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년 전 대구의 ‘찬미워십’에서 찬양 사역을 시작했고 현재까지 이 팀을 섬기고 있다. 최용덕은 필자가 몸담고 있는 ‘찬미워십’의 창단 멤버이자 초대 리더였다. 그에게서 배웠고 그에게 큰 영향을 받은 직계 제자의 입장에서 스승을 논한다는 자체가 너무나 부담스러운 일이라서 자칫 낯 뜨거운 용비어천가를 쓰거나 혹은 어설픈 불경으로 비칠까 두렵기도 하다. 아이들은 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본 대로 한다는데, 나는 그 시절의 그를 본 대로 증언하려 한다. 물론 본 대로 살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 그는 내가 꿈도 꾸지 못 할 높은 길, 좁은 길, 깊은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평범함에 담긴 특별함
고등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하는데, 당시 대세였던 최덕신과 주찬양선교단이 전국투어 프로그램으로 대구에 내려와 집회를 인도하던 중간에 찬미선교단의 대표 최용덕 간사를 소개했다. 그가 만든 노래나 악보집, 쪽지 등은 워낙에 유명했으나 정작 얼굴을 몰랐던 터라 나는 궁금함에 주위를 살폈다. 놀랍게도 내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너무나 평범한 아저씨가 자리에 일어서서 인사를 했다. 그것이 최용덕과 첫 만남이었다. 무대 위의 최덕신은 연예인처럼 멋있었고, 객석에 앉아 있던 최용덕은 정말이지 평범했다. ‘평범하다’는 평범한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평범했다.

그러나 그의 삶과 노래는 특별했다. 그는 음악성이 남달리 뛰어난 것도, 노래 실력이 출중했던 것도 아니었으되, 가사의 진정성과 삶의 치열함으로 남다른 길을 걸었고, 한국적 찬양 문화의 기초를 놓았다. 듣기는 편한 그의 노래를 정작 쉽게 부를 수는 없다.
다른 노래는 손뼉을 치며 부르지만, 그의 노래는 가슴을 치며 부르게 된다. 음악이 어려워서라기보다 가사의 무게감이 부담스러워 쉬이 입술을 뗄 수가 없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가서 제자 삼으라, 일어나 걸으라, 정직하라, 오 신실하신 주,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네….
다 열거하기 힘든 그의 명곡들은 성도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고, 그가 서 있는 특별한 지점은 다른 찬양사역자들과 달리 무대 위가 아닌 무대 아래에서 더욱 빛났다. 유독 ‘하라’ 류의 노래가 많았음에도, 그 간절한 외침을 강압적인 명령으로 여기지 않은 이유는 먼저 그렇게 살며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던 사도 바울의 모습이 그에게서 겹쳐 보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의 노래들은 최덕신과 최인혁의 노래 같은 세련됨과 파퓰러 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전 세대를 공명케 하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한국 교회가 찬송가가 아닌 새로운 찬양 형태를 유입하던 때, 젊은이들의 음악만으로는 기성세대의 거부감을 피할 수 없었다. 바로 그 지점에서 그러한 거부감을 중화하며 장년 세대까지 품게 한 것에는 그의 공로가 크다.
또한 한국 교회를 향한 그의 결정적 기여는 ‘찬미예수 시리즈’로 불리는 악보집의 보급이다.
건축을 전공한 미술적 재능이 음악적 재능에 더해져 그가 손수 그린 악보와 손글씨(그는 찬양에 관한 한 음악뿐 아닌 잊히지 않을 시각적 이미지를 한국 교회에 남겨주었다)로 유명한 ‘찬미예수 500, 1000’ 등은 전국에 없는 교회가 없다.
단순히 곡을 모아둔 악보집의 의미를 넘어서 그가 선곡한 곡들은 교회마다 널리 소개되고 불리며 찬양과 예배 문화에 변화를 일으켰다. 그리고 ‘월간 찬미’, ‘여기는 삼도봉 예수마을’, ‘낮해밤달’ 등의 이름을 거쳐 현재의 ‘해와 달’에 이른 그가 매달 발행한 쪽지를 통한 문서사역으로 많은 이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었다.
가까이에서 본 그는 여린 감성의 완벽주의자다. 남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 철저한 그의 성향은 그의 작품 곳곳에 묻어난다.

