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사람과 사람

땡큐 포 더 라디오│CBS 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진행자 신지혜 아나운서



팟캐스트, 유투브, 스마트폰, 페이스북…. 다양한 디지털 소통의 도구가 넘쳐나는 시대이다. 하지만 라디오가 주는 따뜻한 아날로그의 매력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고 있다. 매일 정해진 그 시간, 익숙한 목소리로 나만 위해 말을 걸어 주는 라디오. 더 빠른 4G, 더 만질 수 있는 4D를 추구하는 시대에 라디오는 어쩌면 시대에 역행하는 도구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라디오 방송을 기다리며 듣고 있다는 사실은 디지털시대라는 말로 무시하기에는 소중한 의미가 있다는 것 아닐까. 15년간 한자리에서 CBS FM 라디오 ‘신지혜의 영화음악(이하 신영음)’을 진행해오고 있는 아나운서 신지혜를 만나보았다. 이재윤 | 사진 김준영


신영음을 통해 힘이 되었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구요 
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신영음’ 은 이미 상징적인 존재다. 15년을 영화음악이라는 한 주제로 라디오 방송을 계속해오고 있는 것은 국내 유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1994년 CBS에 입사한 신지혜 아나운서는 우연한 기회에 영화음악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다. “당시는 환경이 지금보다 열악해서 피디, 작가, 진행을 혼자 했어요. 1인 3역을 해야했죠. 특별히 피디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지만 대학시절 학교 방송국에서 기자 활동을 한 게 큰 도움을 주었어요.” 그렇게 시작된 ‘신영음’ 은 점점 영화마니아들 중심으로 자리를 잡아 나갔다. 당시에 유행이었던 파란 화면의 PC통신에 -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 자생적으로 팬카페가 생겼다. 오프모임이 생겨나고 신지혜 아나운서도 초청받아 함께 하곤 했다. “그 당시 멤버들이 지금도 가끔 모여요. 영화제도 함께 가구요. 그 때 고등학생, 대학생이던 이들이 이제는 영화 관련 잡지 기자로서 활동하거나 한 아이의 엄마가 되기도…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웃음).”
긴 세월 만큼이나 잊고 있었던 오랜 친구를 찾듯이 다시 돌아오는 청취자들이 많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때는 엽서를 통해 사연을 나누었다면 지금은 모바일, 인터넷을 통해 사연을 나눈다. 하지만 청취자들과 교감이라는 라디오의 가장 중요한 매력에는 변함이 없다. 그 긴 시간을 어떻게 지치지 않고 이끌어 왔느냐는 물음에 그녀는 청취자들의 힘이라는 다소 교과서적인 대답을 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잇따르는 그녀의 말에 정말 체험에서 얻은 진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냥 좋은 음악을 나누자는 정도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청취자들의 피드백이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로 다가오는 거에요. 청취자들도 신영음을 통해 힘이 되었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구요. 제가 아주 힘든 날이 있었거든요. 방송에 들어가기 전에 ‘그래, 스스로 힘내서 한번 해보자!’ 고 다짐을 했는데, 그런 느낌이 전해졌다는 청취자의 메시지가 왔어요. 글쎄요. 호흡이 전달되는 듯한 느낌이랄까. 마음이 잇닿는 느낌이랄까. 정말 좋았어요.” 라디오는 마음과 마음이 연결된다.

영화와 음악은 그런 부분에서 우리에게 치유를 줄 수 있죠 
영화와 만난 인연에 대한 물음에 여중생 시절로 돌아가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때는 무지 모범생이었죠. 고등학교 때 떡볶이 집을 처음 가봤으니까요. 중2 때인가 클린트이스트우드의 <황야의 무법자>를 보고 영화에 빠져들기 시작했어요. TV에서 했던 <주말의 명화>가 삶의 낙이었죠. 영화 보고는 A4에 두 장씩 빡빡하게 감상을 적었구요. 당시 유행하던 ‘스크린’ 잡지 빼지 않고 보면서 파리의 유지나 특파원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보냈죠. 하하.”
그녀는 자주 말한다. 영화는 자신에게 목표가 아니라 꿈이라고. 목표는 이룰 수 있는 것이기에 그녀에게는 아나운서가 목표였고 영화는 그저 ‘꿈’ 이었다. 관객으로 재미있고 보고 즐기고 이런 저런 수다를 나누는 것. 작년부터 신지애 아나운서는 CGV무비꼴라쥬에서 정기적으로 시네마톡을 진행하고 있다.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그저 즐겁기에, 영화를 사랑하기에 계속 해 나가는 일이다. 그런 생각들이 모여 얼마전 <땡큐 포 더 무비>라는 책도 냈다. 그동안 그녀가 영화를 보고 남겼던 글을 모아 치유와 위로를 담은 책이다. “인생의 어려움이 있으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 는 말을 자주 되뇌어요. 몸을 웅크리고 참는달까요. 감기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듯이요. 예전에 출산휴가로 3개월간 방송을 쉰 적이 있었어요. 몸도 힘들었지만 다시 방송을 잘 할 수 있을까, 감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오프닝은 쓸 수 있을까 크게 걱정했죠. 그런데 보면 그 기간이 다 지나야 하는 그런 부분이 있더라구요. 영화와 음악은 그런 부분에서 우리에게 치유를 줄 수 있죠.” 

영화가 ‘꿈’ 인 그녀는 이제 영화계에서도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서울국제기독영화제와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등에서 집행위원을 맡았다. 몇년 전에는 신영음 청취자들과 ‘신영음영화제’ 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래도 신지혜 아나운서에게는 ‘신지혜의 영화음악’ 이 그녀의 삶에 가장 중심되는 의미이다. 영화음악이라는 오랜 친구, 몇 년만에 다시 찾아가서 노크해도 어색함 없는 그런 친구 같은 라디오 방송을 만들어 가는 게 꿈이라는 그녀의 소박한 고백. 이미 15년 동안 맺은 친구이기에 20년, 30년 지기로 그 자리에 믿음직스럽게 있어주기를 기대하며 매일 오전 11시 CBS FM93.9에 주파수를 맞춰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