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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다/뉴스 따라잡기

민자의 역습

최근 민간 자본을 유치해 만든 서울 지하철 9호선이 요금을 한꺼번에 5백 원씩이나 올리겠다고 예고하면서 잡음이 일었습니다. ‘서민의 발’인 지하철 요금을 한꺼번에 50퍼센트 가까이 올리겠다는 건 전례가 없던 발상인데요. 이쯤되면 민자 사업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의 빠듯한 예산으로는 지하철이나 도로, 다리나 터널 같은 SOC(사회간접자본)를 한꺼번에 만들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9호선의 경우처럼, 정부가 일단 민간 사업자에게 건설을 맡긴 다음 일정 기간 운영권을 주는 방식의 민자사업이 필요하게 된 것이지요. 정부로서는 빠르게 SOC를 확보할 수 있고 민간 사업자는 수익을 낼 수 있으니, 이론적으로는 모두에게 이득인 것처럼 보입니다. 
인천공항 고속도로, 서울의 우면산 터널, 서울-춘천 고속도로, 천안-논산 고속도로 등을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었는데요. 공통점이 있습니다. 같은 거리를 이동한다고 가정했을 때에, 민자로 만든 시설이 정부가 지은 시설보다 이용 요금이 비싸다는 것이지요. 정부와 달리 민간 사업자는 계약 기간 동안에만 이용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이 투자한 금액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정부보다 요금을 비싸게 책정할 가능이 큰 겁니다. 9호선 역시 투자금액을 건지기 위해 요금을 올리겠다고 나선 거고요. 

민간 사업자가 갖고 있는 카드는 ‘요금 인상’ 뿐이 아닙니다. 보통 민자사업 계약에는 민간 사업자에게 일정한 수입을 보장해주는 약속을 포함해 계약을 맺었었는데요. 이용자 수를 예측해 예상 수입을 산정한 다음, 실제 수입이 예상에 못 미칠 경우 정부가 이를 보전해주는 식이지요. 문제는 대개의 경우 민자사업 예상 수입이 부풀려져있어, 이용 요금만으로는 그만큼 돈을 벌지 못 하는 민간사업자들이 정부에게서 매년 천문학적인 금액을 보전 받고 있다는 겁니다. 
실례로 정부는 지난해까지 인천공항고속도로 사업에 9천억 원 넘는 돈을 보전해 줬고, 천안-논산 고속도로 사업에는 약 3천4백억 원을 물어줬습니다. 용인시의 경우에는 민자로 만든 경전철 수요 예측이 뻥튀기 돼, 아예 용인시가 파산에 이를 뻔 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9호선 사업의 경우에도, 재작년 기준으로 서울시가 보전해준 금액만 3백억 원에 이르는데요. 민간 사업자로서는 잃을 것이 없는 장사라는 얘기가 이래서 나오는 겁니다. 

민간 사업자의 정체 역시 쟁점이 되어 왔습니다. 9호선을 비롯해 규모가 큰 민자사업의 경우 대부분 재벌기업이 사업을 맡아왔는데요. 게다가 인천공항고속도로와 천안-논산 고속도로처럼 전국적으로 굵직한 민자사업을 유치해 단연 눈에 띄는 수입을 내 온 외국계 투자회사에는 대통령의 친조카가 계열사 대표로 있었던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들이, 공무원들이 민간 사업자와 유착해 의도적으로 정부 재정을 축내고, 정부가 불필요한 사업을 벌이며 재벌 등에 특혜를 주고 있다는 음모론의 근거가 돼 온 겁니다. 

부족한 정부 재정을 대신해 투자한 민간 사업자들이 없었다면 SOC 확충 속도는 느려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그 공로로 민간 사업자들은 많게는 3배 가까이 비싼 요금에다, 정부에게서 일정 수입까지 보전 받으며 투자의 위험을 줄여 왔습니다. 예상 수입을 올리지 못했다며 요금을 왕창 올리겠다는 9호선의 방침이 몰염치라 비난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돈 버는 일에 염치 따지는 일은 그만두더라도, 이번 논란이 ‘5백 원 인상 선언’으로 충격을 준 다음 사실은 그 중간쯤으로 요금을 올려보려는 꼼수로 끝나지 않기를 기대해 봅니다. 시민들의 발을 볼모로 삼은 주객이 전도된 꼼수 말입니다.


조현용| 커다란 머리만큼이나 세상의 아픔을 돌아보고 알리고 싶은 MBC 기자. 사실 부지런하기보다는 게으르고 한 곳에 머무르기보다는 여러 나라를 개 마냥 싸돌아다니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하고, 화려한 밥상보다 오직 맛있는 연유가 들어간 모카빵을 좋아하는, 크리스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