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일이 만만하지 않지만 ‘포기할 것까지야’ 있느냐며 ‘잠시 바람결에 흔들리다 다시 날아 오르면 돼’ 토닥여주고, ‘사람보다 더 소중한 게 세상 어디 있’느냐며 막다른 길로 내몰리는 이를 외면하지 말자 외치는 올곧음, 절박한 삶의 끝에도 ‘아직 희망은 있고 모두 사랑이었다’며 손 내밀어 전하는 따뜻한 체온. 인터뷰하며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노랫말엔 한 치도 거짓이 없다는 것을. 노랫말은 곧 강허달림이라는 것을. 글 최새롬 · 사진 김준영

그녀에 대한 수식어들, 그리고 오해
먼저 강허달림의 이름 앞에 늘 따라붙는 ‘블루스 디바’라는 수식어. 서울재즈아카데미 출신으로 블루스 밴드인 ‘풀 문’과 ‘신촌 블루스’를 거쳤고, 최근 ‘블루스 더, BLUES’라는 블루스 컴필레이션 음반에 참여하기도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그녀는 블루스와 재즈, 팝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음악’을 할 뿐이라고 했다. 또 블루스는 장르가 아니라 정신이라고 덧붙였다. 태생 자체가 노동하면서 만들어진 소리이기에 블루스는 삶 그 자체라고.
그녀는 여성 인권이나 장애인 인권 운동, 환경 운동과 관련된 행사에 자주 서서 노래했다. 그러자 인권 가수, 평화 가수, 심지어 민중 가수라는 수식어까지 붙었다. “음악만 하고 살아왔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세상을 모르고 살았는데 현장에 다녀보니까 조금씩 알게 되는 거예요. 그런 곳에서 제 노래를 원한다면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지만 저도 먹고사는 사람인지라 정당한 대우 안 해주면 ‘안 가!’ 그래요(웃음). 아무튼 그러면서 세상에 대해서 눈이 많이 넓혀진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음악이 먼저이기에 역시 부담스러운 수식어다.
그저 엄마의 존재감을 자신이 드러내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부모의 성(姓)을 모두 쓴 강허달림이라는 이름도 종종 ‘페미니스트’라는 오해를 부르곤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규정하려 하는 모든 꼬리표를 거부한다. 그저 ‘싱어송라이터 강허달림’, ‘노래하는 강허달림’이길 바란다.

음악만 위해 달렸던 20대의 치열함, 그리고 열등감
순천에서도 시골 동네에 살던 그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라디오에서 이선희의 노래를 들은 후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간 그녀는 학비를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뛰었다. 그토록 바라던 음악을 전문 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서울재즈아카데미에 입학했지만 기쁨도 잠시, 곧 열등감에 짓눌렸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거죠. 근데 (아카데미에) 왔더니 잘하는 애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제가 너무 초라해지는 거예요. 아무것도 가진 것도 없고, 음악 공부를 제대로 한 것도 아니고, 다룰 줄 아는 악기도 하나 없고, 그렇다고 노랠 잘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게 주눅이 들기 시작하자 외모와 집안 환경 등 자신의 모든 것이 싫어졌다. 그래도 음악을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그녀는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다. “일기장도 하루 넘기는 걸 못 견뎌 하면서, 매일 몇 시 몇 분에 어디 갔다 왔다 이런 걸 세세하게 적고, 스케쥴 매일 짜고 그러고 살았어요.” 오직 음악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견딘 고통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눈물겨운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행복을 느낄 수 있어 더 소중하고 감사하다고. 그녀의 거칠면서도 가슴을 흔드는 독보적인 음색 또한 그런 시간 속에서 단련된 것이리라.
열등감에서 벗어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때 나이 서른, 음악을 포기했다가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왔을 때 처음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인정했다고. ‘극복’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러고도 시간이 더 지나서였다. “1집 내고 나서 처음으로 사람들이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강허달림, 저란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하고, 뭘 해도 잘한다고 얘기해주시고 예쁘다고 해주시니까 그런 칭찬이 온전히 제게 들어오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자신감도 생기고.”   

음악, 그리고 잘 산다는 것
그녀는 현재 자신의 이름 달림을 따 ‘런 뮤직’이라는 1인 레이블을 운영하고 있다. 일명 자립형 음악인. “인디레이블 대표 가 그러더라구요. 누나 음반을 제작해줄 수 있는 레이블은 한국에 없을 거라고. 인디도 아닌 것이 재즈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7080도 아닌 것이, 어디다 갖다 붙일 데가 없는 거죠.”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었기에 직접 나선 것이 이제는 2집까지 내고 제법 자리를 잡았다. “이런 촌사람이 촌스런 음악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도 제 의무 같아요. 책임감 같기도 하고. 저 같은 색깔 있는 친구들이 어딘가에서 해보겠다고 바동바동 대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어느 한 사람에게 경우의 수라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굉장히 행복한 일일것 같아요.”  

치열했던 20대를 지나 30대의 끝에 선 그녀는 훨씬 여유로워 보였다. 그녀는 음악을 잘하는 것보다 잘 살고 싶다고 말했 다. “잘 살면 음악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음악도 사람이 하는 거잖아요.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음악의 색깔이 많이 달라지고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서 만들었느냐에 따라서도.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게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는 마지막으로 ‘잘 산다’는 게 뭘까요 하고 물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잘 어울려서 사는 게 잘 사는 게 아닐까 싶어요. 나만 잘 사는 게 잘 사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사회에 참여할 수 있으면 참여하고. 세상의 모든 바닥을 어떻게 다 책임지고 관심을 둘 수 있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관심 두고, 나누고. 안 되면 마음이라도 아픔을 함께 공감해줄 수 있고. 그렇게 살면 잘 사는 거 아닐까요.” 지금까지 그녀의 삶이 고스란히 노래가 되었듯이, 그녀가 바 라는 대로 ‘잘 살면’ 또 어떤 멋진 음악이 빚어질까. 다음 앨범이 기대 되는 이유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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