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PECIAL/2013 01-02 이즌 쉬 러블리

이즌 쉬 러블리 2│결국 나를, 시간을 긍정하기로 했어요 - 청어람아카데미 간사 오수경











여자 1호는 해마다 연말이면 ‘셀프 인터뷰’를 한다. 언젠가 ‘아무도 인터뷰를 하지 않으니 나라도 인터뷰를 해보자’며 재미삼아 시작한 일이다. 매년 성실하게 하지는 못했지만 예전 인터뷰를 보며 당시 마음에 두고 있던 남자 얘기에 슬그머니 웃고, 그때 하던 고민을 지금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숨을 쉬는 시간이 참 신기하고 웃기다. 여자 1호에게 셀프 인터뷰란 현재의 나를 들여다보는 거울이면서 미래의 나를 위해 숨겨 둔 선물이기도 하다. 작년에 입던 옷을 꺼내 입었는데 주머니에서 발견되는 오천 원짜리 지폐처럼…. 


자, 그럼 인터뷰를 시작해볼까요? 당신은 어떤 사람이에요? 
글쎄요. 당신이 보고 느낀 그대로인 사람? (웃음) 신체적 특징은 작고 동그래요. 내성적이고 낯을 가리지만 친해지면 정을 많이 주는 편이 고요. 교회 동생이 ‘동네 형 같은 누나’라고 했는데 그 표현이 마음에 들어요. 지금은 청어람아카데미에서 기획, 홍보, 미모, 기타 등등 을 맡고 있어요.

우선 작년 이야기부터 시작할까요? 2012년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언젠가 친구와 대화하다가 “올해는 뭘 해도 재미가 없네”라며 웃었어요. 2012년은 제게 ‘재미없고 우울한 해’로 기억될 것 같아요. 정말 길고 지루한 소설책을 리포트 쓰기 위해 의무적으로 읽는 느낌이었어요(웃음).

저런. 비극적이네요.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재미없고 우울하게 만들었어요?
마음에 드는 드라마나 영화가 다른 해보다 적었어요!(웃음) 개인 혹은 사회적으로 여러 사건을 경험하며 무기력함을 많이 느낀 해였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더라고요. 그러면서 좀 더 근원적 질문을 불만스럽게 던졌던 것 같아요. 믿음, 인생, 외로움… 이런 단어들에 둘러싸여 살다 보니 재미가 없었죠.

그럼에도 당신을 구원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책과 사람이요. 이런 얘기 하면 책 엄청 많이 읽고, 인간관계 넓은 것 같죠? 정반대에요. 오히려 책에 집중하지 못했고, 친한 친구들과도 거의 연락을 끊고 살아 제가 이민 간 줄 아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웃음) 그렇기에 책과 사람을 만나는 순간이 제게는 더 선명하게 남았죠. 희소가치가 있었던 거죠. 잠 안 오는 밤에 작은 불을 켜고 시집을 펼쳐 읽다가 꽂히는 딱 하나의 단어를 마음에 저장해놓거나, 친한 동생들과 떡볶이를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거나, 낄낄거리며 즐거운 이벤트를 계획하거나, 의외의 사람에게서 뜻밖의 충고를 듣고 정신을 반짝 차리거나 하는 순간이 제게는 구원이었어요.

결국 지독한 외로움에서도 무언가를 붙들었던 거네요. 책이든, 사람이든…
맞아요. 인간이 외로움을 느낀다는 건 오히려 결코 홀로일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 아닐까, 생각했어요. 아마, 2013년에도 저는 끊임없이 외로워하며 책이든, 사람이든 무언가를 붙들겠죠.

이제 2013년 이야기를 해볼까요? 한 살 더 먹는 거네요?
그러게요. 가뜩이나 나이 먹다먹다 체한 느낌인데… 대신 먹어주실래요? (웃음)

반사 (웃음). 당신은 30대, 싱글 여성, 활동가잖아요? 이 단어들을 어떻게 느끼세요?
그 중 제가 원해서 얻게 된 단어는 ‘활동가’뿐이네요. 각각의 단어는 그리 특별할 건 없는데 세 개 단어를 한꺼번에 제 인생에 대입하면 제 입장이 특별해지는 것 같아요.

