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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사람과 사람

건반 위를 자유로이 거닐며 삶을 어루만지다│재즈피아니스트 송영주


뉴욕에 거주하는 여성 재즈 피아니스트의 하루. 1. 아침에 일어나 팬케익 등으로 브런치를 먹는다. (a) 맨해튼 인근 공원에서 산책 좀 한다. (b) 곡에 대해 떠오르는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적어본다. 2. 저녁에는 주로 클럽에서 연주한다. (a) 때때로 블루노트(!)등의 세계적 재즈클럽에서. (b) 또 허름한 클럽에서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코앞에서 침 튀기며 연주하는 공연을 즐기기도.
누군가에게는 영화의 한 장면 같이 보일 라이프스타일이지만, 그저 소박한 마음으로 자신의 일상을 채워 나가고 있는 여성 재즈피아니스트 송영주의 하루이다. 그녀는 현재 뉴욕에서 활동하는 몇 안 되는 한국 재즈음악인이다. 크리스마스 공연을 위해 잠시 한국에 들어온 틈을 타 그녀를 만나보았다. 글·사진 김준영

재즈는 자유에요. 즉흥성이죠
처음부터 외국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를 꿈꾸지는 않았다. 그저 피아노를 좀 더 잘치고 싶은 마음으로 짧은 유학길에 올랐을 뿐이다. 그런데 재즈가 그녀를, 그야말로 사로잡았다. “재즈는 자유에요. 즉흥성이죠. 백 번을 연주해도 다 다르게 연주한다는 게 핵심이죠. 누구와 만나 연주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지구요, 놀라운 매력이 있어요.” 짧게 건넨 첫마디에 재즈에 대한 열정이 쏟아져 나온다.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로 먼 이국땅에서 외롭고, 때론 처절하게 재즈 연주자로 살아가고 있다. “여기 뉴욕은 연주자들의 전쟁터 같아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피 튀기는 전쟁이죠. 세계에서 모든 뮤지션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괜찮은 클럽에서 연주하는 기회를 얻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에요. 때로는 왜 여기까지 와서 이 생고생을 하고 있나 싶기도 해요. 하하.” 사실 송영주는 2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교수로, 세션 연주자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김동률, 성시경, 김범수, 비의 월드투어 등에 함께했고 4개의 대학에서 강의하는 일 중독자였다. 음악인으로서 고갈되는 느낌이 들었고 재즈의 메인무대인 뉴욕에서 연주자로서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비행기에 오른 지 벌써 2년이 지났는데, 지금 와서 보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에이전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비즈니스 하는 성격도 아닌데 블루노트에 두 번이나 섰죠. 내년 6월에는 블루노트 재즈 페스티벌에 초청도 받았어요.” 당분간은 뉴욕에서 계속 연주 활동을 하며 일 년에 두 차례 정도 한국에 들어와 공연을 할 생각이라고 한다. 


▲ Love Never Fails, 4th album, 2009     ▲ Jazz Meets Hymns,                     ▲ Tale of a City, 5th album, 2011
Won "Best Jazz Album" at Korean           Volume 2, 2010                           Won "Best Jazz Performance" at Korean
Music Awards, 2010                                                                              Music Awards, 2012 




중심이 하나님을 향해 있으면 자유할 수 있다고 봐요

피아니스트 송영주의 이력은 목사 딸로서 교회 반주자를 시작한 그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가 원장으로 계신 한국제자훈련원에서 주찬양선교단이 훈련을 받은 것이 기회가 되어 그녀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피아노연주자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90년대 수많은 CCM앨범에 참여했었다. 그리곤 유학을 떠났다. “1~2년 정도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재즈에 미쳐 버린거죠. 그렇게 7년 동안 음악만 생각하며 살았어요.” 하지만 재즈하면 떠오르는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반해 재즈는 분명 마이너한 장르라고 말한다. “일단 재즈는 매우 순수예술적인 면이 많아서 대중이 다가서기 어려운 면이 있기도 하구, 시장 자체가 너무 작아요. 경제적인 면도 쉽지 않은 경우가 많구요. 뉴욕에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지션들이 바퀴벌레가 지나다니는 작은 클럽에서 연주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 사람들 보면 그냥 그렇게 소박하게 살면서 음악 활동을 즐기는 모습이 새롭기도 하고, 좋았어요.” 그녀에게 재즈란 뭘까. “아직도 부모님이나 교회 어른들은 제 재즈 활동을 이해 못하는 부분도 있어요. 피아노 좀 덜 쳐도 교회 반주자하고, CTS 간증 프로그램에 나오는 걸 바라시니까요. 하지만 저는 재즈 연주자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일이라고 생각해요. 중심이 하나님을 향해 있으면 자유할 수 있다고 봐요. 일반적이지 않고 평범하지는 않은 길이지만 분명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피아니스트로서 삶에 대해 특별한 계획 같은 것 없이 소박한 꿈으로 시작하여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세계 1등의 피아니스트가 되기보다는 마음을 어루만지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한때는 어려서부터 자라온 교회 환경을 벗어나고 싶었고, 목사님 딸이라는 이름을 벗고 싶었는데, 재즈를 하면서 어느 순간 느꼈어요. 그동안 자라온 환경, 가족 분위기, 만나는 사람들 그 모든 것이 녹아서 나만의 음악을 만드는 구나.” 그녀의 음악을 들으면 사람을 치유하는 왠지 모를 영적 기운을 느낀다고 재즈 애호가들은 평한다. 그녀는 크리스천 음악인 후배들에게도 자신의 삶의 중심에 대해 소신을 지니고 당당할 것을 강조한다. “실용음악과에 들어간 후배들이 고민 상담을 많이 해와요. 교회에서 음악을 시작한 친구들이 많은데, 대학의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죠. 저도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의 문화에 어울려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했었는데, 문제는 실력이더라구요. 다른 사람의 비위를 다 맞출 필요는 없잖아요? 요즘에는 ‘주 공연 세션하면 늦게까지 술 마시는 뒷풀이도 없고 일찍 들어가서 좋다’ 라고들 하더라구요. 자신의 음악에 소신을 품는 게 중요하죠.”

교회, 학교, 선교단의 트라이앵글밖에 모르던 소녀에서 이제는 보헤미안의 영혼을 지닌 뉴욕의 재즈 음
악가로. 그녀의 삶에 흐르는 것은 그분의 인도하심이었다고 고백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고 겸손하게 느껴진다. 현재 뉴욕에서 일본 연주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한국의 후배 뮤지션들이 훗날 여기서 활동할 수 있도록 개척자 역할을 열심히 하겠다”는 그녀의 당찬 고백이 참 멋지다.

재즈피아니스트 송영주가 말하는 재즈 입문 3대 추천 음반

1.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
   여대생 시절, 숙대 앞 레코드점에서 운명처럼 만났던 음반. 대중적이면서도 정통 재즈를 맛볼 수 있는 
'We Get      
   Request' : 당신도 재즈 피아노와 친해질 수 있습니다.

2. 레드 갈란드(Red Garland)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담 없는 경쾌하고 간결한 리듬

3.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재즈를 처음 듣던 그때, 트럼펫 소리가 왜 좋은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하지만 어느 순간 좋다, 너무 좋다. 
   이것이 재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