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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문화동네 사람들

하늘빛 머금고 생명을 흩뿌리다│배우 김정화


스타.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아 화려해 보이지만 그 빛이 너무 밝아 과연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할 때가 있다. 게다가 감정을 극한으로 쓰는 게 일인 배우라면 자신과 싸움도 치열할 터. 이런 전쟁터와 같은 곳에서도 신앙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연기와 나눔이라는 두 기둥을 세워가는 여배우, 김정화를 만났다. 글 원유진 · 사진 탁영한

얼마 전 종영한 대하사극 <광개토태왕>에서 김정화는 말갈족의 여전사로 열연했다. 1년 가까이 무거운 갑옷을 입고 말을 타야 하니 체력적인 부담도 상당했다. 호흡이 긴 만큼 대기 시간도 길고 촬영 일정의 변화도 많아 문경으로 내려다가 돌아온 적도 있다. “옛날 같았으면 어린 생각에 불평불만도 많이 했을 거예요. 하지만 이번에는 그래도 잘 견디지 않았나 해요. 스스로 칭찬해 주고 싶은 시간이었어요.” 현장에서 갈등이 일어날 만한 상황이 생겨도, 어머니가 아프셔서 병원과 촬영장을 오갈 때에도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 하나님은 좋은 사람들을 보내주셔서 함께 문제를 이겨낼 수 있도록 도우셨다.
드라마를 마치며 김정화가 배운 것은 사람과 관계였다.“ 저는 배우들과 사적으로 잘 만나지 않아요. 이번에는 그런 걸 많이 했어요. 선배님들 인생 얘기도 듣고 제가 힘든 일이 있을 때 의지하기도 하고, 조언도 해주시고. 이게 사람 사는 거구나 했죠.”

배우로, 김정화로 자라나는 시간
촬영 기간에 김정화는 서른을 맞았다. “나이를 먹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예전이 좀 서툴고 어설프고 뭔가 나 스스로 자리 잡지 않았을 때라면 지금은 점점 더 그런 걸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서른이 됐을 때 그만큼 성숙했다고 느껴져서 좋았죠. 어릴 땐 오히려 내가 어린 게 싫었어요. 대처하는 거에 있어서나 애티튜드 같은 데서 어린 모습을 봤을 때 성숙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죠.” 
서른이 되면서 더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된 데에는 이른 데뷔와 함께 얻은 높은 인기로 바쁘게 지내온 시절이 있기 때문이다.“ 활동을 많이 하다가 쉴 때가 있었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고등학교 때부터 바쁘다 보니 친구들하고 연락도 끊긴 상태고, 사회생활하면서 만난 친구도 없고요. 그때 세상에서 혼자된 느낌을 받았어요. 일할 때는 누구보다 자신감 있고 온 힘을 다 하지만, 일을 안 하고 있을 때의 김정화는 대부분 삶과는 동떨어진 느낌을 받았어요.” 
매니저의 제안으로 시작한 연극과 뮤지컬에 도전하며 연기를 새롭게 배워나갔고, 저예산 독립영화와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분야로 활동 범위를 넓혀갔다. 일일드라마와 대하사극 등, 장르만 아니라 다양한 직업의 배역도 마다치 않았다. 작품이 끝날 때마다 하나씩 자신만의 것을 얻어내며 김정화만의 연기 스타일을 한 겹씩 늘려나갔다. 
그래도 배우로 사는 것은 녹록하지 않다.“ <풀 포 러브>라는 공연은 매우 심각한 내용이었어요. 극 중 어머니가 자살했고, 나는 버림받았죠. 증오, 애증을 표현해내야 했는데, 내가 그 마음이 있어야 표현할 수 있는 거잖아요. 나한테 스스로 상처를 줘야 하는 작업인 거죠. 그걸 감당하되 기쁘게 감당할 수 있는 그런 통로를 찾아야죠. 인간이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럴 때 저는 신앙에 많이 의지했어요.”


