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PECIAL/2013 05-06 이 부부가 사는 법

이 부부가 사는 법 2│복태와 한군의 ‘은혜 갚을 결혼식’



2011년 9월 6일, 소셜펀딩 사이트 텀블벅(tumblbug)에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떴다. 이름 하여 ‘복태와 한군의 은혜 갚을 결혼식’! ‘더불어’ 결혼의 새로운 장을 마련해보고 싶었다는 그들은 결혼식을 예술성 프로젝트로 전환하며 돈 때문에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3포 세대에게 도전을 주었다. 말이야 화려하지만 정작 결혼식을 준비한 그들의 속내는 어땠을까? 궁금증을 안고 프로젝트의 주인공, 올해로 결혼 3년 차 부부인 복태와 한군을 만났다. 글 최새롬 · 사진 송건용 · 사진제공 복태와 한군


꿈같은 첫 만남, 운명의 상대를 만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뮤지션의 꿈을 품고 남원에서 서울로 상경한 한군(한겨레, 당시 21세)과 이제 막 홍대에서 인디뮤지션으로서 자리를 잡아가던 복태(박선영, 당시 29세)는 한 친구의 생일 파티에 각자 축하 공연을 하러 갔다가 만나 연을 맺었다. 생일 파티에서 한군이 부른 ‘Across The Universe’는 당시 누구와도 소통하고 싶지 않을 만큼 암울하고 외로웠던 복태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괜찮아. 울어도 돼. 위로해 주는 기분이었어요.”(복태) 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한군은 운명의 이끌림에 발길을 돌려 생일파티 장소로 되돌아갔고, 이때다 싶었던 복태는 한군에게 먼저 다가가 듀엣 결성을 제의했다. “이 기타여야만 할 것 같았어요. 이 기타여야만 내 음악과 어울릴 것 같은 느낌.”(복태) 그 다음 날부터 둘은 ‘복태’란 이름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연습을 핑계로 둘은 밤새 대화를 나눴고, 평소 소비를 줄여 자연 친화적인 삶을 지향하던 복태는 자신보다 한술 더 뜨지만, 너무 이상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은 한군에게 반했다. 낯설고 차가운 서울 생활에 외로워하던, 자칭 ‘선악과를 먹기 전의 아담’ 같았다는 한군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온도와 코드’가 맞는 복태에게 서서히 물들어갔다. 곧 그들은 사랑에 빠졌고, 귀촌을 준비하던 중 ‘신의 선물’인 딸 지음이가 생겼다. 그들은 결혼을 결심했다.





복태와 한군, 지혜를 발휘하다
각오는 했지만 과정은 험난했다. 8살이라는 나이 차이, 대학도 군대도 가지 않은 한군의 상황, 결정적으로 종교의 차이가 그들을 가로막았다. 복태의 부모님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고, 한군의 아버지는 개신교 목사님이었기 때문.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결혼 승낙을 받아냈지만, 곧 결혼식을 성당에서 할 것이냐 교회에서 할 것이냐를 놓고 각 집안 어른들의 팽팽한 기 싸움이 벌어졌다. 복태와 한군은 제3의 공간, 식장을 무료로 빌려주는 성북구청을 선택했다. 예식은 두 집안의 종교를 통합해 1부는 개신교식, 2부는 천주교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장소가 작았지만 공연을 꼭 하고 싶었던 그들은, 어른들은 1, 2부 예식에, 친구들은 3부 피로연 및 공연에 초대하기로 했다.
평소 가치관에 따라 최대한 소비를 줄이고 환경을 해치지 않기 위해 에코웨딩 업체인 ‘대지를 위한 바느질’의 도움을 받아 100% 자연 분해되는 웨딩드레스를, 그리고 유기농 뷔페를 선택했다. 하지만 에코웨딩 비용이 싼 것은 결코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부모님은 많은 도움을 줄 수 없었고. 모아놓은 돈이 없었던 복태와 한군은 과감하게 예산을 줄였다. 생화는 조화로, 결혼반지는 직접 디자인해 6만 원짜리로, 피로연 때 입을 한복은 일상복으로 입을 수 있는 생활 한복으로 맞췄다. 최대한 실용적이고 허례허식이 없는 결혼식을 치르기로 하자 600만 원이었던 예산이 200만원으로 확 줄었다.



