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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김준영의 페북 친구

김상민 쉐프


정갈하게 입은 하얀 옷에 이곳 저곳 음식의 색이 살짝 물들어 있고, 양쪽 팔은 팔뚝 언저리까지 걷어 올리고는 잘 벼린 칼로 음식의 결을 슥슥 잘라내는 남자가 TV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요리사란 이름이 아니라 쉐프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젊디 젊은 외모에 왠지 모를 세련미까지 갖췄다. 그가 유럽 등지의 지역을 이야기하며 요리와 요리 재료, 도구를 조근조근 때론 장악력있게 설명할 때면 남편감의 조건 항목에 또 하나 추가된다. 
여성들의 신랑 조건 리스트에 갑자기 등장하기 시작한 요리 잘하는 남자. 빵을 구워주는 남자. 커피 내려주는 남자. 무슨 남자가 해야 할 일이 이렇게도 많은지. 난 결혼하긴 글렀다. 칫! 
스타 쉐프, 꽤 오래전 부터 페이스북 친구였던 그를 만났다. 더치커피를 마시며…. 글 · 사진 김준영

쉐프? 뭔가? 요리사와 다른 그 무엇이 있는 듯하다. 문화의 옷을 입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솔직히 다른 점을 모르겠다. 
요리사는 다분히 기능적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쉐프는 창조적인데다가 인맥관리와 경영 관리라는 능력까지 포함되는 느낌을 준다고 하겠다. 요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다고 보면 좋겠고, 아티스트적 개념이 덧입혔다고 보면 좋겠다. 

요리에 창조성이라는 개념을 고려한다면 음식이 상품화 과정을 거쳐 메뉴에 오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쉐프는 꽤 고민이 많겠다. 
그렇다. 자기가 경영을 하든 아니면 어느 음식점이 고용한 쉐프이든 그에겐 언제나 자신이 하고 싶은 요리가 있다. 다른 분야도 그럴 것이듯. 그런데 그것을 사업체를 통해 상품화해서 하나의 메뉴로서 사람들의 입에 맛을 줄 수 있느냐에 있어서는 늘 고민과 스트레스를 안겨준다. 눈 높이, 대중의 입맛 등 고려해야 할 것이 의외로 많다. 
나는 2005년 정도에 이태리에서 돌아와 운영까지 하는 쉐프로 음식을 만들었다. 당시 이태리 음식은 스파게티와 피자, 그리고 메인 요리로 스테이크 정도만 알던 때였으니, 이태리의 다양한 음식을 메뉴로 만들어 내는 데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스테이크는 이태리 음식에서 아주 일부분이니까… 그래도 지금은 개성을 살린 자신의 이름을 건 쉐프들이 창조성을 마음껏 얹은 음식점을 여는 일이 많아지니 희망적이라 하겠다.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여하간 서울에서 나름 문화적이라는 가로수길에서 베네세레라는 이태리 음식점을 했었는데. 
베네세레는 웰빙이라는 뜻의 이태리어다. 좀 더 건강하고 좋은 음식을 만들고자 친구들과 동업을 시작했다. 가게가 브랜드로서 이름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다 작년에 6월 30일에 거기서 나왔다. 별로 좋지 않게 나왔다. 건물주와 관계에서 매끄럽지 못해 손해를 보고 나온 결과가 되었다. 음식점이든, 옷가게든, 카페든 우리나라 현실이 건물주만 이득을 보는 구조다. 참 문제다. 

죽전으로 옮긴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니 조금 의외다. 상상하기로는 어떤 틀과 안정적 상태를 거부하는 성격인 줄 혼자 상상했었는데….
그렇지는 않다(웃음). 좌절의 시기였는데, 죽전 신세계 백화점에서 입점 제의가 들어온 거다. 가로수길이 처음에는 참 예쁜 거리였다. 걷고 싶기도 한 거리였는데…. 지금은 대형음식점, 대기업 옷가게들이 들어와 이미 포화 상태를 넘었다고 봐야 한다. 찾아오는 연령도 무척 낮아졌고…. 

연령층의 변화가 온다는 것은 음식의 메뉴 선정과 가게의 인테리어에도 영향을 주겠다. 
처음에 가로수길에서 처음 시작했을 때는 30, 40대 층이 음식을 드시러 많이 오셨다. 인테리어도 거기에 맞춰서 테이블보도 깔끔하게 깔았었다. 그 층은 너무 북적거리는거 싫어하고 음식의 취향도 조금 다른데 점차 가로수길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주차도 어려워지고. 그 나이대 사람들은 많이 떠났다. 현재는 그쪽에서 레스토랑 장사는 어려울 것이다. 

