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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다/어른이 된다는 것

젖과 꿀이 흐르는 전셋집

어른이 되면 넓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덩치가 나와 비슷한 강아지를 세 마리쯤 키우면서 살고 싶었어요. 한 번쯤은 생각해 보는 일들 있죠, 왜. 큰 나무가 있는 마당에서 공을 던지면 강아지집은 참 신기해요. 모든 사람이 집에서 살고 있지만, 의식주 중에서 가장 늦게 필요성을 느껴요. 그럴 수밖에 없죠. 독립하기 전에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게 일반적이니까요. 그야말로 본격적인 어른들의 고민거리랄까요. 아빠가 옷 사주고 엄마가 밥해주는 건 당연한 것 같지만, 부모님께서 집을 사 주시는 건… 왠지 피부에 와 닿게 감사해져 버리니까요. 어쩌면 고질적인 속물근성일지도 모르겠네요.

집 없으면 고생이라고요?
저는 최근 들어 어른의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2년간 열심히 만나 온 오빠를 부모님께 보여 드리고 난 직후였지요. 결혼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무난히 꺼냈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어요. 오빠가 돌아가기 전까지는요. “어때, 어때?” 두근거리는 맘에 찬물을 끼얹은 아빠의 말은 좀처럼 잊히질 않네요. “전셋집 한 칸 얻을 능력도 없는 사람과는 결혼 못 한다!” 우리 집도 오빠네 집도 생활고와 남다른 친분을 유지해 가며 살아온 역사가 깊어요. 그래서 저도 오빠도 자립심 하나는 끝내줬죠. 결혼할 때 양가에서 무언가 해 주기를 바란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뭐든 스스로 해 나가는 삶이 당연했으니까요. 하지만 부모님 당신이 보시기에 금쪽같은 딸내미 고생하는 것만큼은 차마 못 보시겠는 모양입니다. 이해는 가는데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정작 우리 집은 뭐 다르던가요.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오빠와 제게는 어떻게 해서든 목돈을 마련해서 전셋집을 구하리라는 목표가 생겼던 것이지요. 놀랍더군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살 집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는 게 말이지요. 가정을 이룬다는 것, 자기 이름의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의 기반이 이렇게 힘든 일이라는 게 새삼 막막해져요. 오빠는 눈에 띄게 예민해졌어요. 싸우기도 더 많이 싸우는 요즘이에요. 결혼은 현실이라는, 이해하기 싫은 말이 자꾸만 이해‘되고’ 말아요.

머리 둘 곳 없는 자의 슬픔
서울에서 멀리 더 멀리 가 볼 생각도 해봤지만 그래도 직장은 다녀야 하는 거잖아요? 얼마나 어렵게 합격했다고요. 그 덕에 전세자금대출, 보금자리주택 같은 단어에 혈안이 되곤 해요. 목이 메네요. 거할 곳이 없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을 그리는 기분이 이러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신혼집이 될 그곳에는 수도만 틀면 젖과 꿀이 콸콸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이에요. 40년의 광야생활과도 같은 대출금 납부가 필요할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보다 오랫동안 내 집이 생기지 않을지도 모르지만요.
일단은 부모님을 잘 설득해봐야겠어요.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며 살고 있으니 전셋집이없어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요. 지금으로서는 턱도 없는 소리지만 조만간에 전셋집을 구할 가능성보다는 높으니까요.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 오늘따라 참 마음이 먹먹한 구절이네요. 강아지는 안 키울게요. 저도 보증금 싼 수도권 인근에 거하게 해 주세요. 네?

주동연| 작심삼일을 겨우 넘긴 네번째 날의 오후, 세상을 움직이기보다는 그저 잘 쓴 글 한줄을 원하는, 오타쿠와 초식남의 경계짓기 어려운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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