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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다/영화 속 현실과 만나다

진정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문라이즈 킹덤>(웨스 앤더슨, 2012)





깨물어주고 싶을만큼 사랑스럽고, 
한 컷 한 컷을 캡처해두고 싶을 만큼 동화처럼 예쁘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유머를 처음 접한다면 낯설고 독특한 화법 때문에 잠시 당황할 테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금세 낄낄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될 것이다. 게다가 빌 머레이, 루스 윌리스, 틸다 스윈튼 등 할리우드의 명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여 연기를 뽐내니 눈 호강도 제대로다. 그러니 어떻게 이 영화를 놓칠 수 있으랴! 

사랑의 도피, 새로운 가족의 탄생

영화는 이 열두 살짜리 소년 소녀가 벌인, 대담한 사랑의 도피 행각으로 시작한다. 고아라는 이유로 카키 스카우트 단원들에게 따돌림당하는 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부모의 무관심과 원만하지 못한 친구 관계 탓에 외톨이로 살아온 수지. 둘은 앙큼하게도 1년 전 교회에서 눈이 맞아 연애편지로 사랑을 키워가더니 급기야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다. 알고 보니 샘은 KBS 1박 2일 뺨치는 비박 실력의 보유자(!). 샘과 수지가 ‘문라이즈 킹덤’이라 이름 지은 자신만의 왕국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수지의 가족과 카키 스카우트는 발칵 뒤집힌다. 한편, 샘의 실종을 알리려 샘의 부모에게 전화를 건 경찰서장 샤프와 카키 스카우트 대장 랜디는 양부모의 설명을 듣고 샘이 사고로 가족을 잃은 고아이며, 위탁가정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 웬걸. 양부모는 골치 아팠는데 잘 되었다는 듯 쿨하게(?) 양육을 포기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나흘 만에 샘과 수지는 싱겁게 붙잡히지만 동료 스카우트 단원들의 도움으로 두 번째 탈출을 감행하고, 그 사이 국가는 행정적 절차에 따라 사회복지사를 파견한다. 샤프 소장과 랜디 대장은 샘의 처지는 아랑곳없이 그저 고아원으로 보내려고만 하는 사회복지사에 맞서 싸운다. 우여곡절 끝에 교회 첨탑 위에서 막다른 코너에 몰린 샘과 수지. 샤프 소장은 샘에게 아빠가 되어주겠다며 손을 내민다. 그렇게 수지는 가정으로, 샘은 새로운 가정으로 돌아가면서 영화는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만약 영화적 배경이 한국이었다면?
그런데 영화가 끝난 뒤 문득 떠오른 생각. 만약 샘이 한국인이었다면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었을까? 영화 속 샘은 세 가족을 만난다. 친부모, 사고로 친부모를 잃은 뒤 만난 양부모, 마지막으로 양부모에게서 버려진 뒤 만난 샤프 소장. 영화의 배경이 한국이었다면 입양에 부정적인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해 어두운 뒷골목에서 칼날이 번뜩이는 ‘느와르’가 되지 않았을까? 이런 엉뚱한 가정이 떠오른 것은 2011년 8월부터 시행된 입양특례법 때문이다. ‘입양 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이라는 긴 정식 명칭의 이 법은 아동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었지만 아동복지단체의 재개정 촉구가 잇따르며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입양특례법, 제대로 알자
현행 입양특례법은 국내외 입양 모두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친생부모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출생신고를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또한, 출생 일주일 후에 입양 신청이 가능한 ‘입양숙려제’도 생겼다. 아동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만들어진 이 법안을, 오히려 아동복지 관련 단체에서 더 적극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개정을 촉구하는 편의 견해는 까다로워진 입양 절차와 요건 때문에 입양이 눈에 띄게 줄고, 영아유기는 더 늘어났다고 이야기한다. 입양을 보내려 하는 아이가 혼외 관계에서 얻은 자녀이거나 입양을 희망하는 부모 중 대다수가 미혼 청소년이고 친부를 알기 어려운 상황에서, 입양 절차가 복잡해지자 많은 이들이 영아유기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최대 입양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의 발표로는 입양특례법 시행 전인 2012년 8월 이전까지 홀트아동복지회에 온 아이는 월평균 66명이었으나 8월 이후에는 월평균 34명으로 크게 줄었으며, 입양 의뢰도 월 평균 57명에서 절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버리는 갓난 아기를 안전하게 거두기 위해 설치한 ‘주사랑공동체’의 ‘베이비 박스(Baby box)’에는 입양특례법 시행 이후로 2배 이상의 아이들이 들어온다고 한다. 상황의 심각성 때문에 주사랑공동체의 이종락 대표는 최근 입양 아동복리 및 인권을 위한 단체와 교회 등 5백여 곳과 함께 ‘입양특례법 재개정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설립하고 개정을 촉구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입양 아동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법이라는 것이다. 반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지난 2013년 2월 14일 ‘영아 유기 문제를 입양특례법의 탓으로 돌리는 일부 언론의 왜곡 보도를 즉각 중단하라’는 논평을 냈다. 입양 절차를 완료하면 아이와 친모의 가족관계증명서에 모자 관계 기록이 삭제되며 별도로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가 생성되어 공적으로 관리하는데, 열람이나 증명서 발급을 엄격하게 제한하기 때문에 개정된 입양특례법으로 친생부모나 양부모의 정보가 무차별적으로 노출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불법적인 입양을 방지할 수 있고 입양 아동의 권리를 보호하며 국제적 기준으로 개선된 법안임에도, 미흡한 정보 제공과 언론의 호도로 과도기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민변의 입장이다.



진정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
대조되는 두 입장이지만 입양 아동을 보호하려는 근본적인 취지는 같다. 무엇보다 입양과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 제도의 확충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뜻을 같이하고 있다. 오랫동안 대한민국은 ‘아동수출국’이란 오명이 따라붙었다. 영아유기, 불임 가정과 미혼모 간의 불법적인 입양 거래 등 음성적 문제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혈연 중심적 문화가 공개 입양을 가로막고, ‘싱글맘’이라는 신조어가 생기면서 좀 더 친근해졌지만 미혼모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또한 여전하기 때문이다. 아동 수출국이라는 오명이 부끄러운가? 그러나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안 그래도 힘들고 어려운 입양 아동과 미혼모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지 못한 우리 자신이 아닐까? 샘과 수지가 어른들의 무관심에서 달빛이 어른거리는 낭만적인 왕국 ‘문라이즈 킹덤’을 만들어냈듯 우리가 따갑게 바라보는 이들도 어딘가에서 그들만의 ‘문라이즈 킹덤’을 만들어가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글 최새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