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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다/뉴스 따라잡기

돈만 주면 뭐든 다 되는 세상

3년 전 어느 날, 저는 이른바 ‘용역깡패’ 라고 불리는 용역업체 잠입 취재를 위해 기자가 아닌 용역업체 직원 신분으로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 들어갔습니다. 남대문시장에서 구한 군복 차림으로 시위대를 진압하는 연습(?)을 하고 난 뒤에는 공장 바닥에 박스를 깔고 누워 쉬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당시 제 옆에 자리를 깔았던 둘은, 강남의 한 호텔 폭력사태와 강북의 뉴타운 개발 지역 철거 현장에서 쇠파이프 들었던 일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했습니다. 이번 일은 일당이 더 높아서 한몫 챙길 것 같다는 대화도 오갔습니다. 조직폭력배로 활동하고 있거나 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빼면, 현장에 모인 용역들은 키가 크고 몸무게가 많이 나갈수록 대접을 받았습니다. 

런던올림픽 개막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됐던 지난 7월의 한 새벽에도,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에는 이렇게 일당을 받고 사람들을 제압하는 게 주 업무인 용역 250여 명이 몰려들었습니다. 이들은 회사 측과 맞서고 있던 직원들을 쇠파이프나 소화기 등으로 폭행했습니다. 이들에게 얻어맞은 직원들은 머리가 터지고 치아나 팔다리가 부러졌습니다. 폭행을 피해 도망치다 건물에서 떨어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날 하루 그렇게 사람을 몰아붙이는 대가로 용역들이 회사 측에서 받은 돈은 일당 35만 원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러한 일을 자행하는 장면이 세상에 공개돼 ‘용역깡패’라고 비난받았던 용역업체는 여전히 건재한 상태입니다. 이번 사태로 용역 법인들은 사법처리가 예상되지만, 이 업체의 법인 한 군데에 대해 허가 취소 조치가 내려진다해도, 이들은 여러 군데에 또 다른 법인을 설립해 놓았기 때문에 영업에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에도 이 업체는 불법을 저질렀는데, 허가 취소 나흘 만에 임원을 변경하는 꼼수를 부리며 신규 허가를 받아냈습니다. 돈 받고 폭력을 행사하는 다른 용역업체들도 이런 식으로 살아남아 왔습니다. 돈을 받는 대가로 폭력을 저질러놓고도 오히려 자신들은 여론의 희생양일 뿐이라는 입장을 발표하는 뻔뻔함 뒤에는, 이렇게 순조로웠던 과거 깡패 짓에서 비롯된 자신감이 있는 겁니다. 
용역업체가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공장을 생지옥으로 만들었던 당시 현장에도 경찰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관할 경찰서장을 비롯한 경찰들은 민간인이 폭행당하는 걸 그저 뒷짐 진 채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현장에 있는 공권력조차 무기력한 현실에서, 일부 야당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용역업체 규제 법안이 실효를 거두는 데까지 이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게다가 이 업체의 회장이라는 사람이 여당에서 주요 당직을 맡아왔고, 이 업체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 서울시 주요 행사의 진행을 맡을 만큼 위세가 등등하다는 사실은 현실을 더욱 어둡게 보도록 만듭니다.

노사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없다면 이러한 용역 깡패들과 마주치는 건 그저 남의 얘기일 뿐일까요? 이러한 용역들은 노사분규 현장은 물론 뉴타운개발이나 청계천 복원공사와 같은 건설현장, 일반기업의 주주총회,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같은 유명인 경호, 그리고 문화 공연 질서 유지 업무까지 점차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깡패를 사서 용역경비라고 포장해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현실, 돈 없으면 바보가 되고, 돈만 주면 뭐든 다 되는 세상이라는 유행가 가사와 같은 상황이, 평범한 사람들 곁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뜻입니다. 



조현용| 커다란 머리만큼이나 세상의 아픔을 돌아보고 알리고 싶은 MBC 기자. 사실 부지런하기보다는 게으르고 한 곳에 머무르기보다는 여러 나라를 개 마냥 싸돌아다니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하고, 화려한 밥상보다 오직 맛있는 연유가 들어간 모카빵을 좋아하는, 크리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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