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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3 09-10 가을밤, 물들다

가을밤, 물들다 3 │심야여행자, 서울의 밤에 물들다 - 인력거와 버스로 서울 밤거리를 누비다




네덜란드 역사가 하위징아(Huizinga)는 경쟁과 성장만 강요하는 사회에서 일하는 동안 치이고 다치는 사람들에게 놀이하는 사람 즉 ‘호모 루덴스(Homo Ludens)’가 되는 것을 치유법으로 제시했다. 잘 노는 인간이 되자는 것! 갈수록 길어지는 가을밤, 카페에 앉아 있거나 영화를 보는 것도 뻔한 데이트처럼 지루하고, 시끌벅적한 곳에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도 참을 수 없다면, 이제 심야여행자가 되어 밖으로 나오자. 두툼한 배낭을 꾸릴 필요도 없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밤 서울의 멋진 야경이 있으니. 인력거나 버스에 몸을 맡기고, 편안하게 떠나보자글·사진 박윤지


골목의 소곤거림 듣기, 아띠인력거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한옥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목욕탕인 중앙탕, 빨래터 등 문화 역사의 흔적을 보전하여 운치 있는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아띠인력거’는 이 북촌 일대의 좁은 골목길을 누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좁아 아슬아슬해 보여도 자전거 한 대가 빠져나갈 만한 길이라면 어디든! “골목은 끝이 보이지 않으니까 호기심을 불러일으켜요. 그다음엔 뭐가 있을까. 인력거는 바퀴 달린 다른 수단과 달리 대화를 하면서 인간적 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죠.” 이인재 대표는 신 나게 페달을 굴리며 말한다.
안국역에서부터 정독도서관 앞을 지나 삼청동으로 올라가는 길, 사람들의 느긋한 발걸음이 보인다. 구한말부터 광복 직후까지 역사의 한 페이지에나 존재했을 법한 인력거가 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신기한 듯 부러운 듯 보고 웃는다. “안녕하세요?” 라이더는 지나는 사람들에게 밝게 인사하고, 시원한 가을밤 가게 앞에 나와 있는 주민들은 라이더에게 손을 흔들어 준다. 사람 냄새 나는 정겨운 골목의 풍경이다.
아띠인력거는 천천히, 느리게, 행복을 달린다. 이인재 대표는 시청역 근처 증권회사에 근무하던 시절 사무실 창밖으로 덕수궁 돌담길을 보고 서울에도 인력거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일 년 동안 사람들에게 북촌 골목을 달리는 행복을 전해 주고 있다. ‘아띠’라는 이름이 가진‘ 친한 친구’라는 뜻처럼, 함께 추억을 만들고 즐거움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서울에는 딱히 할 게 없어요. 저희는 이 무대를 놀이공원 삼아 다녀요. 독특한 놀이가 될 수 있고, 또 구경도 할 수 있고. 하지만 평소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걸 여행으로 느끼진 않잖아요. 이야기가 많은 동네를 계속 찾아내고 재미있게 만들고 싶어요.”

인력거만큼의 속도로 흘러가는 북촌의 골목 풍경은 아름답다. 서울 한가운데서 목련 나무 아래 우물을 볼 수도 있다. 라이더 준은 인력거를 멈추고 곳곳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골목은 모성의 공간이라고 해요. 큰길에 있다가 들어오면, 조용하고 차분해지죠. 선조들이 현명하고 과학적인 게, 골목은 사람들이 마주치더라도 어깨가 닿지 않으면서 서로의 숨결을 들을 수 있는 폭으로 디자인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특히 비가 올 때 정말 좋은데, 처마 끝에서 빗물이 투두툭둑 떨어지는 소리가 기가 막혀요. 혼자 걸을 때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죠.” 한옥 담벼락 옆에서 역사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과거로 떠나는 시간 여행이 따로 없다. 인력거가 마지막에 도착한 곳은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 언덕길이었다. 조금 일찍 도착하면 빼곡한 한옥의 지붕들 위로 석양이 내려앉는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로맨스 코스라는 이름도 붙였다고. 
인력거를 타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허물없는 친구처럼 다정한 북촌의 풍경에 들어가 보는 것은 어떨까. 내리막길의 은근한 스피드를 즐기며, 걷는 것보다 새롭고 많은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하나둘 켜지는 가로등 아래를 지날 때 사람들의 모습 속에 가을 향기가 짙게 묻어날 것이다.



아띠인력거
[코스 소개]


[예약 문의]
전화 1666-1693 | 페이스북 facebook.com/arteein | 홈페이지 www.rideartee.com


한강의 파노라마 즐기기, 서울 시티 투어 버스
넓고 탁 트인 풍경을 만나고 싶다면, 야간 버스를 타 보는 것도 좋은 선택! 서울 시티 투어 버스는 주간과 야간으로 나뉘어 있는데, 서울의 야경을 볼 수 있는 이층 버스는 하루 한 번 오후 8시에 출발한다. 카메라의 높이가 달라지면 구도가 바뀌듯 버스 2층에서 보는 서울은 색다르고 낯설다. 가을이 깊어지면, 가로등 아래 노랗게 물든 은행잎들이 차창을 두드리며 빛날 것이다. 
버스가 출발한 지 십 분 후,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마포대교에 다다른다. 한강을 맞닥뜨린 순간,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이란! 한 시간 동안 버스는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따라 서쪽의 마포대교, 서강대교에서부터 동작대교를 거쳐 한강 동쪽의 한남대교와 성수대교까지 지난다. 어둠 속 강 저편에서 작은 빛을 발하는 성냥갑 같은 아파트들과 화려한 조명을 한껏 받은 한강의 다리들이 단정하고 반듯하다.


낮의 번잡한 시간을 접어 두고, 한 시간 동안 서울을 여행했다. 인력거에서 정겨운 한옥마을 골목을 본다면, 버스에서는 크고 
짙은 어둠 속에 고즈넉한 빛을 품은 한강을 볼 수 있다. 인력거가 느리고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의 그림이라면, 버스는 풍경의 파노라마를 담은 커다란 화폭의 그림이다. 인력거가 소곤거림이라면 버스는 서정적인 침묵이다. 서울은 한 시간 전보다 조금 더 근사해졌다. 여행이란 평소 쉽게 지나치던 것들을 볼 수 있는 마법과도 같다. 늘 똑같은 서울이지만, 새로워서 재미있고 설렘이 있다. 24시간 잠들지 않는 거대한 도시 서울, 이 가을엔 밤에 잘 놀 줄 아는 심야여행자가 되어 보시길!


서울시티투어버스
[코스 소개]
야간코스 1 : 광화문-남대문시장-마포대교-여의도-서강대교-강변북로-성수대교-한남대교-남산 N서울타워-남대문시장-청계광장-광화문
야간코스 2 : 광화문-마포대교-서강대교-강변북로-동작대교-성수대교-한남대교-남산순환로-남대문시장 앞-청계광장

[예약 안내] 출발장소 :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6번 출구) | 휴무일 : 매주 월요일(단 공휴일인 경우 정상운행)
*광화문 코리아나 호텔 옆 티켓박스(02-777-6090)에서 현장 구 매만 가능. 오전 8:30에 티켓박스가 문을 연다.
(Tip. 가장 앞자리에 앉으려면 표를 일찍 사야 한다).