같은 질문일 수 있는데 요리로 이윤 창출과 대중의 입맛은 다를 수 있지 않나. 
맛있게만 해서 이윤이 창출되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포장을 하느냐도 중요할 때가 많다. 그럴 때는 참 힘들다. 

재미있는 일화도 있겠다. 
그렇다. 질문 하나 해도 되나? 까르보나라가 뭔지 아나? 

음. 하얀색 크림을 넣어 만든 스파게티 아닌가? 
보통 그렇게 알고 있는데, 실제로는 까르보나라는 로마지역 광부들이 먹던 음식이다. 돼지 볼살을 주재료로 하는데, 지금은 베이컨으로 많이 하지만. 그걸 볶으면 기름이 나오니까. 거기다 면을 볶고 그 다음 양젖으로 만든 파마산 치즈를 살짝 얹어서 먹는 것이 까르보나라 스파게티이다. 그런데 이것이 일본과 미국을 거치면서 하얀 크림이 듬뿍 들어간 스파게티로 변해 들어왔다. 하얀 크림을 넣어도 이건 조미료 정도만 넣는 것인데. 

하하 그런거였나? 아주 재미있다. 
그런데 이걸 처음에 와서 쉐프로서 자존심을 지킨다고 메뉴에 넣지 않았다. 그러다가 손님들이 찾기 시작하니까 넣었는데 또 자존심을 지킨다고 그대로 했다. 베이컨을 직접 만들었다. 아주 정성 들여서 3주 동안 베이컨을 만들고, 이태리식으로 했다. 손님들이 처음엔 퍽퍽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현재 죽전은 백화점이라 맛을 찾아 오는 분이 거의 없으니까 컴플래인이 아주 많이 들어온다. 그래서 나중에 조미를 넣었더니 그렇게 맛있어 한다. 한가지 더 질문해 봐도 되나? 생고기는 분홍색을 띄는데 구우면 어떤 색인가? 

회색 아닌가? 
그렇다. 그런데 한국에서 파는 베이컨은 구워도 분홍색이다. 몸에 딱히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좋지는 않은 발색제를 첨가했다는 것이다. 좋은 음식, 몸에 건강한 음식을 하고 싶은데 실제로 그런 음식을 찾기도 어렵고, 좋은 재료도 없다고 봐야…. 

원래 요리사가 꿈이었나? 대학 전공이 식품영양학이었는데. 
고3 때 결정한 진로인데, 지금은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요리하는 일을 하려고 조리학과보다 식품영약학을 전공한 것이 크게 유익하다. 처음에 스킬을 배우지 않은 것이 좋다. 지금도 여러 곳에서 강의를 하고 요리를 가르치는데, 스킬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인성과 기초다. 실력은 연습하면 상승한다. 그런데 인성은 참 어렵다. 

방송을 시청했는데 다른 쉐프에 비해 차분하고 과묵한 느낌이다. 
촬영 당시 우울했던 시기였을 듯…. 가로수길에서 나와야 하는 시기였던 듯…(웃음). 원래 활달한 성격은 아니다. 좀 차분한 편이다. 더 쉐프라는 프로그램에서는 레이먼 킴, 레오 강, 나 이렇게 셋이 전국 각지 다니며 식재료를 찾아 자기만의 스타일 대로 음식하는 코너였다. 공부를 많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손맛이 있다고 보는가. 
손맛! 당연히 존재한다. 손맛은 마음이다.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만드느냐가 너무 중요하다. 요리는 먹는 사람에게 전달된다. 밝은 마음과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음식은 다르다. 내 생각에는 혀가 예민해지는 것도 있는 것 같고. 
가족과 식사하기 위해 만들면 좋다. 요리사 중에서도 억지로 요리하는 경우가 많다. 훌륭한 요리사로 성장하기 어렵다고 본다. 미묘한 소금 차이가 맛을 결정하기도 한다. 소금을 잘 다루는 사람이 훌륭한 요리사라고 생각한다. 

계량을 사용하는가 아니면 손대중을 이용하는가. 
손대중! 정량이래 봤자 그건 표준적 맛이고. 손으로 잡아 넣는 것이 차이를 불러 일으킨다. 디저트는 표준된 레시피가 중요하지만 일반적 요리할 때는 계량된 측정량이 무의미할 때가 있다. 재료 차이도 있고…. 정해진 레시피보다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쳐 나만의 계량을 혀와 머리로 기억하는 것이겠다. 

