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의 유령에 쫓겨 발목이 자꾸 끊어지는 / 잊을 만하면 덜컥 나타나는 악몽이 지겨워요 (중략) 나무들에 대한 진부한 속죄는 말고/ 바다풀 냄새 가득한 공장에서 일하고 싶어요 / 내가 만든 종이로 바다풀 시집을 엮고 싶어요 / 시집 자서(自序)엔 딱 두 줄 만 쓸 거예요 // 나무들의 피냄새가 가시지 않아 아주 지겨운 날들이었어. / 나는 그만 손 씻을래. -김선우, <바다풀 시집> 중에서 

‘나무들의 피냄새’ 라는 시어가 섬뜩하니 눈에 띕니다. 
종이컵 안 쓰기, 휴지 대신 손수건 사용하기, 재생종이쓰기 등. 나무와 숲을 보존하기 위한 다짐이 많이 있지만, 실천은 늘 어려웠죠. 그런데 이 시를 읽고 나니, 나무를 위해 새 다짐을 해 봅니다. 우리가 무심코 쓰고 버리는 영수증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는 생각, 해보셨나요? 익숙함과 결별 선언, 필요해요 이제.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화장품 가게에 들렀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고작 이천오백 원 하는 물건 하나 샀을 뿐인데, 종이 영수증은 한 뼘 길이나 됩니다. 게다가 이 영수증은 타사와 차별화 전략으로 표면을 연한 갈색으로 코팅까지 해놓았습니다. 친환경 제품이라는 홍보문구와 함께 영수증 상단에 그린 잎이 풍성한 나무 한 그루가 어쩐지 가엾어 보입니다. 습관대로 이 영수증을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러나 곧 쓰레기통에 버리겠지요. 조금 과장하여 말한다면, 습관적으로 나무를 베어내고 있는 셈이죠. 

오로지 버려지기 위하여
자본주의의 꽃은 ‘소비’라고 
합니다. 그 소비의 부스러기들이 바로‘ 영수증’이지요. 하루에 몇 장의 영수증을 받으시나요?신용카드 사용이 증가한 만큼 지갑이나 주머니 속에 영수증도 쌓여 갑니다. 대부분 사람은 이 영수증을 그 자리에서 버리거나, 교환이나 환불을 위해 며칠 간 모아두었다가 버립니다. 그런데 이 영수증이 불필요하게 길어지고 있습니다. 정작 구매한 품목은 한두 개인데요, 영수증 길이는 20cm가 넘습니다. 사업자, 주소 등 필수적인 내용 외에도 영수증의 한 부분은 광고 문구, 할인 정보, 행사 안내가 차지하고 있어요. 쿠폰 번호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소비자가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게 해서 또 다른 소비로 이어지게끔 유도하는 것이죠. ‘영수증을 보면 행운이 쏟아진다’는 매혹적인 문구를 싣고 있습니다만 소비자로선 불필요한 내용이 너무 많은 까닭에 일일이 챙겨보지 않지요. 과연 누구를 위해 길어진 영수증일까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환경문제입니다. 국내에서 발급된 영수증을 쭉 이어 붙이면 길이가 2,501,812km로 지구둘레를 62.6바퀴 감쌀 길이라고 해요. 어느 문인文人은 한 권의 책을 낼 때, 자신이 쓴 글이 과연 나무를 베어낼 만한 가치가 있는지 고민한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 우리는 너무 쉽게 나무의 생명을 앗아가는 건 아닐까요? 그뿐이 아니에요. 경제적으로도 큰 낭비이지요. 영수증 종이의 대부분을 수입(import)에 의존하고 있어서 2011년 국내 전체 카드사 매출표 관련 비용은 약 2,700억 원에 다다른다고 합니다. 유통업체 입장에서도 비용의 부담이 크고, 소비자에게도 지출 중 일부분은 영수증을 버리기 위한 비용이 되겠네요.

영수증 미출력, 나도 좀 스마트해져 볼까?
굳이 지구
온난화 문제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불필요하게 버리는 영수증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페이퍼리스’란 종이 사용을 줄여 환경과 생태계를 보호하자는 개념입니다. 지난해 5월 B 카드사에서는 ‘페이퍼리스’를 도입하여 신용카드 영수증 미출력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편의점이나 프랜차이즈 카페같이 소액 결제가 중심이 되는 일부에서만 동참하고 있지만요. 간단하게 스마트폰 어플을 이용하여 영수증을 발급하는 전자 영수증 제도도 시작되었지요. 우리나라 스마트폰 사용자 삼천만 명이라고 하는데, 올해는 이런 제도가 정착될 수 있을까요?
“영수증은 안 주셔도 돼요.” 계산할 때 한마디만 하세요. 영수증 미출력 제도와 전자 영수증 발급 제도는 스마트해지고 싶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입니다. 지구를 위해 나무 한 그루 심지는 못했더라도, 무참히 베어내는 습관은 이제 그만 해야겠지요. 글 박윤지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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