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라는 도시국가에서 활동한 철학자입니다. 기원전 384~383년 경 스타기라에서 태어난 그는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당시 학문의 중심지였던 아테네로 왔습니다. 17살의 소년이 찾아간 곳은 철학자 플라톤(Plato)이 운영하던 아카데미아(academia)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플라톤의 제자로 20년을 그곳에서 머물렀습니다. 공부를 어찌나 열심히 했는지 플라톤이 그를 ‘벌레’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그 또한 플라톤을 몹시 존경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스승과 달라지는 자신을 깨닫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그대로 답습하기엔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석함이 너무나도 뛰어났던 것이죠. 물론 플라톤은 그런 제자의 모습에 서운함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한번은 “어린 망아지가자기를 낳아 준 어미말을 뒷발로 차듯 아리스토텔레스는 나를 한껏 두들겨 팬다”며 투덜거렸다고 하니까요. 그 때문이었을까요. 플라톤은 죽으면서 아카데미아를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라 자신의 조카에게 맡깁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곳을 떠났습니다. 

광범위한 철학자로
잠시 동안의 방랑 생활 후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소 사소해 보이는 일을 맡습니다. 13살짜리 왕자의 가정교사입니다. 그 소년은 몇 년 후 알렉산더 ‘대왕’이 됩니다. 대왕의 스승이 된 그는 아테네로 화려하게 귀환했습니다. 보란 듯이 아카데미아보다 더 큰 학교도 세웠죠. 그런데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던가요? 알렉산더가 그만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아테네에 반 마케도니아 정서가 일었고 급기야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성모독죄라는 정체가 불분명한 죄목으로 고소당하기에 이릅니다. 그는 “아테네가 철학에 두 번 죄를 짓게 할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아테네를 떠납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생각나게 하는 꽤 멋진 말입니다. 물론 몇몇 쌀쌀맞은 사람한테서 도망자의 변명에 불과하다는 비웃음을 사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매우 광범위한 호기심의 사람이었습니다. 생물학, 수사학, 논리
학, 천문학, 윤리학 등 그가 건드리지 않은 분야는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그는 서양 역사 최초로 체계적인 문학 비평을 시도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시학>에서 그는 문학의 본질과 형식, 내용과 구성요소 등을 다뤘습니다. 분량이 길지 않고 내용도 어렵지 않아 그의 책 중 읽기가 무척 수월한 편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시시한 책은 아닙니다. <시학>이 끼친 영향은 그야말로 심대합니다. 가령, 우린 이 책에서 ‘카타르시스(catharsis)’가 문학 비평에 활용된 첫 번째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본래 ‘배설’ 내지는 ‘정화’라는 뜻을 지닌 이 말을 가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 작품을 통한 감정의 정화 및 해소라는 의미로 발전시켰습니다.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말할 때, 우린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 규정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미메시스(모방), 아나그로리시스(발견), 페리페테이아(역전) 등 오늘날에도 유용한 개념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플롯을 이야기하다
시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이야기의 개연성과 일관성입니다. 인물의 성격이나 표현의 아름다움도 중요하고, 작품이 담고 있는 사상도 좋아야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건의 유기적인 결합, 즉 플롯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이 오히려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보편적이라고까지 말하는데, 그 이유는 다양한 사건을 나열하는 역사(역사 서술이 진짜 이런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일단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을 수용하겠습니다)에 비해 문학은 일관된 사건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토리는 시초와 중간과 종말을 가진 하나의 전체적으로 완결된 행위를 취급하지 않
으면 안 된다. 그래야만 작품은 유기적인 통일성을 지닌 생물과도 같을 것이며, 그에 고유한 쾌감을 산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스토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역사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역사는 필연적으로 하나의 행위를 취급하지 않고 한 시기와 그 시기에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에게 일어난 모든 사건을 취급하며 사건 상호 간에는 연관성이 없어도 무방하다.” <시학> 중에서

만약 요즘 TV에서 방영되는 이른바 ‘막장 드라마’를 본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매우 분노한 나머지 시청자 게시판을 초토화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리저리 잡다한 사건의 나열, 우연적 사건에 의존하는 개연성 없는 이야기 진행.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이야 말로 드라마를 망치는 주범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x ex machina)’, 즉 ‘기계 장치의 신’에 대한 유명한 비판도 이 맥락에서 나옵니다. 당대의 비극 작가들을 이처럼 비판합니다.

“성격에 있어서도 사건의 구성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필연적인 것 혹은 개연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이러이러한 사람이 이러이러한 것을 말하거나 행할 때 그것은 그의 성격의 필연적 혹은 개연적 결과라야 하며, 두 사건이 이어서 일어날 때는 후자는 전자의 필연적 혹은 개연적 결과라야 한다. 따라서 사건의 해결도 플롯 자체에 의하여 이루어져야지, <메데이아>나 <일리아스>에서 그리스 군의 출범이 저지당했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기계 장치에 의존해서는 안 됨이 명백하다.” <시학> 중에서


삶의 문제 해결을 생각하다
 
당시 그리스 연극에서는 거중기처럼 생긴 기계 장치가 자주 등장했습니다. 그 장치를 이용해 공중에서 배우가 내려옵니다. 공중에 뜬 그는 마치 신처럼 복잡하게 꼬인 문제를 일거에 해결합니다. 느닷없는 문제의 해결.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비꼬고 있는 것입니다. 이야기 자체의 힘으로 문제를 해소해야지 뜬금없는 신적 개입으로 마무리 하는 건 전혀 예술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문학 비평을 넘어 우리의 삶과 신앙에 대한 반성의 도구로 활용했습니다.


“종교적인 사람들은 인간의 인식이(흔히 사유의 태만으로 인해서) 끝나거나 인간의 
능력들이 한계에 부딪치게 될 때 하나님을 말하지. - 그들의 하나님은 언제나 데우스엑스 마키나로서, 종교적인 인간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거짓으로 해결하려 하거나 인간적인 좌절 속에서 의지할 곳을 찾을 때 나타난다네. 말하자면 인간의 한계에서 불리는 것이지. 따라서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그 한계를 더욱 확대하고 기계장치로서 신이 필요 없게 될 때까지는 그 신이 불가피하게 존재하게 된다네. (…) 나는 한계가 아니라 중심에서, 약점이 아니라 강한 곳에서, 인간의 죽음과 죄책이 아니라, 삶과 선 안에서 하나님을 말하고 싶다네.” 디트리히 본회퍼, <저항과 복종> 중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한계를 유예하거나 확장하여 주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을 그 
중심부터 뒤바꾸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우리의 욕망에 만족을 주는 게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우리의 존재가 바뀌어야 한다. 본회퍼가 말하려는 건 이런 것들입니다. ‘기복신앙’이라고 하나요? 신을 문제 해결을 위한 도깨비 방망이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믿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떤 이름으로 자신의 신을 부르는가에 관계없이 말이죠.


김영수|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50대에도 고전을 읽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은 50대와 함께 고전을 읽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학교가 아니라 삶을 위해 공부한다”는 말을 좋아한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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