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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2 03-04 싹, 틔움

싹, 틔움 4│달의 뒷면을 위로하는 노래, 송오브루나│<송오브루나> 연습 구경기


MBC의 간판 예능프로그램 <나는가수다>는 우리에게 ‘편곡’ 의 중요성을 알려주었다. 같은 곡이라도 
편곡과 악기 구성에 따라 전혀 다른 곡이 나올 수 있다. 편곡이 그날의 순위를 정하기도 했으니까. 편곡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굉장히 신비롭다. 건반에 앉은 누군가가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하며 그자리에서 뭔가를 뚝딱 만들어 내놓으면 가수는 자연스럽게 노래를 덧붙이곤 했다. 저게 어떻게 저렇게 될까, 음악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그저 신기할 수밖에! 이때를 기회로 삼아, 대책 없이 혹은 개념없이 빤빤한 얼굴로 물어보며 나에게도 그런 경험을 내려주시길 바랐다. “큰 환상을 품고 계시네요. 다 속는 거예요.” 누구나 환상을 품을 순 있지만, 환상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럼 나 이제, 어쩌지? 원유진 · 사진 김준영


다음날 있을 촬영 준비와 이후에 있을 공연 준비로 모인 ‘송오브루나(송루)’를 찾았다. 자기만의 곡이 있고 밴드라는 이유로 쉽게 이것저것을 떠올렸다. 문득 떠오른 한 구절로 한 곡의 가사를 만들어내고, 즉흥적으로 밴드연주가 이루어지는 그런 상상. 모든 예상은 빗나갔다. 잘못 오셨어요. 아니, 잘 모르고 왔던 거다.

차예지는 대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거나 어떤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의 느낌이나 해주고 싶
은 말이 떠오를 때마다 흥얼거리며 녹음해두고 일기를 쓰듯 꺼내어 곡을 만든다고 했다. 소리에 건반과 스트링을 입혀 기타 연주자에게 보내면 기타를 얹어 보내주는 식으로 곡을 만들어 나간다고. 어느 경우에는 연습하러 모인 날 악보를 건네주고 한 번 들려주면 거기에 맞춰 한 번 맞춰본다고 했다. 아, 업계 비밀인가 싶으면서도 정말 이게 다인가? 싶은 마음. “어떤 사람은 곡을 쓸 때 꽤 구체적인 그림을 가져오지만, (예지는) 뼈대가 되는 화성 멜로디만 가져와요. 기술적으로 복잡한 음악은 아니지만. (…) 겉돌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굉장히 거칠고, 흠을 잡으려면 어떻게든 잡을 수 있어요. (…) 어떻게 하면 노래가 잘 전달될까, 음악 자체가 와 닿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죠.”
 
 
연습실 구경을 바탕으로 재창작해보는
그날 연습실에서는...

예지_ 음, 우리 오늘은 현아 노래하구요. 내일 할 거 연습하고, 나머지는 한 번씩 해요.
현아_ 근데 내일 건반 쓰기 어렵다는데...
정배_ 윽, 거기 없대?
예지_ 음, 들고 가기도 애매하구요.
정배_ 그럼 뭐, 기타로 가보지. (현아, 건반에서 손을 뺀다) 아니, 건반 안 빠져도 돼.
...
정배_ (기타로) 패턴을 만들어 볼까. 중재야?
(만든다. 자기 할 연주를 하는 중재)
정배_ 여기서 싹 빠질 게. 네가 하는 걸로 해.
중재_ (끄덕)
정배_ 처음에는 인트로를 우리 둘이서. 여기 이런 데서 네가 애드립을 넣으면 되잖아.
정배_ 건반 볼륨, 이게 최대야?
예지_ 더 올릴게요. (현아에게) 세게 쳐도 돼, 괜찮아.
...
은창_ 몇 분 나왔어?
예지_ 3분 10초. 와 - 두 번 다 시간이 비슷해. 우리 최고다. 이거 정리해서 보내드릴게요.
...
예지_ 다음 곡은… 참 중재야 기억 나니? 다음 곡 지난번에 했던 대로 한 번 해볼까.
중재_ (끄덕)
예지_ (중재에게) 나 내일 너한테 제일 멀리 떨어져 앉을 거야.
중재_ ?
예지_ 쟤 옆에 있으면 내 머리가 너무 커보여. 연예인 머리 크기, 하하.
중재_ 저 내일 메이크업 좀 하려고요. 히히


세 시간이 지나도록 붙잡고 앉아서 이
야기를 나누다 알았다. 송루의 음악은 차예지의 머릿속에서나 연습실에서 생겨난 게 아니다. 송루의 네 멤버가 서로 인사하던 날, 함께 공연하고 서로 미안해하며 지내다가 함께하기로 정하던 날, 아마도 그 어느 날 사이에서 송루의 음악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송오브루나 Song of Luna
 
내가 아픈 곳은 달의 뒷면 같은데.
피 흘리는 곳도, 아무는 곳도,
짓무르고 덧나는 곳,
썩어가는 곳도 거기. 당신에게도,
누구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한강의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의 어디쯤에서 시작된 이름, 달의 뒷면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슬픔을 위로하고 싶은 유사 사제지간 밴드. 시작은 차예지-지현아 둘이었지만 ‘이상한 데 뭐지? 아무것도 없는데 왜 뭐가 있지? 뭔가 그 알 수 없는 매력이 있는데… 설명은 못하겠다만…’의 마성에 이끌려 김정배, 최은창이 함께하면서 송루밴드는 완성을 이루었다.


김정배(기타)
“집에 혼자 있
느니 일해요.”
송루의 대장님. 
회사원이 제안서를 내듯, 꼬박꼬박 가사를 써낸다는 직장인형 작사가, 대중음악프로듀서. 연결 짓기 어려울 수 있지만, 재즈기타리스트로 자신만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참! 그림을 잘 그린다.
 

최은창(베이스)
“악보를 눈앞
에 주면 아, 잘하면 되는 거지” 
시키면 하는 순종의 뮤지션. 힘이 없어 부드러운 베이스라고 주장. 과묵한 아이 아빠로 슬픈 날에는 아이 손을 붙잡고 울기도 하는 감수성의 소유자. 글을 잘 쓰는데, 그 이유는 가사를 못 써서라고. 가사가 약간 간지러운 나이가 되었다는 고백.

 


차예지(작사/곡, 보컬)
“제
가 쓴 곡은 거의 다 선물용이었어요.”
송루의 시원(始原). 누군가
의 이야기나 느낀 것들로 누군가에게 조금의 위로를 주고 싶은 마음에서 곡이 우러나온다. 어쩌면 차예지보다 ‘차차’ 로 더 유명할지도 모른다.



지현아(건반)
차예지의 제자
로 건반을 배워 당당히 합격. 그리고는 앨범을 내고 잠시 고민하는 선생님에게 힘을 북돋우어 함께 ‘송오브루나’ 를 만들어낸다. 대화 내내 조용했지만, 진중한 포스가 느껴지던 송오브루나의 막내. 지현아를 설명할 때 발랄한 보컬은 빼놓을 수 없다.


 


안중재(객원 기타)
기타 전공
의 실용음악과 학생으로 시간이 날 때 도와준다. 얼굴이 작아 연예인포스를 풍기는 엣지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