결혼, 창조적이고 재기 발랄한 작업으로 전환하다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친구들은 앞다투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디자이너인 친구가 청첩장 디자인을, 일러스트를 하는 친구가 청첩장 그림을, 한군이 일했던 ‘유자살롱’에서는 음향 장비와 스태프를 포함해 피로연에서 진행될 공연의 모든 진행을 맡아주기로 한 것이다. 뮤지션 친구들은 무료로 축하 공연을 해주겠다고 했고, 독립잡지 <순진>은 복태와 한군의 러브 스토리로 연극을 만들었다. 많은 이가 은혜를 베풀어주었지만, 여전히 결혼 자금은 부족했다. 그래서 짜낸 묘안이 바로 창작자를 위한 소셜펀딩 사이트 텀블벅. 결혼식을 펀딩 받아 진행한 것은 한국에서 첫 사례라고. “결혼식이 예술 작품은 아니잖아요. 개인의 일인데 자기한테 혜택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누가 펀딩을 해줄까. 그럼 이걸 예술성 프로젝트로 전환해야겠다.”(복태)
복태와 한군은 목표 금액을 180만 원으로 잡고 텀블벅에 프로젝트를 올렸다. 직접 만든 팝업 카드로 자신들의 러브스토리를 설명하는 깜찍한 동영상과 함께. 그들은 후원금의 액수에 따라 복태의 1집 앨범, 손수 만든 팝업 카드 감사 편지와 복태표 양갱, 우쿨렐레 무료 강습 등 자신들의 재능으로 은혜를 갚겠다고 약속했다. “품앗이 개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모아둔 돈이 없어 결혼을 두려워하거나 계속 미루잖아요. 근데 돈이 없어도 곗돈처럼 서로 몰아주면 누구나 결혼할 수 있다는 걸 너무 보여주고 싶었어요.”(복태) 







은혜 갚을 결혼식, 그리고 그 후
프로젝트는 대성공이었다. 한 달 만에 목표 금액을 넘어 무려 400만 원 이상의 후원금이 모였다. 결혼을 반대하던 부모님은 텀블벅에 올린 영상을 보고 복태와 한군을 믿어주셨고, 생판 모르는 이들이 후원금을 보내왔다. 1, 2부 예식에 온 어른들은 피로연까지 남아 1시간 반짜리 공연과 연극을 다 본 뒤 감동했다며 부모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부모님의 반대를 거치며 시작한 두 사람의 ‘은혜 갚을 결혼식’은 힘들었던 과정만큼 부모님은 물론 모든 이의 축복을 받으며 시끌벅적하게 마무리되었다.

녹초가 된 몸으로 요양이나 다름없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후 바로 ‘은혜 갚기’에 돌입했다. 두 달 간 일일이 손 편지를 팝업 카드에 쓰고, 600개의 양갱을 만들고, 그렇게 산 같은 짐 더미를 우체국으로 가지고 가부쳤다. 그런데 은혜 갚기를 숙제처럼 생각한 두 사람과 달리 후원자들은 마음은 달랐다. “메일이 온 거예요. 앨범 안 받아도 된다고. 그냥 힘이 되고 싶었다고. 결혼식을 보고 자신의 삶의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저희는 튀려고 그런 것도 아니고 상황이 그랬기 때문에 한 건데 우리가 뭐라고 누구의 인생에 영향을 주고 이런 것들이 감사할 따름이었죠.”(한군)

그리고 마침내 지음이가 태어났다. 육아도 그들다웠다. 아기가 15개월이 되었지만,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올 때마다 기저귀를 사와 지금까지 그들의 돈으로 기저귀를 산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대학 가서부터 물물교환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해 늘 생각했어요. 내 재능을 주고 선물을 받고 그러면 돈이 필요 없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어렴풋이 했는데 음악을 시작한 후부터 그게 가능한 거예요. 친구가 공연해달라고 했을 때 돈을 못 준다 해도 그 친구가 가방을 만드는 친구면 가방을 주고. 그러면서 필요한 것들이 생기는 거예요. 일방적인 재능기부가 아니라 재능 교환인 거죠. 그렇게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복태)



티끌 모아 태산,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복태와 한군의 은혜 갚을 결혼식. 결혼한 지 3년
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들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결혼식에 대한 대안을 보여준 것은 물론, 더불어 살기를 추구하고 남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의 태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인터뷰를 마치며 기자는 사랑이 넘치는 이 가족의 앞날에 또 어떤 재미나고 감동적인 일들이 펼쳐질까 기대하며 마음속으로 축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