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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햇빛 아래 노니는 삶

농부, 삶을 살아가다 | 땅을 일구며 생을 노래하는 농부 02


얼마­ 전 ­아이들 ­학교 ­교장 ­선생님에게서 ­문자가 ­도착하였습니다. ­아들 ­최진 ­군이 ­보성군 ­6학년 ­영재교육 ­시험에서 ­종합 ­1등으로 ­합격하였다는 ­축하의 ­전갈이었습니다. ­저는 ­매서운 ­칼바람을 ­대하며 ­군불을 ­때고 ­있었는데 ­아들이 ­신나서 ­들고 ­온 문자를 ­보고 ­마음이­ 뜨끈해­지는 ­것이 ­적잖이 ­위로되는 ­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그 ­포만감의 ­근거가 ­그간 ­나름의 ­흥미를 ­따른 ­독서 ­및 ­신앙­ 교육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아이의 ­내면에 ­자라난 ­합리적 ­사고의 ­양성을 ­확인한­ 데서 ­오는 ­것만 ­아니요, ­오히려 ­기껏­ 3~400명의­ 동년배를 ­제치고­ 1등 ­합격이라는 ­승자가 ­된 ­데서 ­오는 ­희열임을 ­알고는 ­스스로 ­놀라 ­소스라치고 ­말았습니다.­

땅을 일구는 농부가 대하는 삶의 자리
애초 시골로 내려 올 때 농사를 중심으로 노작교육을 하고 아이의 흥미를 따라 자유롭게 가정교육만으로 자녀를 양육하려는 생각이 컸습니다. 그러나 초보 농부에게 농사일이란 자신의 한계와 대면하여 끊임없는 자기 부정을 요하는 수련처럼 큰 짐이었으며, 팍팍한 가족의 경제를 꾸리는 수단으로 삼는 농사일은 아직 아이들과 함께 기쁨으로 감당하기는 어려운 숙제와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다행히도 소수의 아이들이 가족처럼 다니는 작은 학교가 있어 기쁜 마음으로 한식구를 이루었습니다.
우리 아이들 셋이 다니고 있는 낙성초등학교는 전교생이 30여 명인 작은 학교여서 서로 너무나 잘 압니다. 심지어 부모도 눈감고 내 아이 친구들 이름을 줄줄이 부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 이유로 굳이 ‘공부’라고 하는 무례하고 불공정한 잣 대로 서로 우열을 가리며 쓸데없이 줄을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학교 공부를 잘한다고 인정받는 진이, 세희, 민석이, 상빈 이도 참 대견합니다. 하지만 사철가, 흥부가, 춘향가를 이어서 사십여 분 가량 할 수 있는 하영이, 은서, 해주의 소리를 듣 고 있다 보면 어느새 옛 선인들의 해학과 지혜의 세계에 서 있는 듯합니다. 아이들 덕분에 한껏 흥이 오른 어른들은 그 아 이들을 사랑하고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또 외발자전거를 제자리에서 앞뒤로 왔다 갔다 잘하는 규상이와, 외발자전거를 탄 채로 제자리에서 통통 튀기기를 가장 잘하는 훈이는 친구한테서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전통 악기 연주에 남다른 재주를 보이는 병현이와 농사일을 어른 만큼이나 잘 이해하고 친구에게 다정하게 가르쳐주며 고구마 기르기에 앞장 선 영선이도 크게 인정받고 있습니다. 사실 학교 아이 중에는 부모의 이혼으로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할머니에게 맡겨져 마음속 깊은 상처를 지닌 친구, 이른바 ‘다문화’ 가정의 자녀로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큰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여 친구 관계에 자신감을 상실한 친구도 있지만, 이렇듯 서로의 인격이 맞닿는 작은 학교의 아이들은 저마다 고유한 재능과 인격을 있는 그대로 존중받으며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학부모로서 시골살이의 큰 위안을 삼으며 참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우러납니다.

나이테처럼 조금씩 자라는 아이들
요즈음 장작을 패다 보니 벽에 박힌 나무에 눈길이 많이 갑니다. 나이테는 자신의 과거를 너무도 선명하게 간직하고 있습 니다. 이 나무는 스무 서넛의 시퍼런 나이에 생을 다하고 우리집 벽에 박혀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대목에서 가지를 다섯 이나 뻗었지요. 가지는 자라다가 미처 너른 하늘에 그 뜻을 펼치지 못하고 큰 그림자도 드리우지 못하고 5년여 만에 생을 마감합니다. 제가 보기엔 한날 주인의 손에 의해 잘린 것 같습니다. 아마도 나무 아래쪽 둥치여서 곧게 자라라고, 위로 높 이 자라라고 주인이 손을 댄 것 같네요. 성장통인지 순수 아픔인지 상처인지 모르겠으나 별이 되어 그 마음에 머무르니 고맙습니다. 

이 땅 위의 모든 아이들 마음속 나이테에 아름다운 별들이 머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최혁봉|벌교 산골살이 여덟 번째 겨울을 살아내고 있는 농부. 자연을 맨살로 대하는 농사야말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온전한 인간이 되는 좋은 길이며, 사회적으로도 다시 되돌아가야 할 삶의 형태라 여겨 자연에서 기도와 노동을 실천하고 있다(주로 참다래와 호박고구마등을 농사 지으며 살림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salimfar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