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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다/비뚤어질 테다

미스터리 2012 : N양의 방 온도

2012년 7월, 서울. 열대야 현상이 14일 연속으로 이어졌다. 1994년 여름과 맞먹는 기록적인 폭염이 한여름밤을 뜨겁게 달궜다. N양은 자취방에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니, 이룰 수가 없었다. 에어컨 따위 생각할 수 없는 작디작은 N양의 방임에도, 고물선풍기 하나로는 역부족이었다. 소리만 요란할 뿐 더운 바람만 내뿜어 숨이 턱턱 막혔다. 하는 수 없이 날마다 학교 열람실로 향했다. 환한 불빛 아래 잠을 청해야 한다는 사실이 고통스럽지만, 더위로 잠 못 이루는 데서 오는 고통보단 훨씬 나을 테니까.

폭염비상
지구 온도는 조금씩 상승하고 있었다.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남김없이 독식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열병을 앓는 탓이었다. 당연한 듯 존재했던 것들이 열기 속에서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고 빈자리에선 열꽃이 피어올랐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내릴 줄 모르는 열이 지구의 상태를 제 맘대로 조종하기 시작했다. 추워야 할 곳은 덜 춥게, 더워야 할 곳은 더 덥게 했으며 애꿎은 곳에 눈과 비를 들이붓거나 물난리를 일으키기도 했다. 지구는 서서히 통제력을 잃어갔다. 그러다 2012년 7월, 원래대로라면 적당히 머물고 떠났어야 할 북태평양고기압이 N양이 사는 곳 위에 멈춰서는 사건이 발생하기에 이른다. 열흘이 넘어도 떠날 줄 모르는 북태평양고기압은, 덥고 습한 공기를 구석구석 불어넣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폭염暴炎’이었다. 어느새 N양의 작디작은 방에도 불어 닥친 이 지독한 폭염은 지구의 열과 앓는 소리를 있는 그대로 전하고 있었다.

가난한 대학생이니까
강원도 홍천이 고향인 N양은 2007년 서울에서 꽤 알아주는 어느 여대에 입학했다. 졸업 후의 창창한 미래와 꿈같은 대학 생활을 기대하며, 서울로 상경했더랬다. 하지만 현실은 나날이 오르는 등록금과 방값, 생활비에 존재했다.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악착같이 공부해 장학금도 타가며 꾸역꾸역 대학 3년하고도 한 학기를 채웠다. 이제 마지막 학기를 앞둔 시점, 취업 고민에 밤잠 이룰 길 없는 N양을 돕기라도 하는 듯 폭염이 그녀가 거주하는 방을 덮쳤다. 집에서 떠나온 지 5년인 N양. 마땅히 앞길도 보이지 않고 이게 무슨 신센가 싶다. 돈도 없어 더 좋은 조건의 방으로 옮길 수도 없고, 지금 머무는 방이라도 지키려면 잠시 집에 다녀올 수도 없다. 굳이 지금의 대학을 고집한 것이 후회된다. 더 좋은 조건을 얻고 싶어서 온 건데, 이건 뭐 학교 다니기도 쉽지 않다. 어떤 일을 해야 재밌을지도 모르겠고, 다만 이 찜통더위를 벗어날 수 있는 좀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가고 싶을 뿐이다.

누가 N양의 방을 달구는가
단순히, 안 그래도 취약한 N양의 자취방이 십수 년 만에 찾아온 폭염의 기습을 당한 것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문제의 저변에 지나칠 수 없는 무언가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지구 온도가 올라가는 바람에 N양의 자취방 온도가 올라갔다. 대기업이 시장을 독식하면서 취업할 곳이 한정되자 사람들은 더 좋은 조건을 얻기 위해 수도권 내 대학으로 진학하기 시작했다. 늘어난 수요로 자연스레 오른 방값 탓에 N양의 방 온도는 한 번 더 오른다. 어쩌면, N양의 방을 달군 범인은 우리 모두일지도 모르겠다. 지구 온난화와 학벌 중심 문화가 더 가지려 하고, 더 누리려 하는 우리의 욕망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달궈진 방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N양 한 명뿐이라 하더라도,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 윤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