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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추천 도서

2013년 9-10월 추천도서│밤이 선생이다 外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 난다

밤마다 이 책의 산문을 아껴 읽었습니다. 정갈하고 담담한 글이 뜨겁게 느껴지기란 쉽지 않은데, 이 책은 그렇습니다. 작가의 호흡을 따라 담담하게 읽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차오릅니다. 
황현산이라는 이름은 낯선 분이 많을 겁니다. 작가보다는 비평가로, 번역자로, 교수로 오래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직접 쓴 저서도 있지만, 저 같은 평범한 독자는 범접하기 어려운 비평집이 대부분입니다. 그렇기에 <밤은 선생이다>는 무척 고마운 책입니다. 이 책이 아니었으면 그의 글을 만날 기회를 얻기 어려웠을 저와 많은 사람에게요.
<밤이 선생이다>는 저자가 2000년대 초반부터 신문 지면에 실었던 글을 포함, 약 30년간에 걸쳐 쓴 글을 모아서 낸 책입니다. 책에 수록된 적지 않은 글들은 당시에 뜨겁게 논의되던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에서 많게는 몇십 년이 지난 지금, 그의 글을 읽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반문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간과 공간을 통과해온 한 사람으로, 다시 저자의 시각으로 그 사건을 톺아보던 시간은 꽤 의미 있었습니다. 잘 정리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누군가 적확한 글로 짚어주는 데서 오는 통쾌함도 있지만, 사실 그보다 더 컸던 것은 안도감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사안을 접할 때, 그로 인해 때론 화나고, 때론 절망할 때, 늘 핵심을 짚으며, 그에 대한 조언을, 때로는 정중한 꾸짖음을 아끼지 않는 ‘어른’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안도감 말입니다. 이런 분이 존재해왔고,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조금 더 든든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달까요?
올가을, 단 한 권의 책을 추천해야 한다면 단연 이 책입니다. 깊어 가는 긴 가을밤, 이 책을 선생 삼아, 또 밤을 선생 삼아 보내 보세요. 분명 당신의 밤은 낮보다 아름다울 것입니다. 글 조선아(인터넷 서점 알라딘 마케팅팀)




서민의 기생충 열전
서민 | 을유문화사

서민 교수는 의대 4학년 때 선택 과목으로 기생충학을 선택했다가 어릴 때부터 못생긴 외모로 인해 고생했던 자신의 모습처럼 탄압받는 기생충에 관심을 두어 기생충학을 전공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한국 기생충학계에, 나아가서는 기생충에 아무런 관심도 없던 우리 같은 진짜 ‘서민’에게 행운입니다. 그가 아니라면 누가 이렇게 대중의 언어로 친숙하고 쉽게 기생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을까요? 
이 책은 실생활에 필요한 기생충의 예방, 감염 경로, 증상, 치료 방법 등에 대한 기본 정보는 물론, 기생충에 얽힌 다양하고 재밌는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고기생충학을 통해 기생충이 역사적인 사실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도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십이지장충의 알로 인류 이동의 비밀이 밝혀졌다면 믿으시겠어요? 쥐에게서만 발견되는 ‘서울주걱흡충’의 첫 감염자가 우리나라에서 나왔던 데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요? 몰랐던 세계, 앞으로도 어쩌면 알지 못했을 세계였기에, 이 책을 통해 앎의 즐거움을 많이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께도 그런 즐거움을 드릴 수 있는 책입니다.





연필 깎기의 정석

데이비드 리스 | 프로파간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은 매년 만우절이면 가짜 책을 만들어 알라딘 페이지 곳곳에 숨겨둡니다. 주로 세상에 없을 것 같은 유머러스한 책들을 만드는데요, 이 책을 보는 순간, 저희는 모두 외쳤습니다. “헉! 이거 가짜 책 아냐?” 네. 2013년 최고의 ‘괴작’ <연필 깎기의 정석>입니다.
연필 깎기 장인인 저자는 이 책에서 아주 진지하게 ‘연필 깎는 법’을 알려줍니다. 몇 바퀴 돌렸을 때 최적의 결과가 나오는지, 도구별 최적화한 연필 깎는 방법은 무엇인지는 기본이고, 연필을 잘 깎기 위한 스트레칭법, 연필을 깎으면서 닥칠 수 있는 위험 대처법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한 독자는 이런 평을 남겼습니다. “아… 정말 병신 같지만 멋있어!”
저자의 이런 진지함은 학창시절 읽었던 <방망이 깎던 노인>을 생각나게 합니다. 저자에게 가서 “내 연필도 좀 깎아 주시오” 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자의 연필을 받아 든 사람들은 또 고민에 빠진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술인가 연필인가, 액자에 넣어 전시할 것인가, 사각사각 즐기며 쓸 것인가! 이러한 고민에 빠지기 전에, 일단 우린 읽기부터 해보죠. ‘진지해서 웃기다’라는 말을 실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