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고 강 건너며 부르던 노래. 흙 밟고 돌 걸어온 거친 길. 한국 음악은 우리가 만들어 온 노래이자 걸어온 길이다. 길 위의 광대들이 발 부르트도록 걸어 도착한 산골 마을 초입부터 ‘문 열어라’ 우렁차게 외치며 복을 빌던 소리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가의 백일을 무사히 넘긴 것에 감사하며 떠들썩한 잔치를 벌였을 때나, 넋이 세상을 떠나면 남은 자들이 슬픔에 어찌할 바를 모를 때, 함께 울어주고 위로하며 기쁨과 슬픔을 나누던 예인들을 기억하는가.
이때의 음악은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의 삶에 묻어있는 사투리와도 같았다. 통곡 대신 구음이 울리고 환성 대신 음악이 판의 질서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갔다. 풍악이 울리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한데 모여 춤과 노래로 하나를 이루어 마음을 감싸 안았다. 예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즉흥적으로 가락을 주고받으며 밤새도록 남아있는 사람들과 호흡을 같이 한다. 주객이 따로 없다. 누구나 더하고 나눌 수 있었던 공동체의 노래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음악이 바로 ‘시나위’이다. 시나위라는 말의 어원은 여러 학설이 있지만, 신라의 사뇌(詞腦), 즉 토속음악이라는 뜻이기도 하며 ‘신을 위한’ 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굿 노래나 춤의 반주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오늘날 연주하는 장소를 마당에서 공연장으로 옮겨 오면서 즉흥 연주 그 자체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다만 함께하는 형태가 좀 더 집중된 연주와 감상의 형식으로 무대와 관객이 구분되었다. 전통 악기의 시나위 합주는 각각의 악기가 장단을 타면서 즉흥으로 연주를 주고받는데 화성으로 어울리는 개념이 아니라 저마다의 가락이 흩어졌다가 만나고 솔로 또는 합주로 교차하는 형태라 가까이서 연주자들의 호흡과 특징을 따라가는 것이 묘미이다. 이러한 시나위 연주에 사람의 목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면 구음 시나위라고 하였는데 이때의 구음은 노래라기보다는 악기의 하나처럼 부르므로 소리꾼에 따라 독특한 음악 색깔을 드러낸다. 
그 중 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린 만정 김소희 명창의 구음 시나위. 이는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연상케 한다. 그 길에는 외롭지만 꿋꿋하게 걸어간 예인들이 있다. 나지막한 징소리가 길을 열어주면 장단이 시작되고 멀리 누군가를 부르는 듯 혹은 떠나보내는 듯 담담하게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가 중후하게 여백을 채워간다. 이는 중성적이며 대담하다. 오히려 많은 장식을 덜어버린 깔끔하고도 단아한 백자의 자태와 같다. 
1993년에 발매된 김소희의 앨범에 수록된 ‘구음 시나위’는 당대 최고 명인들의 연주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장구(김덕수), 거문고(김무길), 아쟁(박종선), 대금(이생강), 가야금(안옥선)의 뛰어난 연주에 담백하면서도 무게 있는 구음의 조합은 수묵화의 짙고 굵은 선처럼 여백을 치며 깊게 울려 퍼진다. 혹 시나위라는 음악을 처음 듣는다면 음악 자체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상상해보라. 이 분의 길은 어떤 길이었을까. 어떤 슬픔을 머금고 이렇게 울 수 있었을까. 그렇게 목소리 자체로 충분한 힘을 믿고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어머니 목소리, 할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조선 땅 굽이치는 강물 따라 흐르다가도 어느새 험한 고개에 걸린 구름이 되어 흐트러진다.
전통음악을 지키려던 예인들이 걸어왔던 길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식민지 시대와 전쟁, 가난을 겪으며 천대받던 소리꾼의 인생. 그 험난하고 외로운 길을 이겨내기 위해 만정 선생은 더욱 온 힘을 다해 우리 음악에 평생을 바쳤다. 판의 문화가 공연 문화로 되어가는 과도기에서 물밀듯 들어오는 서양 예술 틈에서도 오히려 꿋꿋하게 우리 음악으로 국외 진출한 선생의 눈물겨운 노력과 공로를 잊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이 구음은 그간 꾹 울음을 참았다가 마지막으로 터뜨린 선생의 이야기, 우리 역사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고창군 흥덕리 만정 김소희 명창 기념비 뒷면에는 서정주 시인의 글귀가 이렇게 남아있다.

만정 그대의 노랫소리에는 / 고창 흥덕의 옛날 못물에 / 몇 만 년 이어 핀 연꽃이 들어 있도다. / 학같이 훤출하고 거북이처럼 질기던 / 이 겨레의 바른 숨결이 잠겨 있도다.

정송희│전통음악 창작 그룹 앙상블 시나위에서 피아노로 시나위를 연주하고 있으며, 전통음악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작은 날갯짓을 하는 중이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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