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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동선예감

필리핀 마욘 화산의 칵사와 유적에 서서


근현대사회로 넘어오며 수탈의 역사를 빗겨간 민족은 얼마나 될까요? 필리핀은 일찌감치 해양 무역 기지로서 최적의 위치로 알려졌고 다양한 나라가 지배를 했습니다. 고대부터 왕성한 무역을 통해 이슬람이 전파되고 참파, 송, 명의 상인과 교류하였습니다. 15세기에는 마젤란이 서구에 소개했고 그 후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이후 스페인에게서 독립을 했지만 다시 미국이 지배를 했고 1941년에는 진주만 공격 이후 1945년까지 일본이 지배를 하는 불운한 역사를 지녔습니다. 
비콜 지역의 레가스피(필리핀을 지배하기 위해 스페인이 파견한 초대 총독의 이름을 땀) 외곽에는 유명한 마욘(지역 원주민어로 ‘아름답다’는 뜻) 화산이 있습니다. 지금도 살아있는, 무시무시하지만 시리도록 아름다운 화산입니다. 20세기 초의 화산 폭발로 마을이 통째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마욘 산 산자락에 있는 유명한 칵사와 성당 유적지를 방문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마을은 사라졌지만, 옛 성당의 유적은 비교적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 성당 옆에 서면 마욘 화산이 가장 잘 보인다고 합니다. 수많은 민족이 욕망에 이끌려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 나타났다 사라져 갔지만 마욘 산은 묵묵하게 인간사를 그저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가끔 괘씸한 인간들에게 ‘음허허’ 기침을 하면서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마욘 산에게 인간의 역사란 눈 깜박할 시간일지 모르죠. 성당유적지를 걷고 있으니 거센 바람이 불어옵니다. 이곳에서 명멸해간 수많은 인간 군상이 속삭이는 듯합니다. 욕망을 떨쳐내라고 말입니다.


강제욱|사진작가. 전 세계의 환경 문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국내외의 많은 매체와 함께 일하면서 환경 문제를 널리 알리고 있으며, 9회의 개인전과 30여 회의 그룹 전시회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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