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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2 05-06 가족관계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 특집 2 _ 보통의 가족, 그래서 특별한│편집숍 LAMB의 두 디자이너 - 정영숙, 허유


   

가족’ 이란 단지 피로 맺은 관계를 일컫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그 두 글자에서 함께 울고 웃는 느낌의 공동체로서 결속력을 기대한다. 사회 전반에 걸쳐 ‘안정’ 이란 말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시대에 ‘가족’ 의 의미를 돌아보는 것은, 단 하나의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정의를 내려보는 것이다. 
하얀 찻잔과 접시 위, 하늘거리는 듯한 스커트나 파스텔 톤 고운 원피스를 그려 넣었다. 남달리 예쁜 이 그림은 아들이 디자인한 옷을 어머니가 직접 그린 것이라고 했다. 예술가 어머니와 그 재능을 이어받은 아들이겠거니 짐작하고 가족간의 ‘특별한 정’ 을 살피러 계동에 있는 편집숍 LAMB을 찾아갔다. 글 박윤지 · 사진 김준영


함께 일한다는 것
허유 디자이너와 그의 어머니 정영숙 어시스턴트 디자이너는 10년째 LAMB을 운영했다. 아들은 옷을 디자인하고, 어머니는 봉제한다. 10년 전 소격동 뒷골목에 가게를 열었을 땐, 처음 해보는 장사가 막연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허유는 패션 디자이너로서 사회 초년생이었고, 어머니는 30년 넘게 간호사로서 직장생활을 했어도 장사에는 문외한이었으니까.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어머니와 일을 한 것은요. 첫 사회생활에서 배우고 느끼는 것은 다른 이들과 비슷하겠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이 엄마이기 때문에 느끼는 신기함이 있죠. 보통 직장에서는 조건이나 연봉도 고려해야 하고, 뜻이 안 맞으면 일을 그만두거나 쉬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LAMB을 운영하면서는 한 번도 그런 적 없이 십 년이 지난 셈이에요.” 
오랫동안 가게를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어머니는 가족으로서 관점이 아닌, 리더가 지녀야 할 자질을 짚었다. “사장님이 디자인을 주면서 봉제를 해달라고 하면, 방식이 어렵고 안 될 것 같은데 싶으면서도, 했어요. 아들이 아름다운 것에 심취하고 추구하는 것을 아니까요. 결국, 아름다운 옷이 나오고, 그게 사람들에게 멋있다고 팔리니까 기뻤죠. 그런 경험이 쌓이니 디자인 면에서는 사장님을 더 인정하고 존중하게 된 거죠. 엄마로서 조건 없는 지원은 아니에요.” 
그리고 아들은 어머니의 디자이너로서 실력을 인정하고 존중한다. “어머니는 예쁜 걸 보는 안목이 있으세요. 제가 봉제를 맡기지만, 결국 사람의 손으로 하는 일이니까, 옷이 만들어지는 건 어머니 자신의 능력의 연장선인 거죠. 때로는 어머니가 더 디자이너스러울(?) 때도 있어요. 함께 감성적인 오브젝트를 만들지만, 계속 일을 해야겠다고 파트너십을 발휘하는 지점은 굉장히 이성적이에요, 저도 모르게.” 

일에 관한 영역은 두 사람이 말한 대로 어디까지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차원이었다. 조직이라면 공동의 목표와 보상이 있고, 구성원들이 그것을 공유해야만 계속 일을 진행할 수 있는 것처럼, LAMB도 마찬가지였다. 일방적인 희생이 전제된‘ 가족 간의 특별한 정’을 엿보기보단, 오히려 손발이 잘 맞는 직장 동료 두 사람을 만난 것같은 느낌이었다.

닮음과 다름을 인정하며
가족이란 두 글자가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고, 구속이나 족쇄가 되지 않는 데 필요한 첫 번째 단추는 서로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다. 서로에게 강자나 약자가 되지 않고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어렵지만 중요한 일이다. 물론 다른 점이 더 많겠지만, 두 사람은 평소에 좋은 것 싫은 것을 분명히 표현하는 솔직한 성격이 닮았다. 그래서 어머니와 아들이자 사장과 직원 사이로서 의사소통 문제 때문에 감정이 상할 일은 거의 없다. 
예술적 재능과 취향도 닮았다. 꾸준히 노력하면서 공동의 작업을 통해 각자의 소질을 계발하고 있다. 이제 어머니는 이 가게의 어시스턴트 디자이너로서 직접 의상을 디자인하고 만들기도 한다. 그 찻잔의 그림은 원래 허유 디자이너가 주문지에 그린 것이다. “어느 날 사장님이 찻잔에 옷을 그려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을 했어요. 저도 사장님의 그림을 옮겨 그리다 보니, 어느새 그만큼이나 그림 솜씨가 늘었죠. 지금도 사장님께 조언을 구하면서 계속 저만의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허유 디자이너가 마네킹에 걸려 있던 ‘어머니가 만든 머플러’를 칭찬하면서, 단번에 눈에 띄는 것보다 소소한 아름다움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자, 어머니는 번잡하고 날뛰는 건 싫다며 말을 이었다.

어머니의 가장 아끼는 작품을 보았다. 전에 아들이 마음대로 만들어 보라는 말과 함께 준 열세 가지 색실. 어머니는 그걸로 오랜 시간과 묵직한 정성을 들여 침대 위에 놓는 베드 스프레드침대 덮개를 짰다. 팔려고도 했지만, 이제는 유산으로 남겨주고 싶을 만큼 애착이 생겨 간직하고 있다. 
이렇듯 서로 다른 색실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근사한 작품이 되는 데에는, 각각의 색 그대로가 빛날 수 있어야 한다. 아름다운 무늬를 위해 간격의 조절도 중요하다. 오밀조밀하기도 하고 느슨하기도 하고. 그렇게 만든 보드랍고 따뜻한 이 베드 스프레드가 우리가 기대하는 가족의 모습이 아닐까. 평범하지만 특별한 또 하나의 가족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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