특별해져서 좋아요? (웃음)
어머! 그럴 리가요! (웃음) 농담처럼 “30대 싱글 여성은 인권의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곤 해요. 한때는 저에 대해 주변에서 농담처럼 흘리는 말에 상처를 받기도 했어요. 언쟁하기도 하고요. 그러다 궁금해졌죠. 나 는 왜 혼자인 건지, 왜 30대 싱글 여성에게 할 수 있는 질문이 ‘연애 혹은 결혼’에 한정되는지, 여성 활동가는 왜 주체가 아니라 ‘꽃’으로 존재해야 하는지, 앞으로 내가 어떻게 성숙해야 할지…. 제게 한정된 질문도 있고, 여성이기에 할 수밖에 없는 질문도 있고, 사회적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는 보편적 고민도 섞여 있죠. 제가 마흔이 되고 그 이상의 나이를 먹어도 늘 질문할 것 같아요. 결국 스스로 혹은 주변에 질문을 많이 하면서 답을 찾아가려고 해요. 정직한 질문만큼 정직한 답을 찾는 길은 없어 보이니까요.

사회적 표준이란 게 있으니까 당신이 더 특별해 보이는 게 아닐까요?
그러니까요. 그 사회적 표준이 문제에요. 지난 봄 어느 시사주간지에서 ‘30대 여성의 반란’이었나, 그런 주제를 다룬 적이 있어서 유심히 봤었어요. 기사 내용은 30대 여성이 정치적, 사회적 목소리를 많이 내고 있다는 분석이었는데 자료 사진들이 죄다 아이와 함께 있는 모습이었어요. 그게 ‘30대 여성’의 사회적 표준이었던 거죠. 뭐랄까, 소외된 느낌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누군가 제게 “너는 왜 여태 결혼을 안 해?”라고 물을 때 제가 “그럼, 당신은 왜 그렇게 일찍 결혼했어요?”라고 물어보면 어떨까요? 제가 “30대 싱글 여성은 인권의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농담처럼 말했던 이유는 존중받고 싶어서였던 것 같아요. “당신의 시간과 삶이 옳듯 내 시간과 삶도 그래요”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죠. 그건 제게 중요한 문제거든요.

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건 중요한 문제에요. 사실 그동안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어떤 사건이나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었어요. 내가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잘 모르고 살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자꾸만 조급해지고, 팍팍해졌어요. 그래서 ‘명랑’을 잃어버렸죠. 인생에서 ‘명랑’이 참 중요한 건데… (웃음). 나를 긍정할 수 있어야 타인을 긍정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게 부족하니 자꾸 사회적 표준에 자신을 구겨 넣고, 그렇지 않은 삶을 외면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사는 것 같아요. 우리 모두.

그래서 스스로 긍정할 수 있게 되었나요?
이제야 문제를 인식한 거죠. 미약하지만 노력은 했어요. 스스로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 애니어그램 강좌도 듣고, 잠깐이지만 요가도 배웠어요. 특히 요가를 배우며 흥미로운 사실을 알았어요. 내가 의외로 유연하다는 것, 그러나 근육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아 굳어있다는 거였죠. 몸이든, 마음이든 굳은 근육을 풀고, 유연하게 살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죠.

2013년에는 어떤 삶을 살고 싶어요?
일단 나를, 시간을 긍정하려고요. 조급해 하거나 쫄지 말고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며 살아야겠죠. 무엇보다 조금 더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의외의 일탈도 해보고, 재미난 일들도 계획해봤으면 좋겠어요. 벗들과 즐거운 사연을 많이 만드는 일이 2013년 제 소박한 풍경이 되겠네요. 글도 잘 썼으면 좋겠고요. 글쓰기 울렁증이 있거든요. 매일 매일 꾸준하게 글을 읽고, 글을 쓰는 훈련을 하고 싶고, 인생과 신앙에 대한 근본적 질문들을 하며 공부하고 실천하는 기회를 많이 만들고 싶어요. 뭔가 배우고 알아가는 만큼, 앎을 배신하지 않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연애는요?
아…, 그건 늘… (웃음).

동시대를 살아가는 언니 혹은 친구, 후배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자신을 더 많이 긍정하며 사랑하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내공을 키우자는 말을 하고 싶어요. 혼자서든, 모여서든 치열하게 공부도 하고, 속 깊게 연대하며 더 단단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더 예뻐지기로 해요. 마음의 각질 잘 제거하고, 기초 손질 잘하고, 안티에이징, 보습 관리 잘하고…. 미모는 중요하니까요. (하하하)

첫 질문을 다시 하고 싶네요. 당신은 어떤 사람이에요? 
음…, 반전 있는 여자? 

오수경|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지만 글쓰기 울렁증이 있고, 책을 많이 사지만 읽지는 않고, 사람을 많이 만나지만 부끄럼이 많고, 내성적이지만 수다스럽고, 나이는 들어가지만 철은 점점 없어지는 반전 있는 여자. 사훈이 ‘노는 게 젤 좋아’인 청어람아카데미에서 열심히 일하는 척하며 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