마, 어물쩍 넘어가려고?
재앙과도 같은 이번 사건은 개인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현실은 SF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수거 명령만 내렸을 뿐, 이렇다 할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은 정부에게 요구한다. 이미 비극을 겪고 있는 사람과 앞으로 겪을지도 모르는 사람에 대한 보상과 다시는 같은 고통이 반복되지 않기 위한 대응책을 말이다. 하지만 묵묵부답, 해당 부처와 제조업체들은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바쁘다. 서로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며, 미리 알았더라면 제조나 판매 과정에 개입하여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았을 거라고 말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개인이 알아서 소송하고 대처하란다. 영화 <괴물>에서 괴물에게 딸을 잃은 강두와 그의 가족들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그들 각자의 힘으로 맞선다.
괴물의 모습과 괴물이 출몰한 장소만 다를 뿐, 현재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당면한 상황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소름끼치게 괴물과 닮았다.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정부와 기관은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않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의 오열만 끝없는 메아리가 되어 돌아와, 빈자리를 공허한 슬픔과 무력한 분노로 채울 뿐이다. SF영화보다 더 무서운 현실이다. 현실 속 ‘강두 가족’의 슬픔과 분노가 더 커지지 않도록 어서 해결책이 나오길 바란다. 글 윤지혜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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