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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다/비뚤어질 테다

대학 학과 폐지,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여전히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는 근 백 년의 향기를 짙게 머금고 있는 시,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실려 있습니다. ‘나보기가 역겨워 / 가실 때에는 /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이 한 문장만큼은 익숙하게 듣거나 읊을 수 있지요. 삶에서 이별 없는 사람이 없을 터인데, 시인이 쓴 한 구절은 수많은 이의 마음을 어르고 달래주었을 것입니다. 김소월은 비록 ‘취업자’ 는 아니었지만, 그가 쓴 시집 <진달래꽃>은 근대 시기 문학 작품 중 최초로 문화재 등록이 되어, 그 가치를 인정 받고 있습니다. ‘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 이란 뜻의 ‘배재(培材)’ 란 이름에 걸맞은 시인을 배출했던 것이지요! 

문 닫으면 그만!
문학의 산실이었던 배재대학교가 발표한 2014학년도 학과 개편안이 논란입니다. 국문학과를 폐지하고, 외국어로서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설립한 한국어과로 통폐합하겠다는 것입니다. 또 프랑스어문화학과와 독일어문화학과, 미디어 정보·사회학과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청주대는 회화과를, 대전 한남대는 독일어문학과와 철학과를 이미 폐지한 상태죠. 목원대도 내년부터 어문학과 계열 5개 학과를 폐지하기로 했습니다. 이러한 도미노 게임 같은 ‘학과 폐지’는 비단 지방대학만 마주한 현실이 아닙니다. 중앙대와 연세대, 한국외국어대까지 대학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학과를 폐지하니, 일일이 나열하기도 벅찹니다. 여기저기 맥없이 쓰러지는 학과의 공통점은 취업률과 신입생 모집 경쟁률이 낮다는 점입니다. 기초학문이나 순수예술 관련 학과는 한 마디로 취업 경쟁력이 약하니, 대학 측은 ‘없애면 그만’이라는 행태를 보이는 것입니다.

대학교육의 목표는 취업자 양성?
그렇다면 학과들은 왜 이렇게 사라져야만 할까요? 통계청자료를 보면 학령 인구는 해마다 감소하여 2020년에는 50만 8천으로, 현재 국내 대학의 정원을 모두 합한 것보다도 적은 수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교육부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고 보자는 식으로 대학 구조조정에 나섰지요. 학교가 국내 대학 평가 순위의 하위 15%에 포함되면, 교육부의 재정 지원이 끊기고, 다음에는 경영 부실과 퇴출 위험의 단계를 거칩니다. 문제는 대학을 평가하는 기준 8개 항목 중에서 ‘취업률’과 ‘재학생 충원율’의 비중이 전체의 50%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대학은 존속하기 위해 급한 대로 취업률이 낮고 다음 해 신입생 모집이 어려울 것 같은 학과를 폐지하겠다는 간단하고 극단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대학은 이러한 결정을 일방적으로 추진한 뒤 통보만 하고 있습니다. 해당 학과의 학생과 교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지요. 학생은 자신이 속한 학과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본래 목적과는 다른 교육과정을 따라야 합니다. 교수도 자신이 그동안 명맥을 유지해왔던 연구와 일자리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학교 측은 ‘경쟁력 강화를 위한 개편’이라고 해명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위험한 자본의 논리가 숨어있습니다. 취업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교육으로서 가치가 없다, 취업률이 낮은 학과는 교육의 질이 낮다는 증거이므로 폐지해야 마땅하다는 논리요. 현재 국가의 교육을 주관하는 기관은 대학 교육의 ‘양보다 질’을 추구하겠다고 했지만, ‘교육’에 대한 개념을 인재 양성이 아니라, 취업자 양성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정부가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청년실업 문제를 개별 대학에 전가하는 것은 아닐까요?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따라 대학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하지만 각 학과의 다양성과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정부의 요청에 따라 ‘취업률’이라는 잣대로 구조조정을 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술이나 기초학문 관련 학과가 수치화할 수 있는 결과나 단기간에 달성할 수 있는 이익을 목적으로 존재하는 곳은 아니니까요. 나무를 베어내긴 한순간이지만, 다시 뿌리가 견고하고 장성한 나무가 되기까진 수십 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울며울며 가시는 학과들을 말없이 고이 보내드릴 수가 없습니다, 절대로!  글 박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