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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인디 : 구름에 달 가듯이 산다

이토록 작지만 꽤 단단한 연대│<잠 못 드는 밤> 장건재, 2013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

잠 못 드는 밤, 불안의 크기를 가늠하듯 베갯잇을 만지작거리다 아침이 밝아오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저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이란, 간밤의 불안을 어깨에 이고 새 아침을 준비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출근 버스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서로의 표정 없는 얼굴을 보고 냉소한다. ‘저들은 도대체 무슨 낙으로 사는 걸까?’ 
장건재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잠 못 드는 밤>은 결혼 이 년차 부부의 이야기다. 남편 현수는 멸치 공장의 직원으로, 아내 주희는 요가 강사로 일하면서 작은 임대아파트에서 살림을 꾸려나간다. 현수는 사장의 부탁으로 주말근무를 하고 있지만, 수당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는 사장 때문에 불안하다. 임금을 주지 않을 요량일까? 현수 쪽에서 먼저 임금 이야기를 꺼낸다면, 비정규직인 자신을 쉽게 해고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주희는 부쩍 아이를 생각하는 일이 늘었다. 놀이터에서 아이가 있는 가족을 볼 때, 어머니에게서 걱정 섞인 핀잔을 들을 때, 우리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면? 예전만큼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삼켰던 말들은 꿈이 대신 떠들어대고, 속 시끄러운 두 사람은 악몽에서 깬다. 
이 영화에서 ‘사건’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은 이처럼 보편적인 고민이다. 옆자리에 누운 아내 몰래 슬그머니 일어나 찬바람을 쐬러 나가게 하는 불안. 그러나 영화는 임시직으로 살아가는 젊은 부부라는 통념에 두 인물을 가두어 두지 않는다. 영화가 현수와 주희를 대단히 보편적이면서도 완전히 개별적인 인물로 살아있게 하는 동력은 이들이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영화의 뼈대를 이루는 것이 부부의 고민과 그에 따른 불안이라면, 뼈대의 내부를 채우는 것은 너무나 사소해서 도리어 사치처럼 느끼는 행복이다. 현수와 주희는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을 함께 걸어주고, 화창한 주말 오후에는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삶의 작은 손실을 거대한 위협으로 부풀려 생각하지 않도록 보듬어준다. 경제적인 부분만큼이나 사랑을 지켜나가는 일을 소중히 여기기도 한다.


그렇다고 <잠 못 드는 밤>이 마냥 희망적인 
전망을 제시하는 영화라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의 일상은 잘 구성된 시나리오처럼 일관된 정서로만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 이 영화는 삼차원의 현실이 지닌 주름을 이차원의 스크린으로 옮기면서도 현실의 다양한 결을 편편하게 다림질 하지 않았다. 주희가 잠든 현수를, 혹은 현수가 잠든 주희를 바라볼 때의 눈길은 사랑으로 충만하기도 하지만, 상대에 대한 연민과 멜랑콜리를 품고 있기도 하다. 
몇몇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주는 감흥으로 가득 차 있다. 시나리오도 없이 시작한 영화인 만큼, 인물들은 장건재 감독 자신의 경험과 배우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촬영과 동시에 조금씩 완성해 나갔다. 심지어 촬영을 쉬는 동안 극중 주희가 극 바깥의 배우로 돌아온 순간을 그대로 건져 올린 장면도 있다. 마치 실제 대화처럼 더듬거리는 대사의 리듬은 영화에 신비로운 현실감을 불어넣는다. 


영화는 감독의 전작 <회오리바람>과 마찬가
지로, 이들처럼 살아야 한다고 회유하거나 이들의 행복이 굳건할 수 있도록 사회 경제적 개혁이 시급하다고 강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부부를 속단하기보다는, 물끄러미 응시하는 자리에 선다. 그러다 한번쯤은 생각할 것이다. 피로와 불안의 세계를 버텨나가게 하는 이토록 작은 연대의 의미를. 잠 못 드는 밤, 내 곁에 누워있는 누군가는 어깨에 매달린 불안을 내려놓고 새 아침을 시작할 용기를 주는 사람이다. 그는 나를 달콤한 잠에 들게 하는 수면제가 아니라, 깨어 있는 시간과 있는 힘껏 맞서게 하는 각성제다.

*아랍의 오래된 속담.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1974년 작의 제목으로 잘 알려져 있다.


김다영|독학자. 부산독립영화협회 회원. 윌로씨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