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카모메 식당> 등 오기가미 나오코의 영화들은 일명 ‘슬로우 무비’ 또는 ‘ 슬로우 라이프 무비’ 로 불린다. 소소한 사건과 완만한 감정 곡선, 느리고 절제한 연출, 그리고 특유의 유머코드가 그 특징이며, 일본 영화감독 중 유일하게 전 작품이 꾸준히 국내에 개봉될 정도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빠질 수 없는 특징 중 또 하나는 독특한 상황 설정이다. <요시노 이발관>에서 감독은 온통 모순으로 가득 찬 세계를 구축해놓고, 거기서 빚어지는 갈등을 웃음으로 능청스럽게 타개해 나간다. 

‘왜’라는 질문이 불러온 파란
평화롭기 그지없는 일본의 한 시골 마을. ‘산의 날’이라는 전통을 지키는 이 마을의 남자아이들은 모두 ‘요시노 가리(일명 바가지 머리)’를 한 채 신사에서 성가대 복장을 하고 헨델의 ‘할렐루야’를 부른다. 아이들의 머리를 ‘요시노가리’로 만드는 것은 이 마을의 유일한 이발사 요시노 아줌마의 가차 없는 가위질이다. 관객은 이쯤에서 도대체 왜 이 마을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바가지 머리를 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정작 관객을 놀라게 하는 것은 ‘이유’ 자체가 아니라 이제껏 이 마을에 사는 누구도 이유를 궁금해 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늘 바가지 머리를 해온 아이들도, 요시노 이발관에서 머리를 자르도록 추천하는 학교도, 심지어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대로 이발관을 운영해온 ‘바가지 머리’의 달인이자 계승자 요시노 아줌마조차 말이다. 도쿄에서 전학 온 사카가미의 ‘왜’라는 단순한 물음은, 바로 그렇기에 조용하던 마을을 들썩이게 하는 기폭제가 된다.

위태로움 위에 선 평화
이마가 훤히 드러나도록 머리를 넘긴데다 갈색으로 염색까지 한 사카가미는 이 마을 아이들의 헤어스타일이 촌스럽게만 보인다. ‘왜’ 바가지 머리를 하는지, ‘왜’ 토속신앙인 ‘산의 날’ 행사에서 찬송가를 부르는지, 줄곧 ‘왜’냐고 이유를 묻는 사카가미. 그러나 제대로 이유를 설명해주기는커녕 요시노 아줌마는 전통을 지키자는 말만 반복하며 사카가미의 머리를 자르려고만 하고, 아이들은 머리를 자르지 않으면 함께 놀지 않겠다고 하며, 동네 사람들은 집요한 눈초리로 사카가미를 쳐다본다. 감독은 사카가미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반응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그 장면을 자세히 관찰할 때 보이는 것은, 다름을 용납하지 않는 억압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사회와 그에 대항하는 개인의 외롭고 위태로운 투쟁이다. 모든 것이 모순으로 뒤덮여 있었기에 마을의 평화는 ‘왜’라는 물음 한 방에 무너질 위태로움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어리석음이 너를 구원하리라
모든 이가 사카가미에게 손가락질 할 때 넘어진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는 것은 뜻밖에도 광인(狂人) 케케 아저씨다. “바보 같은 어른들 얘기에 신경 쓰지 마, 알았냐? 그러니까 빨리 사랑니를 빼야 해. 너무 아파 죽겠어”라고 하며. 긴 산발머리를 한 채 늘 ‘크케케케케케’, 이상한 소리를 내거나 바닥까지 끌리는 긴 분홍색 기모노를 휘날리며 마을 아이들을 겁주기 위해 쫓아다니는 것이 하루의 일과인 케케 아저씨. 미쳤기 때문에, 아니 미친 덕분에 자유롭고 용기 있게 행동할 수 있는 이 사랑스러운 인물은 필요한 순간에 나타나 현자의 역할을 재빨리 수행하고 는 언제 그랬냐는 듯 광인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바보광대, 그리고 <개그 콘서트>
동서양을 막론한 고대 통치자들은 ‘광우(狂愚)’를 고용하여 곁에 두고 그들의 익살과 재담을 즐겼다. ‘광우’, 즉 궁정의 바보는 왕의 권위를 조롱하거나 헛소리를 하더라도 ‘미쳤기 때문에’ 용서받았고, 이러한 역할은 후에 ‘미친 척하는’ 전문적 광대들이 맡아 익살을 섞어 왕에게 직언하는 일을 하였다. ‘바보’며 동시에 ‘현자’였던 광대는 예술 작품에 등장해 작중 인물들을 골려 먹거나 어리석은 행동을 할 때 날카롭게 조롱하며 삶의 진실을 이야기한다. 
‘바보광대’는 이제 TV라는 가장 친근한 매체를 통해 우리의 안방에 방문한다. 요즈음 히트를 치고 있는 <개그 콘서트>의 <용감한 형제들>이나 <사마귀 유치원>같은 코너 말이다. 코미디언들은 바보 같은 말투와 몸짓으로 사람들을 웃기면서도 정치인, 연예인, 심지어 자기 프로 담당 PD에 이르기까지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짧지만 가장 용감하게 직언을 날린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을 나무라거나 처벌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바보광대’이기 때문이고, ‘바보광대’는 세상에서 가장 ‘용감함을 보여 줄’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잘 살펴보라. ‘바보광대’들이 몸을 사리고 점점 우리의 시야 밖으로 멀어져간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가 ‘풍자’를 용납하지 않는 경직된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는 적신호일지니. 글 최새롬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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