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테마에서 끊임없이 영감을 길어 올리는 작가들이 있다. 작가는 하나의 소재, 하나의 구조, 하나의 리듬을 변주해가며 좀 더 견고한 자기 세계를 다져나간다. 작품이 전작과 연속성에서 새로운 미학을 찾아가는 사이, 한 사람의 영화감독은 예술가가 된다.

최용석 감독은 ‘대상의 부재로 고통 받는 사람들’ 에 매혹된 작가다. 그는 지역 영화계가 사랑하는 부산의 감독들 중 한 사람으로, 세 편의 단편과 두 편의 장편 모두 같은 소재를 다뤘다. 근작 <이방인들> 역시 엄마를 화재사고로 잃고 고향에 돌아와 엄마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인물 연희의 이야기를 그만의 방식으로 풀어냈다. 게다가 <이방인들>은 그의 작품 중 최초로 전국에 개봉해 다양한 지역의 그의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과 만난다. 

영화의 배경인 ‘대저’ 는 김해와 인접한 부산의 외곽으로, 먼눈으로는 고층 건물이 내다 보이고 가까운 시야로는 키 작은 건물이 듬성듬성 자리한 지역이다. 변두리의 황량함과 전원의 소박함을 동시에 품은 곳. 최용석 감독이 매료된 것은 이 공간의 이중적 정서였다. 때문에 인물 클로즈업은 드물게 등장하고 공간을 들여다보는 롱숏 롱테이크가 주를 이룬다. 연희는 지금 이 시점의 대저와 자기대로 윤색한 기억 속 고향을 동시에 본다. 연희에게 대저는 추문과 추억이 교차하는 길목이다. 
연희도, 연희의 고향 친구 석이도, 여정 중에 조우한 마을 소녀 은임도, 연희가 한 때 사랑했던 성가대 지휘자 선생도, 모두 사랑하는 이를 잃고 고향을 표류하는 사람들이다. 연희는 고향 곳곳에서 엄마의 부재에 사로잡힌다. 엄마의 죽음은 단순 사고라고 하기에는 석연찮은 데가 있지만 의혹은 의혹으로만 남는다. 지휘자 선생과 연희 사이에 ‘우리 얘기’ 로 통용되는 사건이 있었고 연희는 그 때문에 고향을 떠나기까지 했지만 구체적으로 선생이 연희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무례하달 만큼 타인의 고통을 경솔하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의 과거가 하나 둘 드러나고 그 혹은 그녀가 처한 상황이 분명해지면, 그의 슬픔을 완전히 공유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영화가 경계하는 것은 이토록 손쉽게 좁아드는 거리감이다. 일례로 교회를 나선 연희가 도로 위에서 오열하는 모습을 담아내는 카메라는 연희에게서 멀리 떨어져 한자리에 붙박인 채 조금도 다가가지 못한다. 연희의 눈물을 지켜보는 우리는 꼭 그만큼의 거리, 그 부동의 시간만큼 무력하다. 
원씬-원쇼트(one scene-one shot)으로 이어지는 이 장면은 사전에 계획된 바 없이 현장에서 즉석으로 만들어졌다. 연희를 연기한 한수연은 한 번의 실수도 없이 한 테이크 만에 촬영을 마쳤다. 인물의 감정에 순간적으로 몰입해 들어가는 한수연의 순발력과 집중력을 두고 최용석 감독은 ‘직관적으로 연기하는 배우’ 라 평했다. 사실 ‘직관적’ 이라는 수사는 감독 그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이다. 최용석 감독은 그때그때 공간이 주는 느낌에 따라 촬영 직전에 대사나 구도를 수정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독립영화의 빠듯한 살림은 대부분의 현장에서는 제약으로 작용하지만, 덩치 큰 제도권 영화들은 흉내 낼 수 없는 유연함을 허락하기도 한다. 

울고 있는 연희를 어둠 속에 내버려둔 채, 그녀를 알지 못하는 자동차들이 도로를 가로지른다. 그 중 하나는 석이일지도 모른다는 진부한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감독의 전작들은 대체로 이런 식으로 끝난다. 그러나 이 영화의 결말은 조심스럽고 진심어린 위로를 시도한다. 날이 밝아서야, 연희의 시야로 석이의 고깃배가 미끄러져 들어온다. 두 사람을 태운 배가 어디론가 떠난다. 결말이 상기하게 하는 것은 비교적 단순한 진실이다. 
그는 돌아오지 않는 시절처럼 사라져 버렸다. 한 번의 상실은 남아 있는 모든 날들 부재의 시간으로 만든다. 하지만 그가 없는 날도 언젠가는 일상이 되어갈 것이다. 연희처럼 느린 걸음으로. 추억을 되짚어보고, 갈무리한 다음,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이며.

* 심보선의 두 번째 시집 제목

김다영| 독학자. 부산독립영화협회 회원. 윌로씨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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