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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살림의 나날

한 지붕 두 가족 이야기 2

다시금 찾아온 삶이 주는 기쁨
이곳에 이사를 온 후 얼마 전 아이들 학교에서 운동회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들 학교는 전교생이 백여 명 남짓한 분교다. 작년 서울에 있을 때 큰 딸이 다니던 학교는 학생 수가 많아 학년을 나누어 운동회를 했다. 그땐 조금 천천히 가도 되겠지 하고 여유 있게 갔더니 뭐 하는 것도 없이 운동회가 끝이 났었다.
나 어릴 적에는 운동회가 학교에서 제일 큰 행사였다. 엄마가 1년에 딱 한 번 학교에 오시는 그날이 바로 운동회날이었다. 온 가족이 출동해 청팀 혹은 백팀을 응원하고 점심이면 돗자리를 깔고 김밥과 삶은 달걀을 먹던 유일한 날! 그날에 얼마나 가슴 설레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딸아이의 운동회에 실망하다 못해 마음이 씁쓸했다. 기대하면 실망하는 법이라는 것을 터득한 나는 백여 명의 작은 학교라 별 수 있을까 싶어 큰 기대감 없이 학교에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학교 앞에는 생전 처음 보는 아이들 장난감 좌판이 늘어서 있었고 운동장을 들어섰더니 청팀, 백팀이 운동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그리고 단상 쪽에는 학부모와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구경을 나와 계셨다. 9시 조금 넘어 시작한 경기는 유치원 아이부터 학부모에 이르기까지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신나게 경기하는 동안 한 쪽에서는 어른 몇 분이 무쇠솥에 밥을 짓고 국을 끓였다. 한마디로 마을잔치가 열린 것이다. 감동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 감동은 5살 난 유치원 아이부터 6학년 전교생이 다 참여하는 이어달리기에서 극에 달했다. 한 명도 빠지지 않았다. 잘 뛰는 아이, 못 뛰는 아이, 휠체어를 탄 아이까지 말이다.
“아! 이사 잘 왔다….”
아마 함께 살지 않았다면 용기를 내기가 참 어려웠을 일이다. 직장이 서울이든 경기도든 평균 출퇴근 시간이 왕복 3-4시간이 걸리는 골짜기에 혼자서 이사 오는 건 불가능했을 터.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정보를 수집하다 시간만 다 보내고 결국 ‘장고 끝에 악수를 두’는 우리 부부의 성향으로는 귀촌이 마음에만 머물고 말았을 거다. 그런데 옆에서 “우리 한번 살아보자”고 함께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이가 있어 우리는 이곳에 올 수 있었다.

함께 이루고 싶은 꿈
서울에서 후배네와 살며 우리는 앞날에 대해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가정이 놀다가 동네에서 친해진 동생네도 같이 어울리어 세 가정 혹은 네 가정이 함께 미래를 이야기하고 강원도로 여행도 같이 다녔다. 그러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 볼 욕심에 여러 가정이 모여 사단법인 일촌공동체에 우리 동네를 살리는 기획안을 내기도 했다. 동네 아줌마들이 함께 영화를 보러 가고, 동네 아저씨들끼리 목욕도 같이 가는 옛 동네 이웃사촌을 만드는 문화프로그램 기획안이랄까. 최종 면접에서 떨어져 일을 진행할 수 없었지만 이웃이 함께 하였기에 용기를 내어 시도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도 마을 카페를 만들까 도서관을 만들까,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살았다.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눈 덕분일까. 처음 우리가 꿈꿨던 미래는 참 달랐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의 꿈이 닮아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이 꿈이 내 것인지 네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서울서 틈만 나면 귀촌과 귀농을 이야기하고 꿈꾸었지만 현실이 이렇게 도적같이 올 줄은 몰랐다.
꿈이 현실이 된 지금 우리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구체적이진 않지만 어렴풋이 우리는 교육 워크숍을 통한 힐링캠프를 여는 꿈을 꾼다. 우리 부부만의 꿈이라면 상상만으로도 부담 백배지만 함께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우리의 꿈을 이렇게 공개해놓고 실현되지 않으면 좀 부끄러울 듯하지만 뭐 어떤가! 누군가와 더불어 꿈을 꾸고 기대하고 소망하며 살고 있다는 게 행복인데….

공동체라고 말하기엔 너무 부족한 동거(?)지만 도심에서 홀로 외로움에 몸서리치던 날을 생각하면 이만큼도 감사하다. 우리가 언제까지 동거를 계속할지 아직 아무도 모르지만, 함께 사는 동안 우리는 더불어 열심히 꿈꾸고 살아보련다. 혹 당신이 외롭다면 나는 당신이 작은 용기를 내어 친구에게 말 걸어보기 바란다. “우리 같이 살아볼까?” 이렇게!


이경희|필명 조각목, 소싯적 옷 만들고 책 만들다 결혼 후 마님으로 살면서 음지에서 야매상담가로 맹활약 중. 바느질에 관심을 쏟다가 목디스크 때문에 그만두고 페이스북 에서 수다 떨듯 글을 쓰다가 최근 작가와 출판전문기획자를 동시에 해보기로 결심함. 여성의전화 소식지 기획위원, 지역신문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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