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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2 07-08 아일랜드 랩소디

아일랜드 랩소디 │ 특집7 _ 제주도? 난 윤영배 만나고 왔다

섬에 끌리는 이유가 뭘까? 섬을 찾아가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단지 지금, 그리고 여기의 삶에서 무작정 벗어나고 싶기 때문일까? 섬이라는 야릇한 그 특수함에 끌리는 걸까? 이런 물음을 품고 제주행에 몸을 싣고 다시금 돌아와 이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으니 명료한 한 가지로 내가 움직였음을 알았다. 섬을 닮은 그 누군가가 그 섬에 살고 있고, 그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제주도 고산리 농민 윤영배라는 것. 섬 사람 만나러 섬에 가자. 글·사진 김준영

바람과 섬을 닮은 농삿꾼 윤영배
24시간 동안 유효한 빌린 차의 비상등을 켜고 차 한 대 들어갈 수 있는 길로 접어 들어 집을 찾는다. 검정색 돌이 낮게 서 있는 골목에서 살짝 망설이며 해멨다. 걸어야 할 길에 어울리지 않는 비상등이 깜빡이는 차를 멋쩍게 대고는 조심스럽게 부른다. 
“저…기…요~~~~, 저…기…요, 저…”
“어? 일찍 오셨네요. 제가 2주 동안 집을 비웠다가 어제 저녁에 늦게 집와서…(긁적긁적)”
약속했지만 낯선 손님을 대하는 그의 머리카락은 단연코 지금 잠에서 막 깼다. 확실하다! 그는 얼마전 모 공중파 방송에 나와서 노래를 할 때도 그랬듯 사는 그 모습 그대로 여닫이 문을 열고 나타났다. 
‘어라! 이 사람… 진짜 였네?’
그 방송 이후로 그는 제주도에 살고 있는 그의 친구 조동진, 조동익, 장필순 등과 함께 제주 이민자 1세대의 선두 주자로 다시금 각광을 받고 있다. 
“제주도에서 사는 것을 꿈꿨다기 보다는 10여 년 전 하나음악 기획사 가수들이 한 시절을 풍미했을 때 그때도 노래하는 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어요. 우리는 늘 산, 바람, 꽃, 자연, 인간을 노래했는데, 그 노래대로 살고 싶었다고나 할까… 도시에서 노래하는 것이 조금 불편했죠. 네덜란드 유학 후 그냥 제주도에 가야겠다 생각했죠.” 
그는 지금 노래한 삶에 근접하게 살고 있고, 또 더 깊은 생의 이야기를 노래하려 한다. 그는 제주도에서 그렇게 산다.


나는 지금 제주도 시골 마을 한 집에 있네
“10년이 지났는데, 섬은 제게 특별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곳과 다르지도 않아요. 물론 여길 떠나면 빨리 여기로 다시 오고 싶죠. 섬 전체적으로 보면 뭐랄까… 그래도 육지하고 꽤 떨어져 있으니까… 크다면 큰 면적이 이만큼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지역도 없다고 봐야겠죠. 특별할 것이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그래도 제게는 특별하다고 해야 할까…”
그는 그곳이 섬이든 육지든 다른 것은 없다고 말한다. 중요한 건 삶의 그 본래의 모습으로 살 수 있는 곳이냐 그렇지 않는 곳이냐는 것. 그에게 제주도는 그런 곳이다. “많이 변했죠. 처음 내려왔을 때와 비교하면 물리적인 단절로 인해 그나마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게 하고 있죠. 근대화 과정을 지나 우리가 지금 이렇게 빠른 변화를 경험하며 산 기간이 얼마 안 돼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이 변화를 전부로 인식하고 그것이 세계관이 되고, 그 세계로 삶을 살아요. 멈춰서서 생각해 봐야 하죠. 정말 내 삶의 진짜는 무엇인가?” 자신의 삶이 특별하지 않다며 그렇다고 도시에 사는 사람의 삶이 잘못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그는 고산리 주민 농부인 나로서 하루하루 삶을 사는 것이 이 섬에 사는 이유라고 말한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살아간다네
삶은 어찌 보면 선택이라는데 가만히 내 선택을 생각해 보니 열의 아홉은 수동적 선택이다. 다른 말로 이 거대 사회 구조 안에 선택을 강요 받는 듯하다. 그가 사니까, 그녀가 입으니까, 그들이 먹으니까에 나는 강제되고 있는지 모른다. 
“글쎄요, 정말 인간이란 생명 그자체로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삶이란 대단한 것이 없죠. 멋지지도 않아요. 제가 가수로서 노래하는 것이 저를 다 대변하는 것이 아니듯 나는 나로서 사는 것이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걸 잊고 살잖아요. 나로서 사는 것이 아니라 강제된 삶, 억지된 삶을 누군가에 의해서, 혹은 이 산업화한 사회 구조에 의해 떠밀려 살죠.” 
마을의 영역을 몸이 느끼고, 그것이 내 정서를 구성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한 생명체로 연결되어 이 땅위에 사는 것이겠다. 늘 같은 사람을 만나고, 비슷한 사건을 정기적으로 접하고, 동일해 보이는 시간을 사용하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소박함. 마치 정지하고 있는 듯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 삶의 생이 건강함으로 너울을 일으킨다. 그것이 윤영배가 이 제주도에 사는 이유다.

제주도, 진짜 여행을 해보세
물리적으로 타지와 떨어져 있는 좋은 현실은 사람들이 제주도로 찾아오는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와 다른 문화권, 혹은 다른 지역으로 간다는 진정한 의미에서 여행이라면 제주도 도심은 이젠 다른 문화권도 아니고, 다른 지역도 아니다. 
“제주어를 들을 수 있어야 하죠. 표준어니 사투리니 하는 것도 조금 이상한 구분이에요. 어머니, 아버지 때는 제주도 다녀오면 기념품에 제주어가 적혀 있었는데, 지금은 여행을 오면 제주어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차를 렌트하고 숙소로 이동하기 바쁘죠. 그리고 똑같은 음식에, 똑같은 가게에서 물건을 삽니다. 그렇게 소비하는 형태를 띕니다. 사실 도로와 길은 다른 의미입니다. 도로는 마을과 마을의 소통을 막는 역할을 하죠. 빠르게 지나치고는 그냥 목적지로 다다르게 만듭니다. 그러나 길은 다릅니다. 길을 걷고, 길을 지나면 마을을 만나고, 그 마을의 사람을 만나는 거죠. 이게 여행 아니겠습니까?” 
그렇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여행이 아니라 관광을 간다. 비슷한 도로 위를 쌩쌩 달리며 비슷한 풍경을 다른 장소에서 보는 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섬을 찾는 이유야 사람마다 다양하겠지만, 삶의 그대로 살고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우리에게 제주도는 멀리 그리고 가까이 있다.


>> 윤영배가 추천하는 제주도 진짜 여행법.

- 차 렌트하지 말자_ 힘들어도 버스를 타면 좋겠다.
- 동쪽은 ‘가시리’ 를 주변으로 하는 오름들을 강추! 정말 좋다. 자전거를 빌려서 오름의 길들을 다녀도 좋다. 다만, 자전거가 갈 수 있을 곳만 가자.
- 서쪽은 ‘금능’ 이 참 좋다. 물때를 잘 만나면 물이 꽤 멀리까지 빠지는데, 운이 좋으면 낙지를 잡는 일도 생길지 모른다.
- ‘애월’ 의 ‘한담공원’ 백사장은 예술 그 자체. 제주도는 돌이 많은 지역인데 이곳 한담 공원은 바닷모래에 은빛가루를 얹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