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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사람과 사람

안녕! 나와 세상의 소통을 그리다│<안녕, 형아>, <안녕, 하세요!>의 임태형 감독

교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임태형 감독은 가벼운 티 차림에 턱수염, 그리고 사람 좋은 미소가 전형적인 예술가로 보였다. 2005년 백만 관객을 넘었던 휴먼드라마 <안녕, 형아>로, 최근에는 시각장애 학생들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린 다큐 <안녕, 하세요!>로 특유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임태형 감독. 삶의 소소한 이야기와 영화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글 이재윤 · 사진 김준영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있는 그대로 편하게 보여주고 싶었죠
그는 지난주에 <안녕, 하세요!>의 주인공인 혜광학교의 아이들을 데리고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다녀왔다고 했다. 독립다큐로는 이례적인 성과로 2만 이상의 관객을 모으며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안녕, 하세요!>는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그린 영화지만 여느 장애를 다룬 영화처럼 어둡거나 무겁지 않고 오히려 유쾌하다. “처음 영화의 출발점은 혜광학교 이상봉 선생님의 사진 작업이었어요. 제자들의 얼굴을 세상에 자연스럽게 드러내어 익숙하게 하고 싶은 거였죠. 그래서 영화를 찍을 때도 억지로 감동적인 스토리 라인을 만들기 보다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있는 그대로 편하게 보여주고 싶었죠.” 장애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리고 시각장애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 따뜻한 영화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낸 것이다. 뇌종양에 걸린 아이의 이야기로 많은 감동을 주었던 <안녕, 형아>와도 연결점이 있는 듯하다.
임태형 감독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이번 <안녕, 하세요!>를 촬영하며 스스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풀어 내는 데 편안함을 느끼는 감독임을 알았다. “예전에 공부를 위해 영화를 닥치는 대로 봤을 때도 그렇고, 평소에 즐기기 위해 영화를 볼 때도 그렇고 사실 ‘착한’ 영화 취향은 아닌데요, 만들 때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편한가봐요.” 준비중인 다음 작품도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액션어드벤처 영화라고 귀띔한다.

현실의 반영이 영화의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요
임태형 감독은 결혼한 후 아내의 강한 권유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행복한 초신자 생활을 마치고 몇 년간 의심의 시기(?)를 거치며 그의 영화 작업 과정은 신앙인으로서 삶과 분리할 수 없는 구도의 과정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독교적 메시지를 가지고 직접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해선 회의적이라고 했다. “현대 영화는 사실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크니까요. 영화는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라기 보다는 현실의 반영이지 싶어요. 한국 영화에서 최근 교회와 성직자들을 희화화하여 묘사하곤 하잖아요. 현실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진위야 무엇이든 그들의 눈에 비치는 모습인거죠. 영화도 그렇죠. 현실의 반영이 영화의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요.”
영화의 세계에서 기독교 신앙이 조화를 이루기는 쉽지 않은 점들을 이야기한다. 아트필름이라고 불리는 영화들은 인간의 죄악, 고통 등 어두운 부분에 집착하고 그걸 파고들수록 인정을 받는데, 이런 부분이 기독교 사상과 어떻게 양립해야 할까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매일 아침 성경을 묵상하고 하루를 시작한다는 임태형 감독은 이미 <안녕, 하세요!>라는 특별한 작품으로 잘 승화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저 영화가 만들고 싶어서 시작한 일인데, 영화를 만들자
네이버 검색으로 ‘임태형 감독’을 검색하면 필모그래피에 그 유명한 <파업전야(1990)> 조명 스탭으로 시작한 그의 꾸준한 영화 인생을 만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영화 감독이 꿈이 었던 그는 ‘영화 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고 했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동기가 70명인데 그중에 본인 포함 두 명만 현재 감독으로 활동을 한다. 비결을 묻는 질문에 ‘ 딴 걸 안한다’ 라고 간단히 답한다. <안녕, 형아>의 성공 이후 상업영화를 계속 준비했는데 쉽지 않았다.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저 영화가 만들고 싶어서 시작한 일인데, 영화를 만들자.’ ” 그래서 저예산독립영화를 2편 만들었다. <조우(2010)>는 일본에서 개봉되었고 <오사카의 두마리 토끼(2011)>는 도쿄국제영화제에 월드프리미어로 초청되기도 했다.
“몇 살까지 무엇을 하겠다 목표를 정하면 더 못하는 거 같아요. 그냥 어쨌든 하겠다는 마음으로 하는 거죠. 그래도 한국은 큰 욕심 없으면 굶어죽지는 않는 사회니까요.” 영화를 한편 만들고 나면 산후우울증과 같은 허탈감이 찾아오는 이야기도 솔직히 나눈다. “이 영화 만들어서 도대체 내가 얻은게 무언가, 성취한 것도 없는것 같고. 그런 생각도 들죠.” 인터뷰 자리에 동행한 <오늘>편집장은 “우리가 <오늘>을 만들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거든다. 하지만 그리 대단한 일을 해내지 않는 듯해도, 그리고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삶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전하며 어떤 한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나름의 역할을 해 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나눈다. <안녕, 하세요!>를 본 사람들이 삶의 새로운 영감과 에너지를 얻었던 것처럼. 

나이가 들면 혼자 조용히 작업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임태형 감독. 현대사회에서는 점점 창작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늘어날 거라는 예상을 하면서, 영화감독처럼 창작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일은 참 쉽지 않다고 말한다. 이 직업은 자신을 최대한 드러내고 이슈화해야 살아 남는 직업인데 성경의 가르침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요구를 하기에 오히려 상충하는 듯하다고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최전선에서 인간의 적나라한 욕망과 마주하여 신앙을 더 제대로 적용할 수 있는 업으로 볼 수도 있다며 웃음 짓는다. 그의 따스한 미소를 보며 <안녕, 형아>, <안녕, 하세요!>를 잇따르는 임태형 감독만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