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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살림의 나날

내 사랑의 언어를 찾아서

서른 살이던 봄, 나는 결혼을 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너 아니면 안 되는 죽을 것 같이 가슴 아픈 사랑 한 번 못 해보고, 놓치면 후회할 것 같은 사람과 결혼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유로 시외할머니와 아가씨, 시부모님이 사시는 시댁에 들어 살았다. 층층시하에서 너끈히 사신 엄마를 보고 자란 나는 시집살이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야행성 인간인지라 아침잠 많은 나의 태생적 한계는 시외할머니의 눈엣가시였다. 아무리 일찍 일어나려 해도 새벽 4-5시면 일어나 활동하시는 시외할머니의 성에는 차지 않았고 시부모님이 새벽기도 다녀오시는 시간에도 미치지 못했다.
물론 정말 잘하는 사람에 비하면 하찮은 노력에 불과하겠으나 나름 아무리 애를 써도 시외할머니의 기대치에 도달하기는 힘들었고, 맞벌이 새댁 노릇도 버거웠다. 네가 한 게 뭐 있다고 힘드냐고 누가 묻는다면 딱히 대답할 말이 없는 수고였지만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목이 안 돌아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버겁게 새로운 삶을 익히던 어느 토요일 낮, 온 가족이 출근하고(시외할머니는 교회 투어를 가심) 토요 격주 휴무인 나만 딸랑 혼자 남아 있었다. 간만의 자유로움을 누린 것도 잠시 홀로 집에서 창밖을 바라보는데 마음이 착 가라앉으면서 우울함이 밀려왔다. 나는 결혼한 언니 넷을 보아온 터라 결혼에 대해 거창한 기대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게 결혼생활일 줄 몰랐다. 따로 신혼살림을 차려 둘이서 주도적이고 살뜰하게 살았다면 덜 지루했을지 모르지만 본질적인 고독과 외로움은 크게 다를 바 없을 것 같았다.

남편은 총점이 가장 높았다. 감정, 신뢰, 성품 등등 모든 점수를 합산했을 때 내가 이전에 만난 그 어떤 이보다 총점이 높은 남자였다. 앞으로 살아가며 이런 사람 또 못 만날 것 같은 느낌과 만약 내 아이가 이 사람을 닮는다면 어떨까 생각했을 때 ‘괜찮겠다’는 확신이 들어 결혼을 결심했다. 감정에서 출발한 사랑이라기보다는 신뢰에서 출발한 사랑이었다. 사랑의 감정을 믿고 다른 모든 것들을 용납하듯이 나는 신뢰의 감정을 믿고 사랑을 구했다. 물론 내가 마음을 비우고 썼던 기도 제목에도 합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남들은 깨 볶는다는 신혼 2개월 차에 나는 고독했다. 행여 살다가 정말 근사한 사람이 나타나 나 좋다고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할지 고민했을 정도니까(드라마의 병폐임을 인정한다). 그냥그냥 크게 흠 잡을 것 없는 남편과 시댁을 두고 사랑을 따라 떠나야 하나 아님 속 쓰린 마음을 안고 살아야 하나 참 진지하게 고민했던 그해 그 봄. 
하지만 그 다음 봄에는 볼록해진 뱃속의 태동을 느끼느라 그 담담 봄에는 애기 똥 기저귀 치우느라 그리고 그 담담담 봄에는 일 다니며 애 키우느라….
그렇게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나는 지금 남편과 같이 9번째 봄을 맞이하고 있다. 그 사이 나는 수많은 남정네들에게-현빈, 고수, 이제훈, 원빈 등등- 맘을 빼앗기고 살았으나 근사한 남정네가 나 좋다고 죽자고 따라다닌 일은 없었던 고로 신혼 첫 해 그 지루했던 봄날의 고민은 자동 해결이 되었다. 
그리고 지루했던 일상은 아이들의 웃음과 억지와 뒤치다꺼리로 채워져 지루할 틈이 없어졌으며 맹맹한 듯 느껴졌던 남편을 향한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발효가 되어 현빈이 쫓아와도 잠시 연애는 해볼지언정 따라가진 않을 만큼 무르익었다. 연애시절보다 지금 남편이 더 좋다(하지만 현빈이 따라오면 난 기필코 연애할 테닷!). 

지난 내 삶을 돌아보면 내 사랑의 언어는 신뢰였다. 그 언어는 내가 받고 자란 사랑이 빚어낸 살면서 다양한 사랑의 경험들을 통해 형성된 것이어서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언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사랑의 언어를 깨닫기 전까지 나는 드라마에 나오는 목숨 건 사랑에 마음 혹하기도 하고, 오직 믿음의 이유로 사랑을 선택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끼기도 했다. 뭔가 물 흐르듯 편하게 흘러가는 감정은 사랑이 아닌 것 같고 사랑이라고 인정하기엔 억울했던 마음이 있었다(‘사랑이란건 좀 다이나믹해야 하는거 아냐?’ 하는 마음이었을 거다). 하지만 나는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내 사랑의 언어가 신뢰임을 알았고, 그 사랑의 언어에 바탕한 선택을 했다. 물론 그 선택은 불타는 감정에 바탕한 선택의 결과에 뒤지지 않았고 내 삶을 더욱 넘치게 해주었다. 
나는 모든 사람이 자기만의 사랑의 언어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른 이가 쓰는 사랑의 언어가 더 멋져 보여 혹할 수도 있고 넘볼 수도 있지만 결국은 내 사랑의 언어를 선택할 때 나 자신이, 나의 삶이 더 풍성해지리라 믿는다. 결국 내 사랑의 언어는 내 삶의 언어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사랑이 갈한 당신에게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의 사랑의 언어는 무엇인가요?”


이경희|필명 조각목, 소싯적 옷 만들고 책 만들다 결혼 후 마님으로 살면서 음지에서 야매상담가로 맹활약 중. 바느질에 관심을 쏟다가 목 디스크 때문에 그만두고 페이스북 에서 수다 떨듯 글을 쓰다가 최근 작가와 출판전문기획자를 동시에 해보기로 결심함. 여성의전화 소식지 기획위원, 지역신문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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