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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3 01-02 이즌 쉬 러블리

이즌 쉬 러블리 6│ 외유내강, 그녀의 선한 아름다움 - 염광교회 사회복지부 임상희 목사


세월이 그 사람의 얼굴을 만든다고 하던가. 힘 있으나 부드러운 눈빛을 보니, 이십 년째 걸어온 발자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인터뷰 동안에도 그녀를 찾는 전화벨이 여러 번 바쁘게 울리고, 카페에 들른 사람들은 인사를 하고 간다. 임 목사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넘치게 웃어준다. “못살아~ 내가 무슨 러블리야 러블리~.” 그 웃음에서 그녀에게서 온정이 흐르는 걸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마주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금방 방심하게 된다. 글·사진 박윤지

그녀의 미소는 오늘도 동분서주
“목사이고 장애인 사역을 하고 있고 교사이기도 하고, 앞으로도 계속할 거예요. 빵도 굽다가 농장일도 하다가 체육교사도 하고, 뒤치다꺼리해요. 저는 하는 일 별로 없어요”라며 임상희 목사는 말을 시작했다.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하느냐는 물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임 목사의 일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세 단어가 남는다. ‘장애인, 문화, 목회.’ 그런데 그 어느 것도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그녀는 2007년부터 염광교회 장애인 사역부를 담당하고 있다.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신학대학원을 거쳐 온 걸음은 자연스러웠다. 딱히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던 일은 아니었지만, 처음 이 길을 선택할 때 주변 사람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거창하거나 특별할 것 없이 묵묵히 걸어온 것이다. “자연스럽게,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고민 없었어요”라고 말씀하시는데 또 웃음 가득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진로를 선택하는 데, 끊임없는 갈등이 있는 건 마찬가지지만, 저는 직접 부딪히고, 해 보면서 확신을 얻는 편이에요. 제 호가 있는데요, ‘무상無想’이에요. 아무 생각이 없다고요.” 이 말끝에도 역시 웃음이다. 생각하고 결정한 일을 망설임 없이 즉각 실행에 옮기기 때문에, 그 많은 일을 할 수 있구나 싶었다. 웃고 있는 눈빛 속에 오랜 시간 다듬어진 가치관이나 확고한 신념이 보였다.
지금 장애인 사역부에는 이상호 목사님과 전도사님 세 분, 학생 180여 명, 자원봉사자 350여 명이 있다고 한다. 공동체의 규모가 커질수록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적어진다는 것이 가장 부담이다. “한 인생이 오는 거잖아요. 그 가정이 같이 오고. 그러면 만만치가 않아요.” 그녀는 하는 일이 없다지만, 마음이 가는 만큼, 사랑을 쏟아 붓는 만큼, 손 가는 일이 많을 것이다. 아침 8시에 출근했다가 밤늦게 퇴근하는 일도 허다하다. 종일토록 동분서주하는 그녀의 모습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움직이는 우물 같았다. 여기저기 물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가는, 샘물이 끊임없이 솟아나는 우물.


기다리고 이어주는 것
음악, 미술, 연극 등 문화는 학생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다. 주간보호센터 ‘피어라희망’의 학생들은 각각 자기에게 맞는 소통의 도구를 찾아간다. “악기를 하는 것은 많은 의미가 있어요. 꾸준히 하다 보면, 자기만의 악기가 생기고 외롭거나 즐거운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잖아요. 처음엔 부정적이거나 회의적인 시선도 있어요. 부모님이나, 특히 남학생들은 거부하고. 전 계속 설득하고 기다렸어요. 학생들이 연습하면서 좌절하고 그러는데, 무대 위에 서면서 자신감을 얻죠. 제가 보기에는 참 잘해요.” 학생들이 각자에게 맞는 소통 도구를 찾고, 자기 의사를 결정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그녀만의 소통 방식이다. 하다가 그만두고 싶은 학생이 있으면 그만두게 한다. 다른 것을 찾아 그때까지 또 기다려 주면 되니까.
그래서 임 목사는 부지런히 네트워크를 만든다. 지난여름 일본에서 인형극을 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도, 습관대로 ‘우리 학생들도 인형극 잘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바로 인형극을 좋아하는 학생 모임을 결성하고 강사를 초빙했다.
“시작했다가 그만두는 아이도 있지만, 소수 학생은 인형극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해요. 부모나 선생에게 말하지 않던 감정까지도 솔직하게 표현하거든요.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거든요~! 근데 저와 선생님만 놀라고, 부모님은 그 얘기를 안 했으면 좋겠다는 반응도 있어요. 그 가치를 모르실 때는 그럴 수 있죠. 저희는 어떻게 하다 보니, 그걸 보는 눈과 마음이 생겼어요.”

정말 필요한 것
임 목사는 몸으로 부딪치며 소통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 교회 사역자, 자원봉사자 등 다양한 사람과 만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처음 만나는 학생이나 부모와는 신뢰를 얻기까지 지속해서 씨름을 해야 한다. 혼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는 과정을 함께 보내며 학생들은 그녀를 의지하기 시작한다. 가출하거나 직장에서 쫓겨나 힘이 들 때 임 목사의 집으로 먼저 찾아온다. 반항하는 아이들은 말하진 않아도, 자신을 이해해 주는 그녀에게 도움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교사로서 아이를 돌보는 데에는 그야말로, ‘엄마 마음’이 필요하다. 학생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매섭게 혼내고 돌아설 때는 학생의 여린 마음을 달래야 한다. 특히 여학생은 예민하므로 함께 고민을 나누는 것이 여성으로서 강점이라고 말했다.
임 목사는 사람에 관심이 많고 그만큼 아주 섬세한 관찰력이 있다. 그녀는 깨어 있는 내내 이 공동체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몰입의 에너지에서 나오는 아이디어가 반짝였다. 얼마 전에는 어린이 도서관을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학생 중에 몇 명이 책을 찾고 책장에 탁탁 정리하는 일을 쉽게 하는 걸 보면서, 어린이 도서관을 세우면 적어도 네 명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직업을 통해 기쁨을 느끼는 것은 사람에게 중요하니까.
“여성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래도 일에 전문성이 있으니까 게을리하지 않으면 인정해줘요. 제가 맡은 일을 하는 데에도 염광교회의 색깔을 띨 수 있도록 정말 지혜로워야 하지요. 애교도 있어야 하는 것 같고요. 제가 말하는 애교는, 여성으로서 지닌 섬세함 있잖아요. 회의 밖에서 결정하는 일도 많은데, 목사님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목사님들이 잘 봐주시는 것 같아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미소와 함께 나긋하고 부드럽게 말을 이어갔지만, 자신의 꿈을 말할 때 빛나는 강인함이 있었다. 그녀가 이 공동체에 다양한 문화를 끌어와 정착시키는 것은, 한 영혼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흔들리며 피어나는 꽃이다. 마침 학생들 몇 명이 저녁에 있는 성탄절 공연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날이었다. “제가 볼 때는 잘해요”하고 웃으며 달려가는 임 목사의 모습에서 선한 아름다움이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