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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다/비뚤어질 테다

먹었으니 책임지라고요?

인간과 불가분 관계인 음식은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음식은 모든 인간에게 생명유지를 위한 필수조건입니다. 잘 차려진 식탁 위 음식은 오감을 자극하는 예술입니다. 여럿이 함께 나눌 때 음식은 정서적으로 쉼과 안정을 주고, 사람 사이에 친밀감이나 유대감을 형성해주기도 하지요.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해 보면 음식은 각 사회가 지닌 문화의 거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토록 다양한 의미가 있는 음식이 최근에는 ‘버려지는 음식물’ 때문에 골치를 썩이고 있습니다. 수저가 한 번 훑고 지나가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쓰레기’ 가 되니까요.

아마존 부족은 지금도 음식을 구하기 위해 사냥과 채집을 합니다. 적게 원하고 크게 만족하며 먹고 사는 그들의 삶에는 음식물 ‘쓰레기’의 개념은 없습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전체 음식물의 약 1/7을 버리며 이 양을 돈으로 환산하면 연간 약 18조 원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환경문제를 없애고 음식물 쓰레기 발생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는 쓰레기 배출량에 따라 수수료를 부과하는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종량제를 시행하면 음식물 쓰레기가 평균 15.7%, 전국적으로 쓰레기 처리비용은 연간 2조 5천억 원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하네요. 환경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이로운 일이겠죠?

비용 인상할 수 없소! vs 거두어 가지 않겠소!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가 등장한 것은 1993년 런던협약으로 올해부터 음폐수(음식물 쓰레기에서 나오는 폐수)의 해양 투기가 금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사이 서울시 지자체는 음식물 쓰레기를 정화하는 시설을 확충해야 했지만, 재정적 문제나 님비NIMBY현상 같은 주민의 반대로 공공시설을 늘리지 못했고,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민간업체에 위탁해 왔습니다. 현재 전국의 음식물 쓰레기 처리 시설은 공공시설 94곳, 민간업체는 147곳이며, 민간업체가 하루 평균 처리량(1,194t)은 공공시설이 처리하는 양(655t)의 두 배 정도 되니, 민간시설에 의존하는 비중이 큰 것이죠.
음폐수의 해양 배출은 4만~4만 5천 원의 비용(1t 기준)이 드는 데에 비해 육상 처리는 7만 원 정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민간시설에서는 올해부터 기존에 8~9만 원의 처리비용을 14만 5천~15만 원으로 인상해줄 것을 지자체에 요구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공공시설은 민간시설보다 두세 배에 이르는 처리 비용을 받고도 엉터리로 운영하고 있으니, 민간시설의 입장에선 불합리하다는 주장이고요. 하지만 비용 증가를 예상하자 지자체는 한 해 몇십억 원에 상당하는 비용을 더 줄 수 없다며 완고한 입장이에요. 게다가 서울시와 정부는 정책은 세웠지만, 처리 문제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자치’적으로 해결하라며 나 몰라라 하고 있죠. 그래서 서울시 어느 구에서는 민간업체가 1월 한 달간 음식물 쓰레기를 절반만 거둬가는 바람에 음식물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사태도 있었습니다. 결국, 집단의 이익이 충돌하는 사이, 주민은 더러워진 동네를 걸어 다니며 악취를 견디고 더많은 돈을 내야 하는 불편을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어요. 

아무 데나 버릴래!
물론 주민 중에도 쓰레기 종량제에 
대한 거부 반응이 두드러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수료가 인상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제는 쓰레기 무단투기입니다. 이웃사촌이 절대 아닌 동네 주민이 공터나 개천이나 남의 집 담벼락 밑에 비양심적으로 투척한 음식물 쓰레기는 방사능이나 핵폭탄보다도 피부로 느껴지는 위협감이 큰 법이지요. 그렇게 누군가가 버린 것들을 처리하고 무단투기를 단속하는 데 드는 비용도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쓰레기 처리 비용을 아끼려고 소량의 음식물 쓰레기를 화장실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을 때 예상되는 부차적 문제들도 생길 테고요. 

최근 <인간의 조건>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여섯 명의 
개그맨이 음식물과 생활 쓰레기를 줄이려 애쓰는 모습을 보여 주듯, 쓰레기를 줄이려는 노력은 지구 위에 발을 붙인 ‘인간’의 ‘조건’일 것입니다. 시민이 이렇게 아등바등 노력하고 있으니, 정부와 지자체는 우왕좌왕 그만해야겠죠? 글 박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