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군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보통의 키였지만 그의 어깨는 남들보다 한참 낮은 곳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른바 ‘머리 효 과’라 불리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머리는 참으로 개성 만점 이었습니다. 보통 사람이 포도알 같은 머리를 가지고 있다면, A군은 거봉을 가지고 있는 셈이었으니까요. 그래서였을까요, A군은 헤어스타일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큰 머리가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머리 큰 사람들이 대세가 되는 날이 온다’고 으름장을 놓곤 했지만, 신병훈련소에서 터무니없이 작은 철모를 쓰고 행군 중 졸도한 경험은 숨기곤 하는 그였습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러니까 누구?

고교 시절. 거구의 K-1 파이터 최홍만을 보고 A군은 염색을 결심합니다. 거인의 파란 머리는 그의 맘을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방학을 이용한 한 달 남짓한 기간을 이용해 A는 염색했습니다. 학생으로는 거금을 들여 색깔과 머릿결을 동시에 생각한 약품을 사용합니다. 최홍만과 같은 색깔이 나왔지만, 얼굴 때문인지 자신이 더 멋져 보였습 니다. 친구들도 부러워하는 눈치였습니다. 염색하길 정말 잘했어. 결과는 대만족이었습니다. 주일예배에 가기 전까지는 말이죠.
그날 교회는 어딘지 모르게 소란했습니다. 목사님은 A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흠칫하셨고, 장로님들은 웬일인지 종일 언짢은 표정이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평상시와 같이 평범하고 거룩한 주일을 보내던 A는 보다 못한 전도사님의 언질 덕에 상황을 파악했고, 이윽고 당혹감이 엄습합니다. 그 당시는 이 말이 없었지만, 확실히 그것은 ‘멘붕’이었습니다.
A는 억울했습니다. 대체 성경 어디에서 파란 머리를 ‘하지 말라’고 그랬는지, 이건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것이 아니라 교회 어른들 보기에 좋지 않은 것뿐이었습니다. 산업화의 역군들이 보기에, 새파란 머리는 부도덕과 타락의 상징일 뿐인가 봅니다. 고민 끝에 A는 주일예배용으로 가발을 하나 구합니다. 이제 갓 성인이 된 A가 헤어스타일에 결정권이 있다는 것은 곧 인생의 주체가 된다는 기분이 들게 했기 때문에 포기할 수는 없었던 거죠. 먹보다도 더 검은 칠흑빛 가발 덕에 A는 한동안 ‘먹보다도 더 검은’이라는 찬양이 불편했습니다. 그 머리 둘레를 아우르는 크기의 가발을 찾기가 쉽지 않았음은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교회 오빠 스타일의 비밀
그러니까 적당히 검은색 비슷한 걸로 하지 그랬어. 은은한 갈색 머리의 한 친구는 말했습니다. ‘교회 오빠 스타일’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고 하더군요. “교회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선을 유지하는 게 노하우야.” A는 그제야 교회에서 용납하는 적당함을 찾는 것이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교회에 걸리면 안 된다는 친구의 말은 어딘지 모르게 악해 보였지만, 정작 그 자신은 교회에서 전혀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나름대로 자유로운 스타일을 추구하며 살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A보다야 훨씬 모범적인 셈이었지요.
생각해보면 그렇게 어른의 문턱에 접어들었습니다. 군대에 가고, 흰색이나 하늘색 계열의 와이셔츠만 입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A는 집단이 요구하는 일체감을 자연스레 배웠습니다. 사회생활의 메커니즘이 이런 건가 보다, 싶습니다. 교회가 답답한 게 아니었어요. 단지 기성세대의 시선을 고수하고 있을 뿐입니다. 예배시간에 선곡 가능한 찬양도, 현수막의 디자인도, 연세 지긋하신 어른의 결재를 받으려면 어느 정도 눈치를 봐야 하는 건 사실 당연하지만, 그렇게 교회생활이 사회생활과 다를 바 없어서야 되겠나, 하는 생각이 가끔 들긴 합니다. 어느덧 요즘 애들 이라는 말이 입에 붙어가려고 하는 지금, 다시금 거봉 A 군의 파란 머리를 떠올려 봅니다. 


주동연| 작심삼일을 겨우 넘긴 네번째 날의 오후, 세상을 움직이기보다는 그저 잘 쓴 글 한줄을 원하는, 오타쿠와 초식남의 경계짓기 어려운 어딘가.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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