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인 1941년, 처칠(Winston Churchill)은 캐나다 의회를 방문해 영국의 단호한 결의를 천명하고 연합국의 단결을 촉구하는 연설을 하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카쉬(Yousuf Karsh)라는 캐나다 사진가는 처칠을 찍으려고 대기실 한편에서 초조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죠.
드디어 연설을 마치고 나오는 처칠에게 다가간 카쉬는, “그럼 바쁘니 한 번에 잘 찍으라”는 승낙을 받았습니다. 황급히 셔터를 누르려고 카메라 곁에 섰지만, 아까부터 처칠이 악착같이 물고 있던 시가가 눈에 거슬렸는지, “용서하십시오. 수상 각하!” 라는 한마디로 수상의 입에서 잡아채듯 시가를 뺏은 카쉬는 다시 뚜벅뚜벅 카메라로 돌아갔고,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하던 처칠의 표정은 1945년 5월 LIFE지 커버로 사용됩니다. 

이것으로 ‘인물사진의 거장’ 소리를 듣게 된 카쉬는 1954년 첼리스 카잘스(Pablo Casals)를 찾아가지요. 사람이 온 줄도 모르고 평소처럼 바흐를 연습하던 카잘스의 뒷모습이 어찌나 경이롭던지, 카쉬는 촬영을 이유로 인기척하려 들지 않았어요.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의뢰인의 뒷모습을 
초상으로 찍은 적이 없다. 하지만 이번만은 그게 맞는 것 같다.” - 카쉬


“…그것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무반주 첼
로 모음곡>이었다… 나는 마치 왕관에 달린 보석들처럼 그 악보를 품고서 돌아와 방에 처박혔다…그 때 내 나이 열세 살이었지만 그 후 80년 동안 그것을 처음 대했을 때의 놀라움은 항상 생생하게 마음에 남아 있다. 나는 말로써는 다 할 수 없는 흥분을 느끼며 이 곡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12년간 매일 밤 그 곡을 연구하고 연습했지만 그 중 한 곡이라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결국 스물다섯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연주해도 되겠다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나의기쁨과 슬픔, 파블로 카잘스> 중에서 


열세 살 어린 나이에 잡은 곡을 예순에 이
르러서야 레코딩을 하였다니, 카잘스! 사람이 아니므니다.





이제 드디어 오늘 이야기할 ‘음악의 아버
지’ 바흐에게 돌아 왔군요.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영문 곡명은 ‘The 6 Unaccompanied Cello Suites’ 또는 ‘The 6 Suites for Cello Solo’ 입니다. 여기 “ 무반주(Unaccompanied)”라는 말이 “(흔히 우리가 야외에 놀러 갔을 때) 악기 준비가 여의치 않아서 반주 없이 혼자 노래만 한다”는 그런 의미는 아니겠지요. 바이올린, 첼로 같은 솔로 악기는, 반주 없이는 연주가 불가능하다는 통념을 바흐는 깨고자 했던 것 같아요. 바흐는 줄이 달랑 넷뿐인 첼로에게 멜로디를 연주하면서 화음까지 담당하도록 아주 치밀한 임무를 준 것이지요. 누구든지 곱씹어 듣다보면, Solo 연주를 듣는데 마치 Duo, Trio를 듣는 듯한 메아리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바로크 음악의 구성 형식 때문이기도 하겠
지만, 바흐는 ‘6’이라는 숫자를 좋아한 것 같아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프랑스 모음곡 등 많은 곡을 6곡으로 완성했습니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도 그렇구요. 1번부터 6번까지 6악장씩 36곡! 연주 시간도 2시간을 훨씬 넘어서죠. 이쯤 되니, 우리 귀에 착착 감겨오는 3분 내외의 대중가요와는 좀 다른 접근이 필요하겠지요. 비르투오소가 47년간을 매일 같이 수련한 음악, 바흐가 어찌 그리 한술 밥처럼 가뿐히 먹히겠어요? 좋은 책 한 권 펼쳐 천천히 음미한다 여기면 어떨까요? 1악장부터 6악장까지가 한 묶음(Suite)이니, 한 묶음씩은 듣고, 쉬었다가, 또 다음 묶음을 듣는 식으로 반복한다면, 바흐는 분명히 그 인내 이상의 기쁨을 댓가로 줄 것입니다. 

카잘스의 뒷모습 사진을 보스톤의 한 뮤지
움에 전시했을 때, 매일 같이 찾아와 그 사진 앞에서 오래도록 서 있는 어떤 노신사가 있었답니다. 이를 궁금하게 여긴 큐레이터가 하루는 용기를 내어 그 이유를 물었을 때, 노신사는 이렇게 대답했대요.

“쉿! 젊은이, 내가 지금 음악을 듣고 있는 게 
안 보이나?”

처칠, 카쉬, 카잘스의 만남이 운명적이었기
에 오늘 우리가 바흐를 만나는 것도 전설로 남을지 모를 일입니다.

황소연| 직장에선 황이사, 교회에선 황집사, 사진계에선 황작가, 페이스북에선 소여니아으로 불리며 나이 마흔 중반에 아직도 정체성이 혼란한 남자! 하지만 예술과 신앙으로 온전한 형체를 잡아가는 남자! 아담의 본향이며 성서의 대명사로서 ‘에덴’ 을 주제로 fine-art 사진 작업을 해오고 있으며 3 회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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