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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편집장의 편지

느림의 즐거움, 슬로푸드 | 편집장의 글


소박한 밥상 


쇠고기 문제로 온 나라가 들썩였다. 광우병의 위험이 있는 미국 쇠고기를 반대하며 서울 한 복판은 연일 촛불이 수를 놓았다. 학교급식을 우려하는 청소년들, 다음 세대 아이들을 염려하는 유모차 어머니들이 거리로 나왔던,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념과 정치의 문제가 아닌, 우리 식탁의 안전한 먹을거리를 위한 ‘삶’의 문제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가난해서 먹을 것이 없어 걱정했던 시절을 지나 이제 우리는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가를 염려해야 할 시대로 전환되었다. 안심하고 먹을 게 없으니, 농촌을 등지고 도시로 쏠렸던 성장은 우리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조금씩 해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와 후회스럽게 깨닫는다. 20여 년 전만 해도 먹을 것을 거의 자급자족했던 이 나라가 이제는 쌀을 제외한 곡물의 자급력이 겨우 5%에 불과하다고 하니, 우리 식탁의 세계화가 결국 먹을거리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되었다. 이제 수입하기 시작한 ‘GMO 옥수수(대량생산을 위해 살충성분을 갖도록 유전자 조작한 것)’에 대한 논란 또한 계속 이어질 것이 뻔하다. 우리가 먹는 가공식품의 대부분이 GMO 농산물로 만들어지는 까닭에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안전한 먹을거리로 만든 식사와 전통 음식의 보존, 미각의 즐거움 등을 중요시 하는 슬로푸드에 대한 관심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제대로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백화점, 마트, 슈퍼마켓에는 반드시 ‘유기농’, ‘친환경’ 식품이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고, 패스트푸드점조차 웰빙음식, 건강메뉴를 계발하는데 여념이 없으며, 친환경 레스토랑, 유기농 밥집, 카페, 베이커리 등도 매우 인기이다. 밥의 문제는 삶의 문제다. 슬로푸드는 자연을 믿는 것이고, 그것은 자연을 만드신 그분을 믿는 것이다. 이는 곧 몸의 건강과 삶의 가치를 새롭게 하는 일이다. 내 고장이나 가까운 곳에서 나는 ‘로컬푸드’로 만들어진 소박한 밥상을 즐겼던 선조들의 삶에 다시 우리의 지혜를 기울일 때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인터넷 미디어에 비하면 두 달에 한번 발행되는 이 잡지는 말할 수 없이 느리다. 그래서 때로는 이렇게 진을 빼며 잡지를 만드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에 흔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비록 대량생산해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훑고 지나가는 잡지는 아니지만, <오늘>을 만났던 한 사람, 한 사람, 그 누군가에게 천천히 씹고 소화시켜도 좋을 거친 음식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히 감사하다. <오늘>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을 더욱 건강하게 할 소박한 밥상이길 바란다면, 너무 소박한 꿈일까. 

 

노영신 |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