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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햇빛 아래 노니는 삶

생명의 땅에 고즈넉히 내려 앉기│지리산자락에 드리운 서울 처녀 김루의 구례라이프 03


떠들썩한 구례 오일장, 이승기가 다녀갔다는 팥죽집을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치는 마음으로 들러 빈속을 채운다. 아직 비어있는 장바구니를 한 손에 쥐고, 또 한 손에는 장날 나오면 사고 싶었던 것들을 적은 종이를 들고선 본격적인 쇼핑에 나선다. 구례에서 유명한 대장장이 아저씨께 튼튼한 조선호미를 구입하고 무한 A/S를 약속 받아 돌아 나오는데 모종이 즐비한 시장 골목 어귀가 보인다. 드디어 지갑을 열 때가 왔다. “아저씨, 오이, 토마토, 고추, 청량고추, 파프리카 또…방울토마토도 주세요! ” 마음이 가득 차오른다. “히히, 올 한해 나랑 잘 지내보자!”

생명, 그 짜릿함
몇몇 씨앗도 더 구입해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 저 멀리서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용달차를 끌고 오신다. 내 손에 모종이 있는 것을 확인하시는 눈빛이 순간 읽힌다. 인사를 하고 집으로 와 마당 텃밭에 호미를 들고 올라가려는 순간! “뭐 할 줄이나 아나 몰러~잉?” 하시며 아주머니께서 대문으로 들어오시는 게 아닌가! 나는 작년에 시골살이를 준비해보고자 도시 외곽 주말 농장을 빌려 작지만 나름 계획을 세우고 공부하며 텃밭 농사를 지었던 경험이 있어서 솔직히 크게 어려워하는 마음은 없는데… 아주머니께서는 내 손에 든 호미를 가져가시더니 비닐봉지 속에 들어있는 모종들을 여기 저기 팍팍 심어대기 시작하신다. “또 뭐 심을겨? 씨앗은 샀어?” “ 네, 이것저것 많이 샀어요” 라고 말이 떨어지는데 이미 아주머니께서는 씨앗을 담은 봉지 마저 내 손에서 가져가시며 땅을 대충 가르시더니 부추와 상추씨를 팍팍 뿌린다. ‘아니, 안 돼요! 안 된다구요! 아, 망했다. 나의 다품종 소량 생산은 이제 물 건너갔구나, 올해 내내 로메인양상추만 먹고 살아야 하나.’ 구획을 나눠 예쁘게 열 맞춰 채소들을 심으려 했던 내 촘촘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텃밭농사를 시작한 나는 어찌되었든 그 날 이후, 열심히 솎아 주고 또 옮겨 심으며 마당 텃밭을 가꾸고 매일 늘 마당에 나와 채소를 돌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마당엔 나 혼자서는 다 먹지도 못할 만큼의 상추와 쑥갓, 브로콜리와 돌나물이 자라고 있다. 철물점 사장님께서 주신 대파는 겨우내 삐쩍 말라 죽을 줄 알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고고한 자태를 폼 내며 어른 주먹만한 씨앗주머니를 하늘을 향해 품고 텃밭 한 가운데 떡하니 자리 잡고 있고, 그 옆으로는 고추와 토마토들, 그리고 오이와 호박, 저 멀리 담장 아래는 옥수수들도 자라고 있다. 
비가 오지 않던 5월내 부지런히 물을 주고, 가지도 쳐주고, 키가 자랄 때마다 지주대를 세워 끈으로 묶어도 줬더니 날이 갈수록 자라는 잎사귀가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이틀간의 여행 후 돌아와 보니 집을 떠날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뜨거운 햇볕 아래서도 참 잘도 자란 채소들이 나를 반긴다.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밭에는 고구마가 자라고 있다. 풀을 뽑고, 땅을 갈아 두둑을 쌓아올리고, 멀칭(농작물 경지 토양의 표면을 덮어 주는 일)을 한 이후에 고구마 순을 심는 모든 과정을 혼자 해내었는데, 땀을 비오듯 흘리고선 허리를 펴려고 일어서면 산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은 또 얼마나 맛있는지. 시골에서 몸으로 일하는 맛이 이거구나 싶다. 
이렇게 나는 좌충우돌하며 가끔은 무식하게 혼자 직접 손으로 땅을 갈아엎으며 밭농사를 작게나마 시작한 것이다. 뿌린 씨앗이 고개를 내밀며 싹이 되어 나오더니 어느새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면서 작은 식물 한 그루 한 그루에 생명이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 요즘이다. 
스물여섯 살 때 피에르 라비라는 프랑스 농부의 책을 읽은 후로, 줄곧 지구를 지키는 소농으로 살고 싶었다. 좀 웃기지만, 내 꿈은 농부의 아내가 되는 것이었다. 창피해서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못했던 꿈. 농부의 아내가 되는 것보다 내가 농부가 되는 것이 빠르겠군, 하고 생각한 이후로 나는 전업농부는 아닐지언정, 시골살이 하며 밭을 일구며 땅에 뿌리내린 삶의 시작을 살아가고 있다.

내 이름은 김선상
“김선상!” 이장님께서 마을 어르신들 앞에서 나를 김선상이라 부르신 이후, 나는 마을에서 정체불명의 젊은 여자라는 이미지를 피할 수 있었다. 집근처에 사는 아이 몇 명이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영어 공부를 하고 싶다고 집으로 찾아오기 시작했고, 대문 앞에서“ 선생님!” 하며 부르던 것이 마을에서 내 정체성을 찾기에 아주 좋은 효과를 본 것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진짜 선생노릇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났다. 시골살이 6개월에 접어들며 도시에서 가져왔던 돈도 점차 바닥나기 시작하고 구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찾던 중에 교육청에서 방과후학교에 파견하는 선생님을 뽑는 공고를 보게 된 것이다. 곧 구례 구석구석에 있는 학교들을 다니며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구례 생활의 운명일까 싶을 정도로 매일 매일 나는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학교에 가보니 도농간의 교육격차를 해소하려는 의도로 개설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 상당히 다양한 분야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연극, 무용, 사진, 영화, 요가, 밴드, 꽃꽂이, 체육활동, 과학반, 외국어, 논술, 책읽기, 청소년지도 등. 도시에서 좋은 대학을 나오고도 취업문제로 어려움이 많은 젊은이들이 이곳에 온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자신의 인생을 소비와 경쟁에 매몰시키지 않고, 도시에서 누릴 수 없는 여유를 만끽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좀 더 재밌게 삶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귀촌 후, 세 번째 계절, 여름이 오고 있다. 이 한 여름, 나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선생님으로, 동네 어르신들께는 김선상으로, 작물들에게 발자국 소리라도 자주 들려주려는 소농으로, 또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는 연주자로 뜨겁게 살아가고 싶다. 여름, 시골살이의 진수를 맞볼 수 있는 이 계절이 내게 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김루| 도시에서 오랜 시간 영어강사로 일을 하다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 진리와 자유,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고 연주하며 살아가고 싶어 시골에 내려온 책과 커피와 채소를 사랑하는 지리산 남쪽에 사는 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