멋스러운 쉐프도 먹고 사는 문제가 있을 텐데. 
지금은 요리를 통해서 돈을 번다기보다는 아르바이트가 더 돈이 된다. 이곳 저곳 음식 컨설팅을 해주고, 모 회사에 요리 가전 신제품 테스터로 일하는 것도 쏠쏠하고, 강의도 하고. 이런 면에서는 나름 축복을 받은 것이라 하겠다. 

자신만의 비법이 있나. 
나는 내 요리 레시피를 숨김없이 다 공개한다. 워낙 인터넷이 잘 발달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알고 싶은 사람에게 다 알려 주고 공유하는 편이다. 

좋은 음식은 뭘까. 다이어트 열풍에 채식에 강요당하는 듯한 세상을 산다. 
채식이 좋기는 하다. 몸이 가벼워지니까. 그런데 너무 채식만 하면 몸에 힘이 나지 않을 때도 있는 것 같고…. 그렇지만 채식은 좋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점점 채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유기농으로 옮겨가기도 하는데 유기농 유기농하면서 이쁘고 잘생긴 과일, 깨끗한 채소만 찾는데 어울리지 않는다. 유기농은 기본적으로 못생기고 더럽지 않나?(웃음) 

요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라고 생각하나. 
좋은 재료, 신선한 재료를 선별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 이상으로 중요한 건 요리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누누히 이야기하지만 기술이 아닌 인성이다. 요리사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본인을 아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건강해야 한다. 자기가 건강해야 다른 사람의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것 아니겠나. 괜찮은 사람이 음식도 잘한다. 
술에 쩌들어 있거나 골초인 사람은 아예 뽑지를 않는다. 

왜 그런가. 취향 아닌가. 
취향이다. 하지만 요리사라면 문제다. 요리를 한다는 것은 맛을 본다는 것이다. 맛을 보는 데는 미각세포뿐 아니라 후각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후각은 특성상 금방 지친다. 같은 냄새에 금방 무뎌지니까. 그런데 담배를 피우면 온 몸에 담배 냄새가 배어 있으니까 그만큼 후각은 지쳐 있는 상태라고 보면 정확하다. 미묘한 차이의 맛을 느끼는데 그만큼 약점이 있는 것이니까.

음식 잘하는 비법이 있을까. 
어떤 음식을 만들 때 일정한 맛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만의 계량법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얼마만큼 넣었을 때 이런 맛이 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좋다. 그 기초가 되어야 변형이 가능하니까. 개인적으로 라면을 끓일 때도 계량컵을 써서 그대로 한다. 일정한 맛의 라면을 즐기니까 다른 사람의 라면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고 하겠다. 

자전거를 좋아하던데. 
뛰는 걸 좋아했다. 어쩔 수 없이 과식을 하다 보니 계속 뛰는 운동을 하다가 무릎을 다쳤다. 그리고 좋은 운동을 찾은 게 자전거였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가로수길까지 출퇴근도 했었고. 죽전으로 옮기고는 좀 힘들고. 

요즘 연애를 하지 않나. 페이스북에 상태가 연애중으로 바뀌었던데. 부럽다. 
행복해진 느낌이다. 그래서 요리도 더 좋아진 듯하다.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내가 맛있는 것을 먹어야 한다. 즐겨야 한다. 반복하는 일과 체력도 많이 요구되기 때문에 즐기지 않으면 안 된다. 개인적으로 이태리 음식이 잘 맞는 편이다. 면을 너무 좋아 하니까. 요리사 중에서 자기가 하는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데 하는 사람도 꽤 많다. 관점의 차이겠지만 난 자기 음식이 좋고 맛있어야 좋은 요리사, 훌륭한 쉐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꽤 까다로울 듯한데. 
몇십만 원짜리 음식을 먹으면 까다롭겠지. 하지만 평소 김치에 스팸 먹으며 그렇게 하는 건 우스꽝스럽다. 어떤 음식이든, 어떤 마음으로 먹느냐가 중요하다. 감사하며 먹어야 한다. 맛없다고 불평하면 할 수록 맛이 없다. 즐겁게 먹으면 옆에서 먹는 사람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굳이 아프리카나 북한 아이들 생각하지 않더라도 음식 불평하는 제자는 엄청 혼낸다. 밝은 에너지, 즐겁게 먹는 것이 음식을 대하는 자세 중 가장 중요하다. 

매일 대하는 음식은 우리의 몸을 구성하고, 그 몸과 영혼은 하나로 달라 붙어 있기 때문에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떻게 먹느냐는 짐짓 우리의 영혼을 조절하고, 육신의 영롱함을 추구하게 하는 것이리라. 내 자신을 위하는 자세를 배운 만남이었다. 자전거 타고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