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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햇빛 아래 노니는 삶

봄을 맞은 생명│땅을 일구며 생을 노래하는 벌교 농부 03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온다더니, 아예 까치 부부가 봄 손님으로 집 앞에 있는 커다란 소나무로 이사 왔습니다. 부부가 합심하여 둥지를 짓기 시작한 지 벌써 한 달 보름은 지난 것 같습니다. 바람을 타고 곡선을 그리며 날아다니는 까치의 모습은 마치 도를 깨우친 선인처럼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새 봄을 맞아 집을 짓는 목수 까치
까치는 둥지의 재료로 보통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나무 가지를 주워 오지만, 가끔 나뭇가지를 부리로 물고 날개를 퍼덕거려 하늘로 뛰어 오르며 힘겹게 생가지를 꺾기도 합니다. 아마도 둥지 결구 중 꼭 맞는 크기의 가지가 필요할 때 그러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까치가 하루 종일 둥지만 지으면서 지내지는 않습니다. 식사시간이면 부부는 밭 가는 농부의 밭으로 날아가 지렁이며 벌레를 잡아먹기도 하고, 산꼭대기에 있는 나무까지 함께 산책을 가기도 합니다. 둥지를 짓는 과정 자체가 서로 사랑을 확인하며 표현하는 연애의 시간인 듯합니다. 이제 보금자리가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른 듯합니다. 조금 있으면 푹신한 이불로 둥지를 단장하여 짝짓기를 하고 알을 품겠지요.
간밤에는 둥지가 놓인 굵은 소나무가 좌우로 휘청휘청할 정도로 바람이 거칠게 부는데다가 창문을 뚫고 들려오는 바람 소리가 어찌나 사나운지 행여나 둥지가 무너지지나 않을까 걱정하며 밤을 보냈습니다. 아침에 해 뜨자마자 창밖을 내다보니 다행히 둥지는 무사했습니다. 누구에게 배우지도 않았을 텐데

어쩌면 그리도 견고하게 나뭇가지를 엮어서 공과 같은 둥지를 짓는지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까치는 타고난 목수입니다. 어느새 농부에게는 아침에 일어나면 까치 부부가 잘 있는지 창밖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오늘도 까치는 이른 아침 벌써 나뭇가지를 날라 둥지를 짓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그리곤 소나무 꼭대기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아무래도 귀한 손님이 오시려나 봅니다. 


봄나물로 만난 나물 할매
까치의 노래 덕분일까요? 봄이 오니 순천에 사시는 나물 할매가 오셨습니다. 이곳 산 중턱에 과수원을 조성하던 시절 땀 식히며 구수한 농담을 나누던 연이 어느덧 9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간 할머니는 남편을 떠나보내고 손주들을 맡아 키우면서 얼굴에 주름도 많이 깊어졌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올봄에도 나물 캐러 오셨으니 건강이 괜찮으신 듯하여 마음이 놓입니다. 4년 전 이곳에 집을 지은 후로는 나물 캐다가 점심시간이면 꼭 들르셔서 밥 잡숫고 또 산으로 올라가십니다. 오늘 캐 오신 나물을 보니 어린 머위가 가장 많고 쑥, 쑥부쟁이, 국거리 엉겅퀴가 있습니다. 덩치도 작으신 분 먼 길 내려가실 때 작은 짐이라도 덜어 드리면 좋을 것 같아서 페이스북 시작한 이래로 제가 팔아드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할머니가 만원만 받아 달라 하시기에 글을 올렸더니 도시 사는 친구들이 앞 다투어 사갑니다. 신선한 밥상도 그립고 봄도 그리웠겠지만, 사람 사는 정이 그리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을 지나 낮이 길어지며 양의 기운이 점점 강해지고, 모든 생명의 기운이 탱천하고 있습니다. 
나무는 물을 빨아올려 뿌리 끝으로 가지 끝으로 튀어 오르고 싹과 꽃을 피워 본격적으로 태양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우리 식구 마음에도 덩달아 봄이 가득합니다. 우리가 심어놓은 매화꽃은 제일 먼저 웃는 얼굴로 반기고, 참다래에도 새순이 나왔습니다. 고구마 모종도 빨갛게 예쁜 꽃 같은 싹을 틔웠습니다. 감자는 땅을 가르며 새싹을 올렸고, 고사리 끊고 가마솥에 삶아 햇볕에 말리는 엄니 손도 바빠집니다. 19개월 된 막둥이는 날 풀린 걸 어찌 아는지 자꾸 밖으로 나가자고 졸라댑니다. 
자연은 시계도 없고 달력이 없어도 알아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조화롭게 꾸려갑니다. 오늘도 새와 꽃과 풀을 대하며 한없이 마음이 작아집니다. 농사를 지으며 살다 보니 자연의 시간표를 닮은 것 같아서 안심하며 봄의 한 때를 보냅니다.

최혁봉|벌교 산골살이 여덟 번째 겨울을 살아내고 있는 농부. 자연을 맨살로 대하는 농사야말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온전한 인간이 되는 좋은 길이며, 사회적으로도 다시 되돌아가야 할 삶의 형태라 여겨 자연에서 기도와 노동을 실천하고 있다(주로 참다래와 호박고구마등을 농사지으며 살림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salimfar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