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를 둘러볼 새도 없이 삶은 자꾸만 우리를 부채의 사북 자리로 내몬다. 세상이 넓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어제보다 오늘 더 선뜻 세상으로 나서지 못한다. 우리는 나이를 먹고 늙어가며, 예고 없이 이별을 맞는다. 슬픔은 고스란히 남은 자의 몫으로 남아 우리의 어깨를 짓눌러도 우리는 우직하게 삶을 살아내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에겐 나보다 너, 바로 당신이 필요하다. 혼자서는 도저히 살아낼 수 없는 ‘오늘’을 허락하신 데에는 분명한 뜻이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고 말해주는 선배를 만났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나 자신을 온전히 마주하고자 노력하는, 배우 예지원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글 원유진 · 사진 탁영한

우연히 찾아오는 만남처럼 
올 한해, 연극, 드라마, 예능 등 다양하게 활동했던 예지원은 요즘 새 영화를 찍으며 영화 <내가 고백을 하면> 개봉을 기다린다. 이 영화는 이미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을 만났다. “좋았어요. 영화제의 특성상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오시고 축제 분위기였던 것도 있지만, 충분히 공감하셨던 것 같아요. 자잘한 단편이 엮이며 재미있게 영화가 펼쳐지는데, 배우분들이 연기도 잘 해주셨고, 작품도 좋고요. (이 영화는) 나를 돌아보게 해요. 지금의 나, 관계에 대한 거. 그걸 깊이 생각하게 하는 영화인데 심각하지 않고 유쾌하죠.” 
영화에서 예지원은 고통과 죽음이 일상인 수간호사 유정을 맡았다. “엄청난 거잖아요. 죽음이라는 것. 아픈 사람을 매일 본다는 게. 그러다 보니 사람이 냉정해지고 이성적이 되죠.” 삶 자체가 조심스러운 사람에게 타인과 맺는 관계가 쉬울 리 없다. 영화가 아니더라도 삶은 우리를 작아지게 만든다. “나이를 먹을수록 이전에는 순간의 열정, 즉흥성이라는 게 있었어요. 삼사십 대에 이르면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실수를 안 하려고 하게 돼요. 그러다 보니 관계에 대해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고, 알던 사람만 만나게 되고요. 점점 관계가 좁아지죠.” 우연한 기회로 점차 서로에게 스며드는 유정과 인성(김태우)을 이야기하며 예지원은 자신에게도 이런 우연이 찾아오길 바랐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부러웠어요. 나도 이런 우연이 찾아왔으면. 저 같은 경우도 마음을 열기 쉽지 않아요. 관계를 열기 쉽지 않고, 특히 이성적으로. 이 영화를 보시는 분들에게는 고백할 수 있는 용기를 내보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더 풍성해진 여배우, 예지원 
“삼십 대는 연기자로서 풍성했어요. 감사한 일이 많고. 나이가 들며 특히 여자 연기자는 주요인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죠. <올드미스다이어리>같이 삼십 대 여성의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 생겨났어요. 다행히도 시대를 잘 타고 나서, 다양한 작품이 저한테도 오고 있고요. 좋은 사람들과 작업도 할 수 있고요. 계속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꼭 자신이 아니더라도 이야기와 사람이 좋으면 누가 있어도 좋은 작품이 될거라 말하지만, 맡은 배역에 온 힘을 다하여 참여하는 예지원을 보면 없는 이야기라도 만들어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지 않을까? <더 킥>을 촬영하기 위해 태권도를 배워 단증을 따내고, <달빛 길어올리기>에 맡은 배역이 하는 일이라고 한지 공예 자격증까지 준비한 것은 이미 유명한 일화다. “배역이 들어오면, 일단 이 역할을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 생각하죠. 저는 직업 쪽으로 많이 다가가는 편이에요. 그러면 조금 더 많이 다가갈 수 있겠죠.”

절절한 마음으로 짙어지는 신앙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어머니 손잡고 교회에 따라갔던 예지원은 성가대 활동을 한 적도 있었지만 절실하진 않았다. 신앙이 깊어진 건 연기를 시작하면서였다. “오히려 연기하며 더 절실해졌어요. 연기하면 기도거리가 많아지잖아요. 하나님한테 부탁해야 할 게 많으니까. 무대 서기 전에 얼마나 절실해지는데요. 이 무대에서 잘 하고 싶잖아요. 꼭 기도하죠.” 게을러져 나가지 않던 교회에 나가고, 기도도 하고 성경도 읽었다.
이뿐이랴, 배우의 삶 자체를 하나님께 맡기게 되었다. “좋은 것도 있지만 속상한 일도 있을 수 있고, 바라는 것도 많아지죠. ‘저 작품 하고 싶어요’라든지, ‘이 작품 사고 없이 끝내게 해주세요’, 기타를 치게 되면 ‘기타 잘하게 해주세요’라든지. 결이 곱게 가고 싶어서 성경책도 들여다보고, 연기자란 무엇인지, 여배우로 내가 고민하는 게 과연 맞는 건지, 이런 고민을 하며 성경공부도 나갔죠.” 연예인 성경공부반을 찾아가 함께 성경공부를 하고 삶과 고민을 나누며 감사를 배웠다. “작품, 여가 활용,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과 해야 하는 것 등의 얘기를 하다 보면 다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나님이 주실 땐 다 이유가 있는 거고, 감사히 여기고 책임을 져야 하죠. 연기자로 사랑을 받을 때는 행사도, 전도도 좋을 수 있고. 주변에 외롭다든지 조금 힘들어 하는 사람을 돌볼 수도 있는 문제고요.” 위로를 배우며 예지원은 이제 더 많은 것을 구한다. 무대에 오르거나 촬영에 들어가기 전, 빠지지 않고 기도를 한다. “여기 오신 분들이 제 연기를 보고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조금 보였으면 좋겠어요. 쉽지는 않죠.”

