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매년 때 이른 더위가 찾아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중부지방에서는 5월에도 한낮의 기온이 섭씨 30도에 육박하는 날이 계속됩니다. 책상마다 컴퓨터와 모니터가 열기를 내뿜는 사무실에서는 에어컨도 여간 시원찮은 게 아니지요. 해가 갈수록 더위가 심해질 것이라 더 걱정입니다. 대야에 찬물을 받아 발 담그고 일하는 게 딱인데, 회사에서는 여간해서 꿈꾸기 어려운 일이고요. 아, 반바지 출근이 가능해진 서울시청이라면 어떨지 모르겠네요.
더위를 이기는 음악이란 게 있을까 싶지만, 있더군요. 무더운 여름밤에는 공포영화를 보잖습니까? 그 공포영화 대신 들으면 좋은 게 소위 ‘현대음악’ 입니다.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현대음악.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삐에로> 정도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실제로 작년에는 ‘납량특집’ 컨셉으로 이 곡을 연주했던 공연도 있었다고 해요. 쇤베르크 이후, 익숙한 음계와 화성이 해체되고 나니, 이제 다음에는 언제 어떤 음이 튀어나올지 몰라 듣는 이에게 극심한 긴장감을 유발하기 시작했고, 이게 현대음악의 특징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기존의 형식을 넘어서려는 전위적인 시도, 실험일 수도 있겠고, 그저 음악가 자신의 불안을 투영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면 작곡가의 농담일지도 모르고요. 아무튼 현대음악은 일반인이 보기엔 스릴러나 호러영화에 쓰이는(그마저도 영화 음악이라고 해야 할지 음향이라고 해야 할지 헷갈리는) 좀 별난 것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뭐든 익숙해지면 편한 법. 머라이어 캐리보다 라디오헤드를 들을 때 더 편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2NE1(이라 쓰고 ‘투애니원’ 이라고 읽습니다 ― 저 같은 사람을 위해 말씀드리자면)의 노래보다 쇤베르크나 베베른의 무조음악을 더 좋게 느끼는 분도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그런 분이라면 윤이상의 음악을 한결 친숙하게 즐길 수 있겠지요. 
요즘은 ‘통영의 딸’ 신숙자 씨와 그의 두 딸의 강제 구금 문제로 다시 논란의 와중에 있지만, 국내에 아동용 위인전이 여러 권 나왔을 정도이니 ‘한국에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1917-1995)이라는 인물을 거론하는 데는 사실 따로 설명이 필요 없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그의 음악에 대해서는 많은 설명이 필요하겠지요).
아, 통영이라면 백석이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 ‘집집이 아이만 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아장수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 한다는 곳’ 이라고 썼던 곳 아닙니까! 올해로 태어난 지 꼭 100년인 평안북도 정주의 시인 백석은 사랑의 부푼 꿈을 안고, 또 한 번은 실연의 상처를 안고 통영엘 찾아옵니다. 20대 중반에 통영을 찾았을 시인 백석은 어쩌면 길을 가다가 자기보다 다섯 살 어린 음악가 지망 유학생 윤이상을 한 번쯤 마주쳤을지도 모르겠네요. 1995년, 같은 해에 둘 다 통영에서 아주 먼 곳에서, 그러니까 백석은 이북에서 윤이상은 독일에서 타계한 것도 공교롭습니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윤이상 관련 책이 그의 음악만으로 구성된 음반보다 많아 보이는 것이 한국에서 윤이상의 위상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150곡에 이르는 윤이상의 작품 중 <하프와 현을 위한 공후(서울바로크합주단, 낙소스)>는 연주 시간이 25분이지만, 상당히 부드러워서 집중해서 들으면 나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어둡고 서늘한 동굴 속, 천장에서 떨어지는 한줄기 빛을 맞으면서 긴 옷깃을 하늘거리며 춤을 추는 선녀와 함께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하프의 음색도 한결 시원하고요. 같은 음반에 수록된 <실내교향곡 1번>이나 <현을 위한 융단>도 큰 각오 없이도 들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 글은 바로 이 앨범을 들으며 쓰고 있습니다. 이 곡들은 멜론(melon)이나 낙소스 사 홈페이지(naxos.com)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백석이 시를 썼을 통영 충렬사 돌계단에서 통영 앞바다를 내려다보며 스마트폰으로 윤이상의 음악을 듣는 당신을. 더운 여름날의 습한 바닷바람과 윤이상의 <하프와 현을 위한 공후>, 그리고 짭조름한 대구포. 정말 환상적인 조합 아닙니까?

강영특|편안한 소파에 기대어 지그시 눈을 감고 음악을 듣다가 그만 잠들어 버리고 마는 클래식 초보. 그래도 책은 고전이 최고라고 믿는 고지식한 출판 편집자.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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