삶을 노래하는 그의 메시지
유독 그의 노래에는 진솔한 자기 고백의 수준을 넘어 자책으로 느껴질 정도의 자기비하가 있다. 자격 없는 자를 사랑하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그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역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원인불명으로 몇 년간 목소리를 잃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딸을 하나님께 돌려보내는 등 모질게도 하나님은 그의 삶을 광야로 몰아넣으신다.
삼도봉 예수마을에서 어부동 갈릴리 마을로, 도무지 안정된 정착과는 거리가 먼 인생의 여정이다. 무소유의 삶을 위해, 또 이웃과 나눔을 위해 여전히 월말엔 잔고를 0(zero)으로 만드는 건 보통 사람은 물론, 웬만한 성직자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의 음악 작업은 한동안 멈춰 있는 것 같지만, 그의 삶은 여전히 치열하게 진행중이다. 찬양사역자 중에 ‘상처입은 치유자(The Wounded Healer)’를 한 명만 꼽으라면 최용덕 외에는 별로 떠오르는 이가 없다. 그간의 고난과 아픔을 담아낸, 혹은 그 모든 것을 넘어선 노래를 들고 나오기를 기다린다.
최용덕을 논하자니 음악적인 얘기보다 음악 외적인 얘기를 더 많이 하는데, 필자가 오랫동안 주장해온 CCM의 새로운 정의 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 아닌) Message의 관점에서 그 만큼 적당한 사람도 없다. 그는 온 몸, 전 생애를 던져 그 자신이 만든 노래들을 책임지고 있다. 지난 9월, 그가 펴내는 월간 ‘해와 달’에 실린 그의 글의 일부를 옮겨와 결론을 대신하려 한다.

저는 기독교 성가의 생명력은 가사의 진실성과 그 가사를 뒷받침할 만한 삶의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문학적으로 대단해 보이는 가사의 노래라 하더라도, 그것이 삶의 진실한 고백이 아니라 단지 문학 작품이었다면, 그 성가는 짧게 유행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오래 오래 사람들 입에서 불려 지진 않을 거라고 생각 합니다….
…그것은 성가를 부르는 사람, 싱어, 가수에게도 마찬가지로 요구되는 조건일 것입니다. 즉, 그 노랫말 가사가 자신의 진실한 살아 있는 고백이 되지 못하면, 그 노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끼치지 못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단지 음악적인 만족감을 줄 수 있을 뿐!
…저는 30대 중반에 이런 고백의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제목: ‘오, 신실하신 주’)”
물론 앞의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네’라는 곡을 썼을 때와 같은 상황(6년간을 말을 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에서 저는 진심으로 이 고백의 노래를 주님 앞에 드렸습니다. 거짓 고백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노래가 대중들에게 선포되고 난 후에는, 이제 이 노래의 고백이 저의 ‘남은 생애 전체를 통해서’ 검증되어야 하는 숙제를 해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지난 제 생애 동안, 4년 전 딸아이를 천국으로 먼저 보낸 일을 비롯하여, 사람들이 보기에 하나님으로부터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숱한 일들, 이건 절대로 공평하지 않고 은혜일 수 없다는 일들이 여러 번 주어졌던 것은, 그 노래가 지금도 변함없이 저의 진실한 고백인지 검증하는 하나님의 시험인 동시에, 그 노래가 진실 한 저의 신앙고백이 될 수 있도록, 그래서 오래 오래 살아서 생명력 있게 역사하는 노래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연단의 손길이었음을 조금도 의심치 않습니다….

그는 정말이지 특별한 사람이다.



민호기|CCM 소망의 듀오 ‘소망의 바다’ 가수이자, 목사, 교수인 그는 요즘 작가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얻었다. 그런데 그는 그보다 좋은 아빠와 남 편이길 원하고 하나님 앞에서 작은 예배자로 살기를 소망한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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