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출 건 다 갖췄습니다. 가족, 우정 등을 아우르는 감동 코드, 무거움을 덜어내는 코믹한 요소, 여전히 유효한 ‘힐링’이라는키워드, 시대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소품과 추억의 음악으로 불러일으키는 복고 감성까지. 하지만 <미나문방구>는 저조한 흥행 성적을 기록하며 관객의 시야에서 멀어졌어요. 이 토끼 저 토끼 다 잡으려다 보니 이야기를 가지치기하는 데 실패했고, 산만해진 이야기를 끌고 가려다 보니 억지스러운 설정을 끌어들이고 만 것이죠. 
그럼에도 <미나문방구>는 외면받기에는 아까운,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영화입니다. 관객의 뒤통수를 치는 반전은 없지만,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소소한 에피소드가 있고, 배꼽을 잡을 만큼 박장대소할 만한 장면은 없지만 잔잔히 미소 짓게 하는 깜찍함이 있죠. 무엇보다 <미나문방구>는 우리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에 대한 소중함을 나직이 일러주는 영화입니다.


복고, 현실에 결여된 것을 소환하다
<미나문방구>는 <응답하라 1997>부터 <써니>, <건축학 개론> 등이 몰고 온 복고 열풍을 잇는 영화입니다. <응답하라 1997>이 90년대 팬덤 문화를 이끈 소녀 팬들의 추억을, <써니>가 1980년대에 10대를 보낸 소녀들의 우정을, <건축학 개론>이 첫 사랑에 대한 기억을 복기하게 하였듯, 복고 영화는 현재의 삶에 결여된 가치나 잊어버렸던 어떤 것의 소중함을 과거의 기억을 통해 일깨우죠. 이 과정에서 주인공의 상처는 천천히 아물고, 그만큼 더 성숙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복고영화는 곧 성장영화라는 등식이 성립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미나문방구>도 마찬가지예요. 문방구를 목숨처럼 여기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는 미나는 진절머리가 납니다. 사고로 다친 아버지 대신 문방구를 잠시 떠맡은 미나는 아이들을 몇 푼 안 되는 코 묻은 돈이나 내놓는, 귀찮고 시끄러운 존재로만 느낍니다. 하지만 아버지 몰래 문방구를 팔아버리려던 미나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알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변해갑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이, 미나도 기어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고향을 떠나려는 막판까지 가서야, 아버지가 그토록 문방구에 고집을 부렸던 이유를 깨닫고 한 걸음 더 성장합니다. 도대체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기에 미나의 아버지 강봉근은 그토록 문방구를 지키려 했을까요?


‘미나문방구’에만 있는 특별한 것은?

미나문방구에는 다른 문방구에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아이들과 미나 아버지의 각별한 관계입니다. 미나의 아버지 강봉근은 아이들의 운동회를 망치지 않기 위해 아내가 죽은 다음 날에도 문방구를 엽니다. 아이들의 처지와 형편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그는 왕따이자 준비물을 살 돈이 없는 소영이가 물건 훔치는 걸 눈감아 주고, 사람들이 소영이를 그의 앞에 끌고 오자 오히려 나중에 갚기로 약속했다며 아이를 감싸죠. 아이들이 열광하는 오락인 스트리트 파이터 기록 달성에도 열심입니다. 미나는 이런 아버지의 모습이 싫어 견딜 수 없었지만요. ‘유치하지? 어른이 돼서 그렇게 애들을 이기고 싶나?’라는 미나의 말에, 강호는 말합니다. “이기고 싶으셨던 게 아니라 애들하고 같이 하고 싶으셨던 거겠지. 아저씬 애들 좋아하셨잖아.” 
또 한 가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철저히 아이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위해 열어놓은 미나문방구라는 공간입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공간이 바로 문방구 앞에 놓여있는 평상입니다. 아이들에게 평상은 놀이터이자 학원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이고, 갈 데 없는 아이들의 쉼터입니다. 하지만 주인으로서는 정말 비효율적이고 필요 없는 공간이죠. 그래서 문방구를 넘겨받으러 온 부부는 말합니다. “저 평상부터 뺄려구요. 괜히 쓸데없는 아이들 죽치고 있어 봤자 보기도 안 좋고 지저분해지잖아요.” 하지만 미나의 아버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 비효율적인 공간에서 아이들의 추억이 시작되고, 정다운 관계가 시작된다는 것을요. 
결국, 미나의 아버지가 문방구를 지키려 했던 이유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평생 아이들과 쌓아 온 정다운 관계를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단 한 번뿐인 아이들의 유년시절을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싶었던 거예요. 판매자와 소비자 관계라는 측면에서 보면 비효율적이기 짝이 없는, 그야말로 ‘오지랖’에 불과하죠. 수익을 많이 남기기 위해서 아이들을 꼬드겨 더 많은 소비를 부추겨야 할 판에, 아이들이 문방구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도록 허락해주고, 같이 놀아주기까지 하다니요.


효율성이 앗아가는 것들 
효율성과 속도를 최우선으로 치는 오늘날, 모든 과정은 더는 간소화할 수 없을 만큼 간단해졌고, 더는 빠를 수 없을 만큼 빨라졌습니다. 편지 대신 이메일이, 직접 요리하는 대신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3분 요리가, 손수 계산하는 대신 바코드를 띡- 찍는 것이 당연한 오늘. 효율성과 속도라는 대명제 앞에 미나문방구의 평상 같은 공간과 미나 아버지가 아이들과 맺은 그런 관계는 더는 설 자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판타지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요? 이렇게 되니 자연스럽게 공유할 이야기도 추억도 사라집니다. 개인의 기억만 남고, 공동체의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죠. 익명성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과 편리함을 더 크게 느끼는 우리는,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을 만큼 적당한 거리를 두고서 애써 무관심하려 노력할 겁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관계를 맺으려 하기보다는 순간순간 각자가 처한 역할에 충실하겠죠. 소설가 김애란의 표현을 빌리자면 ‘참으로 거대한 관대’ 속에 우리는 모두 외롭게 서로의 언저리를 떠돌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우리, 미나문방구처럼 각자의 삶에 무지하게 비효율적이지만 널따란 평상 하나쯤, 놓아두는 건 어떨까요? 조금이나마 인간의 온기를 잃지 않고 살 수 있지 않을까요? 글 최새롬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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