더 크게 팔을 벌리게 한 컴패션 밴드 
“봉사활동은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중에 나이 들어서 모든 게 안정됐을 때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핑계였던 것 같아요. 우연한 기회로 컴패션에 갔어요. 컴패션 밴드라는 게 무대에서 컴패션을 홍보하는 단체잖아요. 무대에서 다 같이 공연한다는 것도 저랑 맞고요.” 컴패션을 통해 찾아간 아이티에서 예지원은 폭풍에 아이와 집을 잃은 어머니를 보았다.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지만‘ 하나님 옆에 아이가 있다는 걸 확신’해서 열심히 살 거라는 말에 위로의 말도 꺼내지 못하고 묵묵히 기도만 하고 나왔던 일과 먹을 것이 없어 독성이 있는 걸 알면서도 진흙쿠키를 구워 아이를 먹일 수밖에 없는 마을에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반성했어요. 왜 우리는 이들을 돕지 않을까, 왜 나누지 않을까. 나눔에 대해 생각했고, 컴패션 밴드 활동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죠.” 
맡은 배역을 잘해내기 위해서 언제나 ‘숙제가 많다’고 말하는 예지원은 작품을 통해 배우고 익힌 것을 공연을 통해 나눈다. 태권도를 배운 후에는 함께 작업했던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도움을 청하여 컴패션 공연에 함께 서기도 하고, 댄스스포츠를 가르쳐준 선생님에게 부탁해서 같이 공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재능기부를 하는 게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고 숙제가 아닐까요? 우리가 공인이고, 연기자일 때에는 반드시 이걸 하는 이유가 있을 거예요. 컴패션을 통해 현지에 가서 그들을 보며 이런 활동을 하라고 주시는구나, 꼭 해야 할 일이구나, 생각했어요.” 
예지원은 컴패션 밴드가 더 알려져 오지의 아이들을 돌아볼 기회가 많아지길 바랐다. 오지의 아이들을 돕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도움을 통해 아이들에게 돌려받는 것은 더 많아서다. “한국이 많이 발전하고 있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이 차가워지고 서로 관계가 소원해진 것 같아요. 누구나 마찬가지인데 마음을 조금 열면 되지 않을까요. 이게 싫고 저게 싫다고 자꾸 쳐내다 보면 과연 남는 게 뭐가 있을까 싶어요. 나도 남에게 만족을 주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누군가 내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을 때,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조금 머리가 어지럽더라도 지나치지 말고 보아주는 게 맞다고 봐요. 오죽했으면 나한테 왔겠어요.” 

예전 모 인터뷰에서 예지원은 여배우에게 중요한 것으로 ‘사랑, 신앙, 봉사’ 이 세 가지를 꼽았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한 가지가 덧붙었다. ‘도움’이다. “중요한 게 그때마다 달라지는 것 같긴 한데, 신앙, 사랑, 봉사는 기본인 것 같고요. 자신할 수 없지만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내 것만 하는 게 아니라 주변을 돌아보고,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힘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현장에서 실천에 옮기기란 쉽지 않다. 현장은 정신없이 바쁘고 해야 할 일도 많기때문이다. “존경하는 선배님들은 충분히 그렇게 살고 계세요. 넘칠 만큼 주변을 돌아보고 챙기시죠. 큰 숙제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후배에게 물려줘야 하고, 이렇게 나이를 먹어야 한다고요.”

올해 마흔을 맞아 약간 움츠러들기도 했지만, 한해를 지내며 다시금 힘을 얻었다. “젊음의 끝자락은 아닌지, 체력적으로 지치면 어떻게 하지. 내가 조금 더 살았다고 잘난 척하면 어떻게 하지, 이런 걱정 했었어요. 잘난 척할 시간은 없었어요, 너무 바쁘니까. 체력적으로도 살아있더라고요. 일곱 시간 동안 춤을 췄으니까요. 사십 대도 다 하니까 삼십 대에 나이 먹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삼십 대는 이십 대에 쌓아온 노하우도 있고, 풍성하게 펼칠 기회도 있는 풍성한 시기에요.” 덧붙여 감사를 강조했다. “기도도 말씀묵상도 많이 하시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해요. 요즘 공황장애니 우울증이니 많은 현대의 병이 있잖아요. 감사하는 마음이 부족해서 생기는 병이라고 생각해요.” 성경공부를 인도하시는 목사님께서 말씀을 외우게 하셨다며,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좋았다고 함께 해보자는 말도 덧붙였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조금 더 균형 감각이 있었으면 좋겠고, 조금 더 현명해졌으면 좋겠어요. 이성적이 아니라 가슴으로요. 더 현명하게 관계들을 잘 유지 했으면 좋겠어요. 조금 도움이 됐으면 좋겠고. 도움이 되려면 정말 많은 걸 가져야 해요. 아직은 제가 많은 걸 갖췄다고는 생각 안 해요.”

수많은 올드미스가 <올드미스다이어리>의 예지원을 보고 힘을 얻었듯이 앞으로도 예지원은 함께 나이 들어가는 여인의 이정표,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우리가 내민 손을 결코 지나치지 않을 예지원을 떠올리며, 예지원의 손을 꼭 잡고 함께 걸어가실 하나님의 은총을 바란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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