엄마는 내 삶의 멘토
이사 후 어머니와 가까운 교회를 찾다가 간 교회는 개척교회였다. 어머니와 김정화, 둘이 새벽예배를 드릴 정도로 작았다. 그러나 목사님의 말씀이 그만큼 가깝고, 거룩한 부담으로 열심을 내게 되니 오히려 신앙이 깊어졌다. 예배 참석뿐만 아니라 교회의 행사를 주관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 성탄절마다 교회에 가서 잔치하고 무용 배우고 과자 나눠 먹고 했던 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교회 아이들에게 그걸 만들어주고 싶은데 개척교회라 그런 게 없는 거예요. 목사님께 메일 보내서 파티를 열었어요.” 이런 바탕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아프시기 전까지 주일 점심으로 성도들을 섬겼던 어머니를 보며 많이 배웠다. 
신앙과 삶의 선배이자 멘토인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은 이뿐만 아니다. “엄마의 기도가 아주 중요해요. 어렸을 때부터 언니와 저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시는 걸 보며 자랐어요. 그 때문에 제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만약에 엄마의 기도가 없었으면 제가 어떻게 살았을지 모르겠어요. 누가 엄마만큼 나를 위해 그렇게 헌신적으로 해주고 기도를 하겠어요?” 엄마의 기도를 절실히 경험하게 된 것은 아프리카에서 만난 자신의 딸, 아그네스의 영향도 있었다. 엄마의 기도를 자신이 한 것이다“. 이제 아그네스한테 제가 엄마이고 엄마의 기도가 중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내가 힘들고 지칠 때에도 ‘내가 아그네스를 위해서라도 더 기도해야지, 내가 더 일어서야지’ 하죠. 
기아대책기구 나눔 대사이기도 한 김정화는 결연과 나눔에 대해 열정이 가득하다. “결연이라는 것이 돈으로 이루어지는 관계지만,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뭔가 커다란 존재나 가치를 서로한테 선물해주는 것 같아요. 그 아이도 나한테 무언가를 선물해주는, 참 좋은 매개체인 거죠.” 그리곤 나눔으로 나아갔다.“ 봉사라는 단어를 별로 안 좋아해요. 아이들 만나러 가면 놀아주는 것밖에 없거든요. 저도 같이 즐겁거든요. 그보다는 ‘나눔’이란 말이 예쁘고 좋아요.” 그래서일까 그녀는 작년부터 <나누면 행복>이라는 프로그램의 진행도 맡았다. 프로그램에 출연하시는 분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한다고 말한다. “얘기하다 보면 진심이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그러다보니 ‘나는 저 분보다 더 좋은 상황에 있고 더 건강한데 이런 내가 안 할 수 없다’는 반성을 늘 하게 돼요. 그전에는 생각은 많아도 하나씩 하나씩 하자, 했다면 요즘은 더 적극적으로 하려고 노력해요.”

나와 너 함께, 어둠 속의 빛으로
스타에 따라 팬의 성향도 차이가 난다. 김정화의 팬은 김정화를 닮아 조용하고 드러내놓고 나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눔 현장에서 팬을 만날 때도 있다. 그러나 스타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을 닮아 시작한 것이다. 이런 스타와 팬의 성향에 맞게 데뷔 11주년 기념 팬 미팅도 조금 다른 형식으로 진행한다. 티타임을 하듯, 소규모로 모여 앉아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함께했다. 
이런 팬 미팅을 기획한 김정화의 소속사 4HIM(for him(God))은 발음 그대로 그 분을 위하는 곳이다. “이름이 없을 때부터 같이 시작해서 회사가 설립될 때까지 중보했죠. 매니지먼트라는 게 말씀 안에서 일을 해나가기가 어려워요. 가까이서 보면 안타까운 점이 있고, 기도해야 하는 부분도 있어요. 시작했으니까, 빛의 역할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말씀으로 새롭게 
개인적으로도 김정화는 빛으로 살기를 소망한다. 스케쥴에 쫓겨 주일예배에 함께 하지 못하는 동료에게 말씀 문자를 보내며 응원한다. 그러면서도 늘 명심하는 것은, 말만 아닌 삶으로 드러나는 것“. 저는 일부러 교회 가자는 말은 안 해요. 일상생활에서 편히 이야기해요. 이야기하다 보면 관심을 보이는 친구들이 있어요. 관심을 보일 때, 이런저런 예배가 있는데 한 번 가볼래, 해서 간 적이 몇 번 있었죠.” 
삶을 통한 전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주 안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 김정화는 성경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신앙에 깃든 기복신앙을 발견하고 회개했고, 말씀을 통해 신앙을 단단히 다져나갔다“. 레위기를 공부하고 있는데, 제사제도가 나오잖아요. 어려운데, 제사제도를 통해 동물의 각을 다 떠야 하고 내 죄 때문에 동물을 죽여야 하는 마음을 배우잖아요. 그런 걸 우리는 기도하고 회개하면서 쉽게 없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거죠. 구약을 공부하면서 징계의 하나님과 사랑의 하나님을 같이 배워야 한다는 걸 알게 됐고 많이 두려워졌어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짓는 죄들이 많잖아요. 기도하면서도 제가 모르고 짓는 죄까지 알게 해달라는 기도를 많이 하게 돼요.” 

장기간의 촬영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 중이라고 말했지만, 나누고 베푸는 일에 인색하지 않은데다 호기심까지 많은 김정화가 가만히 쉬고 있는 모습은 잘 그려지지 않았다. 운동도 하고 잠시 멈춰두었던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데다 새롭게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단다. 배우는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그녀. 영화 <블랙>을 보고 장애인을 돕는 분들을 만나 이야기 들으면서, 장애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며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장애인들에게 불편한 시선을 버리고, 편안한 시선으로 그들을 받아들이고 우리 삶에 동참시켰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내내 넘치는 에너지로 스튜디오에 생기를 불어넣은 김정화. 앉아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 기쁨과 행복감이 흘러넘친다. 어제보다 오늘 더욱 삶의 기쁨을 깊이 맛보고 발랄하게 살아가기를 기도하고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