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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살림의 나날

함께 자라야 할 엄마와 딸

한 학년에 딱 한 반이다. 재작년 초겨울 큰딸이 전학 온 이 학교는 10여 명의 학생이 한 반인 동시에 한 학년인 작은 학교다. 전학 첫날, 딸은 옹기종기 모여 앉은 친구들의 시선을 의연하게 받아내지 못해 교실 문만 바라보고 서 있었다. 보다 못한 선생님이 의자를 갖다 줘 그나마 2시간 동안 편하게(?) 문을 바라볼 수 있었다. 만약 선생님이 수업을 파하고 아이들의 비밀 아지트가 있는 산으로 반 아이들을 데려가지 않았다면 아이는 하교 때까지 그러고 있었을지 모른다. 
평범하지 않은 아이의 첫 행보 때문일까, 서울서 잘 지내던 아이를 억지로 끌고 온 죄인 심정 때문일까, 어린 시절 남편을 전학 시키고 맘고생 많이 하신 시어머니가 전학 불가를 외친 반대 때문일까, 엄마인 나는 지난 1여년의 시간 동안 늘 노심초사였다. 혹시 하는 엄마의 기대에 부응할 기색이 없던 딸은 누구나 적응한다는 하루 아니 한 달이 지나서도 서울 타령을 하다 1년 반이 지난 지금 서울과 이곳이 반반 좋다고 한다. 그렇게 1여 년의 세월을 보낸 덕분에 나는 아이에게 일어나는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딱 그랬다. 병설유치원에 다니는 둘째를 데리러 갔다가 학교에서 방과후수업를 마친 큰딸과 마주쳤다. “엄
마! 친구 수영(가명)이네서 내일 자도 돼?” 얼마 전 학부모총회에서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주중에는 아이들의 외박을 허락하지 마라는 당부가 생각나 단칼에 거절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는 내일은 수영이 생일이라 특별히 자기로 했으며 다른 친구들도 온다고 했다. 그 말에 마음이 흔들려 수영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내일 희원이 수영이한테 가서 잔다는데 가도 괜찮아요?” 그런데 수영이 엄마가 살짝 당황하는 기색이다. “어, 수영이, 오늘 친구들 불렀는데….” 운전 중이어서 스피커폰에서 들려오는 수영이 엄마의 목소리를 나만 듣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들은 큰딸 눈에 맺힐 눈물은 안 봐도 알 터. 우여곡절 끝에 수영이 집에 잘 채비를 하고 갔더니, 수영이 엄마가 나를 살짝 불러 이야기한다. “수영이가 몇 아이만 데려와서 자겠다고 해놓고 사방 말을 했나봐. 자기는 희원이한테 말을 한 적이 없대서 수영이 의사를 존중해야겠기에 선뜻 말 못했어. 그런데 지가 미안했는지 희원이한테 전화를 했네.” “아 그랬구나….”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 하고 생각은 했지만 맘은 괜히 시리다. 내일이 아닌 오늘 자기로 했단 말을 들은 순간 눈물을 흘린 건 내 딸만 아닌 것이다.
딸이야 당연히 섭섭해서 눈물이 났을 테고…, 그럼 엄마인 내 눈물은 뭐였을까? 
차에서 내려 우는 아이를 안아 다독이는데, 순간 나도 아이처럼 섭섭한 맘이 들어 괜히 아이에게 화를 냈다. “너랑 안 놀고 싶어서 안 불렀겠지! 뭘 울고 난리야, 뚝 해!”하고 엄포를 놓고 싶은 걸 꾹 참았다. 그런 상황에서 ‘엄마는 아이의 감정에 공감해주고 동시에 덤덤하게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이야기해야 한다’고 배운 것 같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내 아이가 상처받은 순간에, 엄마 속 어른아이가 내 아이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감정이 전이되어서는 함께 아파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를 대하는 엄마가 아닌 상처받은 아이로 상대하는 셈이다. 

자러 갔던 아이가 한 시간이 지났을 즈음 전화를 했다. “엄마 무서워. 엄마 보고 싶어, 흑흑” 놀러가는 아이를 좋게 
보내주지 못한 미안함에 최대한 부드럽게 대꾸했다. “엄마가 화내서 맘 쓰여서 그런 거 아냐? 엄마 화 풀렸으니까 자고 와도 괜찮아.” 하지만 아이는 무서워서 못 자겠다며 다시 집으로 왔다. 충분한 이해와 지지, 사랑을 받지 못한 내 안의 아이는 엄마라는 이름을 얻고도 떠나지 않고 자식을 키우는 순간순간 이렇게 튀어나온다. 이젠 내 아이를 위해서라도, 받아야 할 순간에 받지 못한 사랑과 관심, 애정을 주지 않는 과거의 대상을 향한 원망을 거두어야 할 때가 왔나 보다. 더불어 내 속의 아이와 내 아이를 살뜰히 보듬고 가야할 시간이 진정 왔나 보다. 
어버이날과 어린이날이 함께 있는 5월이다. 이번 5월에는 부모님과 아이 선물에 분주하던 마음 한 조각을 떼어 내 마음 속 아이에게도 선물 해야겠다. 그리고 이별을 고해야겠다. 이 봄, 이 해가 가기 전에…. 

이경희|필명 조각목, 소싯적 옷 만들고 책 만들다 결혼 후 마님으로 살면서 음지에서 야매 상담가로 맹활약 중. 바느질에 관심을 쏟다가 목 디스크 때문에 그만두고 페이스북에서 수다 떨듯 글을 쓰다가 최근 작가와 출판전문기획자를 동시에 해보기로 결심함. 여성의전화 소식지 기획위원, 지역신문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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