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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문화동네 사람들

당신의 사랑으로 마음껏 뛰어 오르다│배우 고아라


우리의 시간은 일 분 일 초가 균일하게 흐르지만, 우리가 살아낸 시간의 색채와 무게는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래서 시간은 개별로 흐른다. 대학 졸업반이라 취업을 고민하며 스펙을 쌓기 위해 고군분투하거나 배낭을 둘러메고 유럽의 어느 골목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를 스물셋의 봄은 당신에게 어떤 기억과 기대로 남아 있는지. 여기, 10년의 연기 경험을 쌓은 채로 다음 스텝을 준비하는 스물셋이 있다. 발랄하면서도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펼쳐 보이는 여배우, 고아라를 만났다. 글 원유진 · 사진 탁영한

반짝반짝 빛나는
“저 책 읽는 거 굉장히 좋아해요. 그렇게 안 생겼죠?” 스튜디오 촬영을 준비하는 사이에 건넨 책을 받으며 고아라는 말했다. 소설뿐만 아니라 장르를 크게 구분하지 않고 책을 읽는다는 고아라는 특히 시를 좋아해서 많이 읽고 쓰기도 한다고 말해주며 밝게 웃었다. 이렇게 짧게 나눈 대화에서도 고아라는 반짝이고 있었다.
짧은 순간에 카메라에 담길 자신의 모습을 설정하고 표현하는 순발력은 배우에게 중요한 자질이다. 연기보다 숨이 짧은 작업인 광고, 화보, 패션쇼에도 오랜 경험을 지닌 고아라는 촬영을 도와줄 오브제라고는 전혀 없는 빈 공간에서도 시시각각 다른 표정과 몸짓으로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이런 연기 이외의 활동이 배우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지 궁금했다. “저 같은 경우는 일상생활 모든 게 다 연기와 연관이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학교에 다니거나 런웨이에 서거나 화보 촬영을 하는 모든 것이 다요. 제 삼자 처지에서 제 모습을 관찰하기도 하고요. 그때그때 많은 것을 느끼려고 하는 편이에요.” 올해로 배우 10년 차, 갓 일을 시작한 신출내기에게선 발견할 수 없는 시간의 결을 느낄 수 있었다. 생활 그 자체가 배우에 집중된 삶, 일상의 순간마저 연기에 집중하는 확고한 의지가 엿보인다.

푯대를 향하여 내달린 시간
고아라는 2003년 지금의 소속사에 들어간 후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청소년 드라마 <반올림>의 주연을 맡으며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만약에 <반올림>이란 작품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제가 제 꿈이나 제가 가는 길에 있어서 또 다른 길로 돌아왔을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래서 운명이라고 생각을 해요.” 청소년기 또래의 삶과 고민을 드라마로 풀어낸 고아라는 이후 거침없이 새로운 도전을 향해 달렸다. 몽골-일본 합작영화 <푸른 늑대 - 땅끝 바다가 다하는 곳까지>에 참여해 칭기즈 칸의 두 번째 여인으로, 일본 영화 <스바루>에서는 천재 발레리나로 분하여 배우로서 입지를 넓혔다. “아무래도 어렸을 때 너무 정신없이 데뷔해서 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까, 거의 5년? 제가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일본을 왔다 갔다 하며 활동을 했어요. 국내에서도 쉬지 않고 작품을 하다 보니 사생활도 없었죠.” 
쉴 틈 없이 배우의 길을 달리던 고아라는 2009년, 드라마를 마치고 1년 정도의 공백기를 보냈다.“ 그 시간에 정말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 자신을 많이 돌아보고. 배우관, 가치관도 많이 변해서 작품을 고르며 고뇌를 했던 건 사실이에요. 어떤 작품으로 찾아뵐까, 난 어떤 배우가 되고 싶고, 어떤 작품을 하게 될까.” 그런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 바로 영화 <페이스메이커>와 <파파>였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는 연기파 배우로 정평이 난 김명민과 박용우. “두 분 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죠. 장대높이뛰기선수 유지원 역할은 명민 선배님이 안 계셨으면 그렇게까지 못했을 것 같아요. 정말 자극을 많이 받은 게 사실이고요.”
고아라는 김명민에게서 배역을 향한 자세와 소름이 돋을 정도의 집중력을 배웠다. 맡은 배역을 잘 표현해내기 위해 국가대표 선수처럼 일정을 짜서 운동하고 몸을 만들어 나가면서 배역에 몰입하는 법을 익혔다. “두세 번의 좌절이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이를 더 악물고 뛸 수 있었던 건 명민 선배님의 자극이 컸던 것 같아요. 부상을 당했을 때도 진짜 선수들이 경기 나가기 전에 부상을 당했을 때의 기분이나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부상 또한 감사했고요.” 부상마저 배역에 몰입하는 기회로 삼아 감사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배우의 자세다.
박용우와 함께 작업한 <파파>에서도 고아라의 열정은 빛났다. “용우 오빠 같은 경우도, 두 분 다 스타일이 다르시지만, 그 배역에 임하는 자세가 진지하기로 유명하시잖아요. 현장의 모습이나 호흡 같은 것을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파파>는 연기뿐만 아니라 미국의 촬영 시스템을 익힐 좋은 기회였다. 로케이션 촬영이 아닌, 미국 현지 프로듀서와 함께 트레일러, 스태프, 법적 절차, 계약 등 모두 할리우드 시스템에 맞춰 진행했기 때문이다. 물론, 쉽지 않았다“. 미션임파서블이었구요. 정말 촬영을 다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시간이 없었고, 현장 상황도 넉넉지 못해서 기적처럼 촬영하고 나왔어요.” 힘들었던 시간을 말하는 와중에도 감사를 잊지 않았다. “외국 스태프, 배우들과 연기하며 새로운 문화를 접했던 것 같아서 저한테는 너무너무 좋은 기회였죠.”

