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구 그 할매, 내 고모라니까.”
작은 버스가 그대로 마을 회관이다. 승객 대부분이 ‘뽀글머리’ 할머니이고 다들 서로서로 아는 눈치다. 한 사람이 입을 열자,  나머지 할머니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경청한다. 반응도 부지런하다. 분명 외지에서 온 것은 맞지만, 나는 버스 안에서 외국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정겨우면서도 낯선 진풍경에 배시시 웃음이 났다. 영동역에서 자계리로 오르는 동안, 창 밖에는 굽이진 산등성이가 절경을 이루고, 안으로 안으로 꼬부라진 길을 따라 버
스는 쉼 없이 미끄러졌다. 글 안미리 · 사진 원유진 · 자계예술촌


영동군 용화면 자계리. 자계예술촌 하나만 보고 이곳까지 왔다지만, 정말로 자계예술촌 하나만 보고 가게 생겼다. 가게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마을. 그날 따라 비가 내려 더 했다. 2002년 3월부터 이곳 자계리의 폐교에서 시작한 자계예술촌은 빗속에서도 독보적인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것 같은, 예술인이 사는 폐교. 건물 안팎으로 근사한 공연장까지 갖추고 있다.

한여름 밤, 깊은 산골의 공연예술잔치
자계예술촌은 해마다 산골공연예술잔치를 열어 전국의 유명 극단과 예술인들을 자계리로 초대한다. 이번에도 8월 15일부터 17일까지, 열 번째 잔치가 열릴 예정이다. 산골 마을에서 예술잔치라니 관객은 물론 참여하는 사람에게도 낭만적인 행사다. 밤마다 산 내음을 맡으며 별빛 아래 공연을 관람할 수 있고 마을 사람들은 무료로 음식을 베푼다. 때마다 전국 각지에서 관객이 모여든다. 찾아오기 여간 불편한 게 아닌 데도 그렇다. 자가용을 타고 오는 게 아니라면 영동역에 내려서 마을버스를 타야 하는데, 버스는 하루에 네 대뿐이기 때문이다. 숙박할 곳을 찾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한 번이라도 공연을 본 사람은 또 다시 산골공연예술잔치를 찾는다. 순도 높은 문화 체험 때문이다. 전국의 관객이 이만큼 작정하고 찾아오는 데 반해 영동사람들의 관심이 덜 한 것은 아이러니하다. 가까이 있을수록 알아보기 어려운 건 어딜 가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푸르른 진심으로 만드는 축제


십 년간 버려져 있던 폐교에 예술의 숨결을 불어넣은 이들은 극단 ‘터’ 사람들이다. 대전의 지하연습실이 열악해서 이곳까지 떠나오게 됐단다. 햇살 좋고 공기 좋은 자계리는 탁한 공기에 지친 단원들에게 그만이었다. 그 덕에 일반인에게 산골까지 문화공간이 확장될 수 있었다. 
사실 한 극단이 축제를 주관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명실상부한 지역 유일의 문화예술단체이건만, 지원금도 얼마 못 받는다. 자계예술촌 박연숙 대표는 그렇다고 정치적인 색깔을 두르거나 겉치레를 하면서까지 도움을 받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다행인 것은, 이들의 순수한 열정만큼 순수한 도움의 손길도 있다는 것이다. 유명 극단들이 적극 참여해 주어 공연의 질이 보장되고, 마을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잔치 음식을 담당해 준다. 산속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것도 모자라 마을 사람들이 해 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니 방문객에게는 낭만 체험이 될 수밖에 없을 터. 게다가 공연 관람료에도 철학을 담았다. 느낀 만큼 감동만큼, 값을 매기는 후불제다. 관객과 함께 공연을 완성한다는 의미다. 
“관객 의지가 들어가는 거죠, 일방적으로 값을 정해 놓는 게 아니고. 교육적인 목적도 있어요. 그냥 엄마 따라 들어갔다 나오는 게 아니라, 봉투에 감상평을 쓰고, 천원이라도 제 용돈을 직접 넣게 하는 거예요.”
감동에 겨워 정말 좋았다고 말하면서도 관람료를 안 내는 경우가 있다. 박 대표는 그런 경우도 이해한다며 마음 좋게 웃었다. 돈 없어서 예술작품을 접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먼 곳까지 찾아준 사람들의 수고로움에 감사하는 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자계예술촌. 이곳에는 예술을 향한 열정과 관객을 위하는 진심이 있다. 예쁜 산세와 마을 사람들의 친절은 보너스. 여름밤을 예술적으로 보낼 수 있는 특별한 잔치를 기대한다.


자계예술촌
충청북도 영동군 용화면 자계리 569번지
043-743-0004(대표 박연숙)
jagyeart.net












교통 : 기차로는, 영동역에 내린다. 역을 등지고 오른쪽 방향으로 약 30m 가면 버스정류장이 있다. 거기서 버스를 타면 자계리까지 간다. 06:30, 10:20 13:20, 17:20 네 차례 운행. 

놀거리 : 깨끗하고 예쁜 자계리 마을. 폐교 뒤로 흐르는 내. 오붓한 뒤풀이(예술촌에서 캠핑 가능).

먹거리 : 마을 사람들이 해 주는 음식(올라오기 전에 미리 먹거리를 사 가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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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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