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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사람과 사람

한 사람의 자유를 꿈꾸는 학교│청소년자유학교 김윤규 교장


공부, 학교, 교육, 배움, 수업이라는 일련의 단어가 내포하고 있었던 꽤나 낭만적인 스토리는 언제부터 전문학원에서도 대체가능한 기능적 의미로 바뀌었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분리는 오히려 누군가에게는 자신만 누릴 수 있는 차별을 의미했고 누군가에게는 온 힘을 다해도 넘을 수 없는 절망을 의미했다.
그런데 교육이라는 단어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혹시 타자에 대한 배려를 포함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데까지 마음이 간다. 너와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함께 어울리어 우리가 해보려는 획기적인 시도가 교육이 아니었을까. 무엇엔가에 억눌려 있고, 어떤 것에 덮여 있는 속박과 한계를 벗어 던지고 자유를 체험하며 참 빛, 참 생명에 도달하는 과정이 바로 교육이 아닐까. 남쪽 한 켠에 서 있는 청소년자유학교를 찾았다. 글 · 사진 김준영·사진제공 청소년자유학교


마음속 중얼거렸던 기도의 응답이 청소년자유학교라고
청소년자유학교의 원칙은 간단명료하다. “학생 한 명만 있으면 시작한다.” “학생 한 명만 있어도 절대로 문 닫지 않는다.” 이 원칙으로 2001년 개교해 12년이 흐른 지금까지 한결같이 학교를 운영한다. 입학 대상 학생도 정확하다. 공교육 부적응자다. 더 쉽게 이야기하면 이 사회가 10대 문제아라고 낙인을 찍은 학생들이다. 제도권 교육과정보다 더 나은 교육을 위해 세운 여타 대안학교와는 설립 취지가 조금 다르다. 순전히 정규교육 밑의 아이들에게만 관심을 두어 청소년들이 원하는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장을 취득하게 돕는 학교다. 게다가 자유학교는 야학이다. 이쯤이면 이들이 추구하고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다. 그들의 관심과 학교의 원칙은 이 사회에서 아무도 돌보지 않는 학생이다. 그 누구도 책임지고 사회적 비용을 들이길 포기한, 이 사회에 무수히 방치되어 있는 학생이었던 아이들이다. “여기 오시는 길가에 몇 종의 꽃이 피어 있었는지 혹시 아시나요? 관심을 두는 사람에겐 그게 보이거든요. 1995년 포항에 선 한동대학교 창립 멤버로서 대학의 틀을 잡기 위해 회의 중독론자처럼 5년을 정신 없이 보냈어요. 그리고는 조금 여유가 생길 즈음 포항 시내를 걷는데 이상하게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구요.” 
그는 23살 나이에 야학교 교사로서 교무과장직을 겸했다. 하나님을 모르던 그는 그 시절 나도 이런 일을 나중에 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저 멀리 존재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대학교 다닐 때 야학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 시간에 마음속 중얼거렸던 기도의 응답이 청소년자유학교라고 할 수 있어요. 사실 그 때 저는 교회에 다니지 않았었는데, 예배 인도를 했습니다. 교무과장이 해야 하는 일이었죠. 하나님은 참 신기하고 유쾌하세요. 교회의 ‘ㄱ’ 도 모르는 제 기도를 들으시고 현실로 만들어 주셨거든요. 그거 아세요? 하나님은 예수 믿는 사람들만의 하나님이 아니에요. 온 우주의 하나님이시죠.” 하나님은 그에게 그랬다.




예수님은 그 아이에게 손대고 싶어하지 않으실까요?
2000년에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에 대한 뜻을 품은 몇몇 분과 정기적으로 1년을 만났다. 6개월 정도가 지나자 학교를 세우자는 데로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다. 2001년도에 들어서자 학생 4명, 선생님 45명으로 학교를 시작했다. 십년이 넘은 지금 학생은 스무 명 남짓이고, 교사는 70여 명이다. “저는 참 행복한 교장입니다. 양질의 야학교사들을 거의 무상으로 지원 받기 때문이죠. 모든 교사가 한동대 학생인데 여기 교사가 되기 위해 경쟁률도 무척 세죠(웃음). 선생님들이 정말 열심히 가르칩니다. 신기하게 곰 같은 학생들이 그 선생님들로 인해서 변하기 시작해요. 누군가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고 자신의 바른 행동으로 누군가가 기뻐한다는 것을 경험하는 순간 한 인생이 폭풍처럼 변합니다.” 그렇게 2001년 첫 해부터 검정고시 합격자가 나기 시작해서 지금은 전국 검정고시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기까지 하니 신이 날 수 밖에 없겠다. “자신의 환경을 보며 막 사는 아이들 보면 속상하고 약이 올라요. 2년 동안 자기 방에서 나오질 않고 게임만 하던 아이를 5번이나 업어서 학교에 데려 온적도 있어요. 두부 같더라구요.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은 그 아이에게 손대고 싶어하지 않으실까요? 예수님은 그 아이에게 마음을 두지 않을까요? 마음 아파하지 않으실까요? 저는 그것만 하고 싶어요. 그러면 하나님이 최선으로 사용하십니다. A급 인생이 아닌 저를 말이죠.”
현대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한문을 가르치며 교회에서 장로인 그는 스스로 대단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있던 그 세 가지를 교집합으로 만드니 자신이 유일한 상태에 다다를 수 있다고 했다. 최고이거나 날카로운 무기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하나님이 자신을 유용하게 사용하신다며 웃었다.


기독교인에게 제가 바라는 점이 있어요
요즘 그는 지금껏 자신이 연구한 학문적 성과를 소통의 도구로 구체화하고 있다. 유교적 전통의 집안에서 자란 그는 후에 기독교인으로 신앙고백을 한 후 둘 사이의 소통과 충돌을 꾸준히 연구했다. “기독교인에게 제가 바라는 점이 있어요. 유교는 사상적, 철학적 기반이 기독교와 매우 유사하다 할 수 있어요. 연구하면 할수록 충돌 일으킬 것이 없다는 겁니다. 유교는 인간 본성의 밝음과 선함을 공부라는 과정을 통해 닦고 깨우쳐 참 인간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죠. 기독교는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의 성품을 덮고 있는 죄를 벗어나기 위해 하나님과 지속적인 관계맺음과 나아감으로 결국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해야 한다고 한단 말입니다. 어때요? 비슷하죠?” 그는 그러면서 선교 초기에 당대 성리학자의 대가였던 정약용, 이승훈 등이 신앙을 고백한 것이 우연이 아니라 했다. 충돌이 아닌 조화와 소통을 통해 다가가야 한다는 점을 깊은 연구의 결과로 알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연구와 실제 활동에 간극이 큰 학자도 아니었고, 삶의 분명한 동기를 학문에서 공급받고 있는 대담한 실천가였다. 자유학교는 자신의 꿈을 이루어 가는 것이며 동시에 학문적 연구의 실제 모델이라 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 참 공부를 하게 함으로 소중한 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 안으로 참여하게 하는 실제 예다. 그러니 그는 즐겁다. 행복하다. 그리고 젊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한동대 학생 중에 제게 영향을 받는 아이들이 꽤 있어요. 영감탱이처럼 보이고 가진 것도 없이, 가난해도 뭔가 남다른 짓을 하니까요(웃음).”
그의 남다른 그 짓이 한 사람을 살리고, 참 사람으로 살게 하고, 자유하게 하는 일이라고 하니 미안하지만 계속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기쁘게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