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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3 03-04 사 · 랑 · 영 · 화 · 제

사 · 랑 · 영 · 화 · 제 1|영화, 사랑을 말하다

영화감독, 영화를 말하다
샤르트르는 ‘남의 눈을 의식하는 순간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단순히, 세상은 우리에게 그리 관심두지 않으니 남의 눈을 의식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그 지옥을 벗어날 수 없음을 수용하고 틀에 갇힌 사고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내 눈이든 타인의 눈이든 ‘눈’은 어차피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중 누구든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타인의 눈을 빌려오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진정 자유로운 사람일까요. 우리는 늘 진짜와 가짜 사이에서 혼란스럽습니다. 진짜는 무수한 또 다른 진짜를 복사하고 증거합니다. 저는 어떤 특별하고 특이한 경향을 좇지 않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아는 것, 안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경계하라는 말일 것입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무거운 침묵과 긴장감이 몰려오며 사위가 어두워집니다. 몸이 말랑해지고 꽉 조였던 신경은 느슨하게 풀립니다. 그러곤 깊은 바다에 가라앉듯 꿈에 빠져 듭니다. 세상에 이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우며 달콤한 순간이 있을까요.

영화는 사물의 시인입니다. 영화란 추상을 명확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예술이기도 합니다. 영화 안에는 인생은 물론 삶의 철학도 숨겨져 있습니다. 영화는 사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뒤에 감춰진 이면과 진실을 드러내고 추구하는 것입니다. 영화는 자신과 하는 솔직한 대화입니다. 저는 영화를 통해 세상의 많은 어려움과 좌절을 극복하고 그들과 함께 든든한 동행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입니 다. 하지만 갈수록 영화를 만드는 환경은 나빠지고 있습니다. 영화가 예술로서만 존재하지는 않더라도 지금의 영화 산업은 한쪽으로 너무 치우쳐있습니다. ‘영화’, 그것은 진심과 가슴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다다이스트 트리스탕 차라는 ‘사랑은 별처럼 빛나는 미친 욕망’이라고 말했습니다. 넘치는 물질의 풍요 속에서도 빈곤해지는 영혼의 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말입니다. 무수한 유혹과 욕망이라는 그물망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끊임없이 욕 망하는 사회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자화상입니다. 사랑을 거부하며 흘러 온 현대는 불행한 시대입니다. 사랑에 대한 정의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욕망이라는 거대한 불빛에 몰려드는 불나방이 되어 죽음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를 시작합니다
수많은 영화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만의 관점을 드러내는 영화제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시작부터 영원했으면 좋겠습니다. 기술이 아닌 가슴으로, 사랑으로 만나는 영화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강자가 아닌 약자를 응원하면 더 좋겠습니다.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원하는 곳을 택했으면 좋겠습니다. 꿈을 심어준 사람들은 떠났지만 뿌려진 씨앗은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없었더라면 지금 이 자리는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으로, 사랑의 힘으로 영원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제 마음에 단비를 내려주고 위안을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사랑 영화제’는 여러분들이 원하는 곳, 여러분이 걷는 길에 묵묵히 함께 동행할 것입니다. 숨겨져 있던 자신의 표정에 눈과 마음을 열어 보시길 권합니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내면에 더욱 더 집중하면 그동안 침묵해 온 소리는 씨앗으로 잉태되어 세상의 숲에 향기가 될 것입니다. 

영화는 불협하는 자신과의 소통을 꿈꾸는 잠재욕구이기도 합니다. 바로 지금 이 사랑의 시작이 세상의 치유와 생성의 씨앗이 되고 희망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조용한 당신, 외로운 당신, 우리가 찾아가겠습니다.

약해지지 마.



민병훈|타지키스탄에서 <벌이 날다(1998)> 를 데뷔작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서 <괜찮아 울지마(2001)>, <포도나무를 베어라(2006)> 그리고 최근엔 <터치(2012)>를 연출한 영화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