고아라는 유독 국외 촬영 경험이 많다. 몽골, 상해, 일본, 홍콩 등 한국을 벗어나면 고생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지만 개의치 않고 끊임없이 도전했다. 한밤중에 응급실에 실려갈 만큼 고생을 하면서도 다시 도전하는 것은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병치레도 많았던 것 같고, 여러 가지 일이 있었는데, 그 안에서 배우 생활을 하거나 제 인생을 폭넓게 할 수 있는 활동을 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좋은 경험이었어요.” 그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도 상당하다. 나라의 특성에 따라 연기의 스타일, 대사부터 스케줄 조율 방법까지 다양하지만 그 속에서 ‘사람’을 발견했다. “그런 거는 언어와 문화가 다를 뿐이지, 사람은 다 똑같다는 느낌은 늘 받아왔던 것 같아요.” 



범사에 감사하는 삶
힘든 상황에서도 감사를 잊지 않고, 쉼 없이 돌아가는 생활에서도 함몰되지 않는 데는 고아라의 긍정적인 성격이 한몫한다. 이른 나이에 데뷔하여 이내 스타의 자리에 오른 고아라를 지치지 않게 하는 힘이다. “꽤 긍정적인 편이라서 아무래도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고,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다고 생각을 하는 편이에요. 특히 청소년기에 <반올림>으로 큰 사랑을 받고 이후에도 사랑을 해주셔서 정말 돌아다니는 게 쉽지 않았던 터라 자유가 없었던 것도 맞고, 학창시절을 남과 똑같이 지내지 못한 거에 대한 아쉬움이나 서러움이 가끔 있었을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다 똑같은 것 같아요.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하면 다 똑같은 거니까.”
고아라라고 힘들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때마다 함께해준 지인과 가족이 있기 때문에 고아라는 새 힘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부모님의 영향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제겐 어머니께서 항상 든든한 멘토이자 페이스메이커라고 할 수 있죠.”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시작된 신앙은 고아라의 삶에 바탕이다. 학창시절을 되짚어보면, 누군가는 주일 아침 교회에 가기 위해 일찍 나는 게 힘들어 늑장을 부렸던 기억이 있을 법도 한데, 고아라는 그렇지 않았다. “스스로 교회를 나갔어요. 교회를 좋아해서. 부모님의 영향이 크겠죠. 어렸을 때부터 그런 환경에 익숙하고 좋아하는 것들이 있었으니까요.” 지금도 주일 성수를 지키려 애쓴다. “주일 예배 나가는 건 당연한 거구요. 직업적으로 불규칙한 부분이 많고, 외국촬영도 있고. 10년가량 활동하다 보니까 노하우는 생긴 것 같아요.”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은 새벽 예배로 이어진다. “힘들고 지치고, 아니면 기운을 얻고 싶을 땐 새벽기도를 자주 나가는 편이에요.” 
<파파>를 촬영할 때에도 주일이면 교회를 찾았다. 또한, 함께 작업한 사람들과 기도 모임을 하기도 했다. “자주는 못했지만 몇 번 정도 했던 게 큰 힘을 주었고 단합하는 데 큰 도움을 준 것 같아요.” 그러나 고아라는 유별하거나 합리화하는 신앙을 경계한다. 힘들 때만 붙잡는 신앙보다는 믿음 있는 사람으로 살기를 원한다.“ 제가 배우를 하지 않고 다른 삶을 살았더라도 신앙이 없었으면 제 꿈이나, 제 갈 길 가는 거에 더 많이 힘들지 않았을까 ……. 아주 큰 힘이 되긴 했던 것 같아요.”

“자신의 목표를 정해놓고 달성하는 데 매진하는 스타일이어서 남의 시선이나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를 이루려고 달려가는 것은 지원이랑 비슷한 점이 많아요.” 영화 <페이스메이커>에서 자신이 정한 목표 4미터 40을 성공하고 폴짝폴짝 뛰며 좋아하는 유지원의 모습에 고아라가 겹친다.

“많은 사람, 다양한 캐릭터, 많은 삶을 담아보고 싶어요. 다양한 색깔을 표현할 수 있는, 담을 수 있는 배우. 다양한 배역을 잘 소화해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다음 작품을 살피며 숨 고르기 중인 고아라는 대학생으로서 마지막 1년을 보내고 있다. 실제의 경험에 이론이라는 단단한 기초를 세우고 있는 고아라의 스물셋. 그 싱그러운 봄날을 사는 고아라의 마음이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