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대 청년. 지금이야 흔한 말이지만 제가 유초등부에 있을 때는 아니었습니다. 으레 결혼해서 남녀전도회로 자연스레 넘어갔지요. 결혼 연령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삼십 대 청년은 늘어가고 청년부 안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합니다. 점점 청년의 나이 스펙트럼이 넓어졌습니다. 이제는 삼십 대는 물론, 사십 대청년도 드물지 않습니다. 그러다 스무 살 대학 초년생과 삼십 대 중후반의 회사원이 한데 모이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규모가 큰 교회는 나이에 맞춰 나눌 수라도 있지만 작은 교회는 속수무책입니다. 그래도 청년부는 꾸려야 하다보니 이런저런 해결책이 등장합니다. 소그룹 리더입니다.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가르치는 자리에 앉게 된 것입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제가 속한 청년부는 얼마 전부터 소그룹 성경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리더를 맡았습니다. 당연히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나이가 많아서’입니다. 
교인 수가 적은 교회는 규모가 큰 교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구조화가 덜 되어 있습니다. 변명입니다만, 작은 교회에서 마땅한 리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채로 리더 훈련 없이 컸습니다. 그래서 막상 제 앞에‘ 리더’라는 멍석이 깔렸을 때 저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습니다. 발만 동동 구른다고 해서 다음 주일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니 일단 부딪쳐보기로 합니다. 서너 명이 한 책상에 둘러앉습니다. 교재에 맞춰 성경을 읽고 그 뜻과 삶의 교훈을 고민하고 한 주간 겪은 일을 나눕니다. 혹시나 놓친 부분이 있을까 봐 답을 끌어내는 질문을 던집니다. 반응이 없습니다. 애가 탑니다. 기도제목을 나누는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만나는 갈등 앞에 우리 청년이 힘들어합니다. 그때 내가 어떻게 해결했더라? 아, 그런데 이럴 수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잔소리를 해대고 있지 않겠습니까?

노파심, 지나치게 염려하는 할머니의 마음
많은 나이가 아닌데도, 해마다 꼬박꼬박 나이를 더해보니 알겠습니다. 기회만 생기면 가르치고 싶어 안달이 납니다. “얘들아, 그거 나도 고민해봤어.” “그럴 땐, 이렇게 하는 게 최고야. 딴거 백날 해봐야 아무 소용 없어. 내 말 들어.” 이게 뭔가요. ‘내가 해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는 유행어도 아니고! ‘과시용’으로 하는 말, 당연히 아닙니다. 그저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시행착오를 거듭할수록 그 마음이 커집니다. 아파 봤기에 더 절실해집니다. 
이제 서른 초반인 지금도 이러한데, 몇 년 뒤엔 어떻겠습니까? 이런 저를 보며, 제 나이를 먼저 살아 내신 분은 제게 하고 싶은 말이 많으실 겁니다. 그런데요, 저 요즘 그게 필요한 거 있죠? 쳐다도 안 보던 자기계발서를 뒤적입니다. 조언을 찾는 제 마음이 밖으로 향했나 봅니다. 저만의 문제일까요?‘ 서른’이란 제목이 들어간 책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말해주고 싶은 사람과 들으려는 사람이 많다는 방증일 겁니다. 하지만 저도 압니다. 조언과 잔소리는 분명 다르다는 것을. ‘아차’ 했지만, 조언으로 시작한 말은 잔소리로 변한 지 오래입니다. 

데어봐야 물이 뜨거운 줄 알고, 맞아봐야만 아픈 줄 아는 게 사람입니다. 나쁜 남자 조심하라고 누누이 이야기해도 크게 상처받기 전에는 모르잖아요. 마찬가집니다. 그 나이에 맞게 해야 하는 고민이 있고 치열한 싸움이 있어야 결론 나는 것이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 나이 스무 살, 철딱서니 없이 이리 넘어지고 저리 부딪치며 사느라 안팎으로 상처가 없는 날이 없었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발등 찍혀 피를 철철 흘리지를 않나, 없는 길 만들며 가겠다고 큰소리 뻥뻥 치다 길을 잃어 헤맨 적은 또 얼마나 많은지! 그런데 그때마다 상처를 보아주고 위로해 준 선배들이 있었습니다. 만신창이가 되어도 혼내거나 잔소리를 하기는 커녕, 따뜻한 밥을 지어 먹이는 어른이 있었지요. 그분들 때문에 저는 흔들리면서도 저를 찾으며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리더십이란 결국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조언도 잔소리도 필요치 않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때를 기다려 필요한 때에 손을 내밀어 주는 것. 이렇게 잘 배워놓고는 저는 계속해서 딴짓하고 있었지 뭐에요. 배은망덕이 따로 없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제라도 노력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입을 닫고 인내하는 법부터 배워야겠습니다. 또 누군가는 저의 이 결심을 인내하며 기다렸겠지요? 글 원유진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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